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은 항상 복잡하다. 사무실 이전은 갑자기 늘어난 출퇴근 시간과 혼잡스러운 지옥철을 오랜만에 경험하게 해 주었다. 혼잡한 출퇴근길 지옥철에 몸을 싣고 다니며, 예전만 못한 근력과 미뤄왔던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최근에 출퇴근하는 역사 내에 상가 리빌딩이 되었고, 제법 이용 빈도가 높을 매장들이 들어왔다. 그중에 제일 반길만한 곳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사무실 이전 전만 해도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출근길에 있어서 매일 들러 커피 한잔 들고 출근을 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터라 크게 부담 없이 커피 한잔 들고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사무실 이전 후에는 이런 가성비 좋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없었다. 가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출근을 할 때도 있지만 평소 출근 루트에서 많이 벗어나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이른 출근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정적으로 매일 아침 커피값으로 삼천 원이 넘는 돈을 쓰기에는 내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얼마 전 역사 내에 들어온 가성비 갑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더욱 반가웠다. 이후 내 지갑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선에서 가벼운 사치는 반복되었고, 나에겐 아침 커피 한 잔이 어느덧 평범한 일상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전 8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출근길이다. 이전 역들에서 열차에서 내린 직장인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내가 하차하는 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다른 승객들에 섞여 나도 출근을 서두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개찰구를 오르는 계단을 중간쯤 올랐을 때 내 팔을 치면서 급하게 한 여성이 뛰어서 올라갔다. 팔을 치고 사과 없이 그냥 가는 그녀가 조금 어이가 없고, 예의 없다 생각했다. 그녀는 나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계단을 급하게 올랐다. 난 그냥 출근이 좀 늦었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난 매일 찾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찾아간 테이크아웃 커피 매장에서 난 조금 전에 들었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커피 매장 키오스크 주문기 앞에는 조금 전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계단을 오르던 그 여성이 있었다. 내가 매일같이 찾는 것처럼 역사 내에 있는 위치와 가성비 덕에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간대에매장에는 늘 사람이 붐볐다. 그 덕분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키오스크 주문기 앞에 줄을 늘어서 있었다.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 주문 때문에 커피가 나오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기다림이 싫어서, 남들보다 먼저 앞질러 주문하기 위해 그녀는 사람과 부딪치면서까지 무리하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여기저기 투덜거림은 아랑곳없이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급하게 출구를 향해 나간 것이다. 조금은 괘씸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그날도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급하게 오르는 그녀를 보았고, 조금은 얄밉기도 했지만 그냥 1~2분 아끼려고 아등바등 사는구나 하고 말았다.
그렇게 지하철 개찰구로 빠져나가, 출근길 내 루틴대로 테이크아웃 커피 키오스크 단말기 앞에 줄을 섰다. 내 앞에 세, 네 사람이 주문하는 동안 옆 키오스크 단말기에 줄은 줄지 않았다. 참고로 그 커피 전문점에는 두 대의 키오스크 단말기가 있었고, 각각의 단말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었다. 주문하려고 선 사람들이 줄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서 그쪽을 봤고, 줄지 않은 줄 앞쪽에 그 여성이 서 있었다. 줄이 줄지 않는 키오스크 단말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줄 맨 앞에 있던 한 남자가 키오스크 단말기를 한 참을 씩씩거리며 누르고 있었다. 결국 주문 처리가 되지 않자 매장 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남자 뒤에 줄을 서 있던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매장 관리자의 주문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영락없이 그 여성을 포함한 줄을 선 손님들은 모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섰던 줄의 주문이 모두 끝난 후에야 그 여성은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여성은 내가 커피를 들고 간 한참 후에 자신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출근길 일로 조금 불편했던 마음은 편안해졌다. 얄미워 보였던 그 여성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잠시 고소하게 생각된 얄팍한 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잠깐을 기다리기 싫어서 옆에 사람들을 치고 뛰어올라가 주문하던 그 여성의 행동이 그날만큼은 조금 후회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먼저 가 줄을 선다고 항상 먼저 커피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무슨 일이든 먼저 시작한다고 먼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 싶다.
오늘도 사소한 일상에서의 일로 작은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생살이와 비슷하게. 요즘도 그 여성은 개찰구 계단을 항상 뛰어서 다닌다. 항상 출근 시간이 비슷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런 모습이 자꾸 거슬려서 그러는지 자주 눈에 보인다. 안타깝지만 그 여성에게는 그날의 사건이 작은 교훈도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