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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09. 2023

가슴 철렁한 일이었다

이젠 넘어져도 얼굴이 다칠 나이다

12월도 한 주가 남지 않은 어느 날 가슴 철렁한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게 부쩍 전화를 자주 한다. 일이 있을 때도 하고, 습관적으로 할 때도 많다. 그날도 연락을 드린 지 이틀이 지나서 늘 통화하던 시간에 전화했다.

 

 "그래... 아들아"

전화를 받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평소에는 기운 넘치던 양반이 오늘따라 영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아버지? 어디 아프세요? 아니 무슨 일 있으세요?"

 "끄응..."

추궁하는 듯한 내 질문에 아버지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말씀을 하셨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조금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 술자리는 파했다. 아버지 연세도 있으셔서 동료들은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료들의 이런 호의를 거절하고, 걸어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결국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걸어서 집까지 귀가했다. 문제는 집에 거의 다 와서 일어났다. 취기에, 어둠까지 제법 내려앉은 늦은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계단을 오르시다 발을 헛디드셨고, 결국 아파트 계단 구조물에 하관을 찌으셨다. 처음엔 부딪친 입 주변의 통증에 고통스러우셨고, 다가워서 괜찮냐고 물어본 경비 아저씨가 넘어진 당신을 측은하게 보는 눈빛에 창피해했다. 괜찮다고 얘기하고 서둘러 탄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에 마지막으로 당황하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입 주변이 붉게 물들 정도로 많은 피가 나고 있어서였다.


설명을 듣는 내내 난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많이 긴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걱정보다 허탈함이 몰려왔다.

 "매일 산에 다니며 몸 관리를 그렇게 하는데도 계단에 걸려서 넘어지다니. 나도 이제 나이 들어서 안 되는구나 싶네"

 "아버지~! 아버지 연세에 일도 하시고, 지금만큼 건강하신 것만 해도 대단하신 거예요. 그러게 술 드시고 집까지 왜 걸어가셨어요?"

아버지는 넘어져서 다친 상처나 통증보다 당신이 뜻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그 상황에서 넘어졌다는 자체가 인정하기 싫으신 듯했다. 그래서 경비 아저씨의 호의에도 조금은 퉁명하게 대꾸하고 그 자릴 벗어나려고 하셨다. 부끄럽고, 당황해서. 아무리 건강을 잘 챙겨 왔다고 해도 술도 드셨고, 거리도 가깝지 않아 누가 봐도 무리였다. 단지 아버지만 그리 인정하지 않으셨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큰 상처는 아니어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난 안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판단할 때 주관적인 시각에서 사고하고, 결정한다. 당연히 자신을 객관화하여 사고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런 주관적 판단만을 고집하다 보면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감으로, 겸손함이 지나쳐서 비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보기는 어렵다.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기준은 필요하다. 모든 사고들은 인정하지 않는 넘치는 지나침이나, 부족한 모자람에서 나온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변화를 수긍하며, 스스로를 인정하는 삶에서 여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연말, 연시를 맞아 우리 네 식구 근사한 저녁 자리를 가졌다. 예전 재능을 살려 가끔씩 하는 아르바이트로 알바비를 받아서 내가 제안한 자리였다. 양고기에, 와인까지 자리는 평소같이 즐거운 자리였다. 식사가 조금 길어졌고, 딸아이 화장실을 나서는 길에 함께 나섰다. 그렇게 식당을 나가 화장실을 나서는 길에 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살짝 넘어진 것이 아닌 조금 심하게 넘어져 얼굴을 찌었다. 내가 넘어진 모습에 딸이 급하게 다가와 괜찮냐고 걱정했지만 그 순간 난 넘어진 통증보다 넘어진 스스로가 너무 창피했다. 영락없이 넘어진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심하게 다치진 않았지만 얼굴에는 선명하게 바닥무늬와 똑같은 모양의 자국이 생겼다. 무릎은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멍자국이 가시지 않았다. 식당에 다시 들어섰을 때 아내와 아들은 딸아이 얘기를 듣고 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난 날이 너무 추워 손을 주머니에 넣어서 넘어질 때 얼굴이 닿았다고 변명을 했다. 사실은 넘어지는 순간 손이 반응하지 못한 것 같지만. 나도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자기 객관화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한국 나이로 오십이니 나도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아야 할 나이라는 것을.




 "김 이사님, 연말에 도대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혹시 사모님에게 맞으신 건 아니죠?"

주말을 지내고 회사에 출근했더니 내 얼굴에 자국을 보고 동료들은 날 놀리며 한 참을 웃는다. 덕분에 나도 월요일 아침부터 웃을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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