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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13. 2022

난 장례식장에서 밤새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

그날도 난 그냥 이방인이었다

'우웅~, 우웅~~'


목요일 오후 책상 위에 있던 폰의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뜬 번호는 아버지였다. 아버진 내가 사무실에 있을 낮 시간에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으신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주 전 오후에 아버지로부터 오늘과 같이 전화가 왔었고, 전화를 통해 전달된 소식은 집안 어른의 부고였다. 다급하게 전화를 들었다. 그날처럼 오늘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제발 좋지 않은 소식이 아니길 빌며 얼굴 가까이 폰을 가져갔다.


 "네, 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그래 철수야. 점심은 먹었니?"

 "네, 아버지도 식사하셨어요?"

 "난 벌써 먹었지. 다른 게 아니라 이모부 돌아가셨다. 혹시 연락받았니?"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난 당황했고, 잠시 아버지가 얘기한 이모부를 떠올려봤다. 내게 이모부라고 아버지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머릿속 분은 두 분이었다.

 "누구 말씀이세요. OO 이모부 말씀이세요?"

 "그래, OO 이모부. 혹시 연락받은 건 없냐?"

확인고 나서 든 생각은 내게 부고 소식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소외감과 불통일 수밖에 없는 그간의 관계가 생각났다. 스스로 관계를 소홀히 하며 밀어냈던 건 나였기에 사촌 형의 태도가 십분 이해가 갔다. 게다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 당장은 정신이 온전치 못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겹치니 신경 쓰일 정도의 일이 아님을 명확히 정리했다.


그렇게 난 서둘러 업무를 정리하고, 이른 저녁시간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례 첫날이라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은 많이 없었고, 자릴 차지하고 앉아있는 몇몇 자리가 이십 년을 밀어내며 살았던 친척들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불편한 마음은 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궁금하지도 않은 억지 안부를 물으며 몇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도리를 했다 싶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다음날 업무 핑계를 대고서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음날 방문 때였다. 지방에 계신 아버지가 서울까지 장례식 문상을 오셨다. 이모부 생전에 조금 각별함이 있었지만 나이가 드시고선 외가 친척과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소원하셨던 아버지다. 게다가 어머니까지 몇 해 전에 돌아가신 마당에 말 그대로 아버지는 그냥 남이었다. 하지만 좋았을 때를 얘기하시던 아버지는 이미 외가 어른들과 밤을 지새우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신 듯 보였다. 그 덕분난 예정에도 없던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아내와 동생이 함께여서 딱히 소외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시간이 가고 동생도 집으로 돌아가고, 그 자리가 편할리 없는 아내도 내손으로 강제 귀가시켰다. 발인 전날임에도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 않았고, 11시가 넘어선 대부분 아는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들. 처음엔 거짓으로라도 어울려볼까 애써보기도 했지만 그들 속엔 내 자리가 없었다. 역시나 난 그날이방인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거릴 두고, 벽을 쳤다. 어릴 때만 해도 잘 어울렸던 엄마와 성이 같은 그들. 자주 보는 얼굴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생길 때면 늘 답답하고, 불편하다. 사촌이라지만

그들은 이미 나와의 친인척이 아님을 그들도, 나도 마음으로는 알고 있다. 오늘도 테이블 하나 넓이만큼 떨어져 앉아 그들만의 대화로 한창을 왁자지껄이다. 자리에 끼기도, 대화에 끼기도 너무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몇 번을 마주 춰야 할지 모르지만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사람의 도리만큼만 지키고 살겠다는 생각뿐이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점점 죄는 희미해지고, 감정만 고스란히 남는 듯하다. 누구의 원죄인지 원론적인 숙제가 남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은 사람들은 상처 입은 나를 안중에도 없어하고, 오히려 그들끼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더 기분 좋게 어우러지며 대놓고 무시하며 날 괴롭히곤 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마주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잘 알기에 불편함을 참고 테이블을 좁힐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이제 맘이 가는 대로 하는 게 무엇보다 좋은 나인데 아직까지 이런 눈치를 보고 사는 내가 슬프다. 늘 좋을 수는 없지만 늘 싫은 관계는 있을 수 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흐른 시간이 우습게도 그냥 그들과 다르고, 그들과는 앞으로도 이 정도로 지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종교적 의미로 많이 쓰이는 관용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공정하게 판단함을 강조할 때 쓰인다. 하지만 죄를 지은 것도 사람이고, 죄를 뉘우치는 것 또한 사람임을 알기에 죄가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을 괴롭히는 건 늘 쌓아왔던 감정이나, 잊히지 않는 기억이 갖고 있는 유물 같은 것이다. 시간이 쌓이며 기억 속 깊숙이 침잠해 있다가 소실되는 일은 없다. 그날의 기억이 날만한 물건이나 사건이 생겼을 때 어김없이 툭툭 튀어나와 아물었던 상처를 헤집고, 다시 생채기를 낸다. 그들을 볼 때마다 드는 불편함이 그런 상처의 매개임을 잘 알기에 난 오늘도 그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마음이 없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한 공간에 공존할 뿐. 마지막 손을 흔드는 인사에 안도감과 허탈함이 함께 묻어나는 이유다. 오늘은 잘 버텼지만 가급적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어쩔 수 없는 만남을 했으면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감정도 닳지 않을까 작은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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