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다들 아이들에 얽힌 추억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애들 키우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출생 때 경험한 소중하고, 잊히지 않는 추억을 오늘 이야기하려고 해요.
두 아이의 아빠인 저는 큰 아이 출산 때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아직도 마음에 큰 짐이 남아 있어요. 결혼 후 신혼 시절 1년, 잠깐 동안 맞벌이를 한 적이 있어요. 원래는 결혼하고 1년이 지나서 아이를 갖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했었는데, 금방이라도 임신을 할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죠. 그런데, 아주 감사하게도 큰 아이는 임신을 결심하자마자 결실을 맺었고, 무럭무럭 아이는 아내의 몸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죠.
가진 것 없이 시작했던 신혼 때라 남들이 가던 산후 조리원을 쉽게 알아볼 수도 없었고, 서울에 연고가 없다 보니 아내 혼자 만삭의 몸으로 집에 있는 것조차 불안했던 날들이었죠. 이런 마음을 미리부터 알고 있던 아내는 시골집에 있는 장모님께 이야기를 해 놓고 아이를 출산하기 한 달 전에 출산과 산후조리를 목적으로 처가로 내려갔어요. 마침 맡고 있던 프로젝트도 한창 바빴고, 한창 일할 짬이었을 때라 아내의 이런 배려가 한 편으로는 고맙고, 한 편으로는 미안했어요.
이렇게 아내는 처가로 내려가고 어느덧 출산이 임박한 날이 다가오자, 첫 아이 출산의 설렘보다는 저나 아내는 두려움이 더 컸죠. 처음 겪어보는 출산에 몸도 떨어져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죠. 아내와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통화를 했고, 몸은 괜찮은지 이상은 없는지 등의 대화가 대부분일 정도로 걱정만 잔뜩 쏟아냈었죠.
시간이 더 지나 출산일이 지났는데도 아내에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했었죠. 내심 걱정하던 중에 고객사 장애로 긴급 복구 지원을 위해 고객사에 호출되었고, 때마침 아내의 산통은 시작되었죠. 사실 곁에 있었으면 고객사에 갈 일이 아니라 아내와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아내가 산통은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걸 고스란히 믿고 고객사에서 늦은 밤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아내는 가진통이 전날 저녁부터 있었지만 일 때문에 고객사 방문하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직 출산 시점이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고,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얘기지만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심해져 장모님과 병원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병원에 가서도 바로 연락을 주지 않았고, 저는 장애 조치 후 아내가 통화가 안 되어 장모님과 통화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죠.
장애 조치 후에도 야간이라 처가까지 갈 수 있는 교통 편도 없었고, 인수인계 지원인력이 와야 고객사를 빠져나올 수 있어서 속만 태우고 있었어요. 그러다 첫째 출산 소식을 장모님에게 들었고, 혼자 첫 출산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겪은 아내가 대견하고, 고맙고, 너무 미안했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아내 생각에 가슴 한켠이 아파 오네요.
장모님 말씀이 아내와 손주는 너무 건강하고, 아이는 출산 후 신생아실로 가서 지금 와도 볼 수 없으니 날 밝은 대로 첫 차 타고 오면 된다는 말씀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고, 빨리 오지 않는 아침과 인수인계 들어오지 않는 동료만 원망하며 아침 시간만 기다렸어요.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큰 아이를 만난 저는 그 밤의 고생했던 아내의 흔적과 세상 우렁차게 울어대는 우리 첫 아이를 만나는 감격에 가슴 뭉클하고,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하루였죠. 그 이후로도 한 달간 주말마다 전 아내와 아이를 보려고 처갓집을 찾았고, 지금도 가끔씩 그 날의 추억을 이야기하면 지금보다 더 큰 사랑을 줘도 안 아까운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되네요. 그때만 생각하면 '왜 그땐 출산 전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드네요.
사실 큰 애의 산통을 지켜보지 못한 터라 둘째의 출산은 저에게는 첫 경험이나 다름이 없었죠. 게다가 첫 아이 때와는 다르게 아내와 저의 나이가 이제는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던 터라 첫 아이 때와는 또 다른 걱정들이 자꾸 생겨나더라고요. 둘째 출산일이 임박해서 아내는 처음 겪어보는 게 아니었던 터라 저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의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마침 큰 아이의 산후조리를 장모님이 해주어서, 이번 둘째의 산후조리는 어머니가 직접 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아내 입장에서는 조금은 불편했겠지만 큰 아이가 있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온 어느 날, 큰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 집 소풍을 가는 날이었어요. 아내는 소풍 가기 전날 밤부터 가진통을 시작했고, 전 옆에서 보는 첫 출산이라 아내의 가진통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죠. 아내는 자기 전까지 큰 아이 소풍 도시락까지는 어떻게든 싸서 보낼 생각을 했었나 봐요. 새벽녘에 저는 가끔씩 깨긴 했지만, 아내가 '아직'이라는 말에 혼자 짧게라도 잠을 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내는 밤새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새벽이 되어서야 저에게 제 여동생에게 전화해 집에 오라고 하고, 도저히 김밥은 쌀 수 없을 거 같으니 나가서 김밥 도시락을 사 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때는 동생이 결혼 전이었고, 동생 자취하던 집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전화하면 바로 달려올 수가 있었죠. 급하게 서둘러서 동생에게 전화해 집에 오라고 하고, 큰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것까지는 좀 케어하라고 지시(?)한 다음에 김밥 도시락을 사 가지고 와서 미리 싸 놓은 짐을 들고 아내와 다니던 산부인과로 갔어요.
아내는 병원에 입원 후 한 시간이 지나서 둘째를 낳았고, 예쁜 공주님을 품에 안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존경스럽고, 아름다웠어요. 둘째 낳는 과정을 고스란히 곁에서 지킨 저는 아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참았었는지, 전날 밤에도 큰 아이 소풍 걱정으로 그리 큰 산통을 참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죠.
출산의 소식을 들은 우리 어머니는 급하게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오셨고, 퇴원 전까지는 아내의 곁을 지키려고 저는 병원에서 잠을 잤어요. 그런데, 병실로 찾아왔던 낮에만 해도 할머니랑 있어도 된다는 큰 아이(당시 5살)의 대견함에 기특했던 저는 퇴원하고 나서야 큰아이도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프더라고요.
동생이 자다가 애 우는 소리에 깜짝 깨서 봤더니, 민수가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울더라는 거예요. 할머니하고 고모랑 밤을 잘 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제가 큰 아이가 5살짜리 어린애라는 생각을 간과했고, 큰 아이는 그날이 엄마, 아빠와 처음 떨어져 본 잠자리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던 거죠.
어찌 되었든 이런 작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남기며 우리 가족은 2007년에 지금의 네 명이 되었고, 지금도 티격태격 하지만 따뜻한 제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 사랑하며, 아끼며 잘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