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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30. 2023

내 글이 아닌데 출판사에서 글 청탁이 왔다

짧게 쓰는 게 제겐 더 어려운 일이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원주에 있는 도서출판 OO 'XXX' 기획실장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함께 지속가능이라는 키워드로 퀘스천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선생님 브런치에 '마흔 넘어 배운 글쓰기~~'라는 글을 실었으면 하는데 혹시 괜찮으신지요? 중년 남자의 글쓰기라는 주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바쁘시겠지만 쪽지 확인하시면 전화 한 통 부탁드려도 될까요? 010-5 XXX-XXX9 'XXX'입니다. 참고로 작년에 발행된 파일 보내드립니다'


2022년도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오마이뉴스' 쪽지를 통해 기고 제안을 받았다. 내용을 보니 '오마이뉴스'에서 두 분의 브런치 작가님과 함께 글을 쓰는 기사를 읽고 제안을 한 듯 보였다. 브런치를 통해 몇 번의 원고 청탁을 받아보기는 했지만 오마이뉴스 쪽지를 통해 받은 건 처음이었다. 원고를 달라는 얘기도 아니고, 써놓은 글을 실는다고 하니 따로 시간을 내서 써야 할 부담도 적었다.


그러다 문득 출판사 담당자가 브런치에서 읽었다는 글 제목이 조금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내 글 같으면서도, 내 글 아닌 것 같은. 그래도 오래간만에 들어온 '원고 기고' 요청은 그런 석연치 않은 기분을 잊게 했다.


다음날, '기고' 요청 동의와 원고료 문의를 위해 출판사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낸 문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회신이 왔다. 책정된 원고료와 추가 요청사항이었다. 단순하게 써놓은 글에 대한 기고가 아닌 '원고 청탁'임을 알고 더 기분이 좋아졌다.


 '와! 고맙습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글쓰기를 계속한 이후 삶의 변화가 있으신지 궁금한데. 기존 원고에 조금 추가해서 수정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원고료는 00만 원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후로도 여러 번 문자를 주고받았다. 주고받는 문자 속에 난 담당자가 직접 읽었던 브런치 원문 제목을 물어보게 되었다. 석연치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문자에 대한 회신을 받은 난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이 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담당자가 보낸 글 제목은 내가 썼던 글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글 쓰는 다른 브런치 작가분의 글이었다. 그룹에 포함된 작가들이 같은 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썼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금은 실망도 했고, 조금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오랜만에 청탁이 아쉽긴 했지만 빠른 포기가 정신 건강에도 좋을 듯해서 문자를 보냈다.


'실장님. 어제 보내주신 글 제목을 봤더니 제 글이 아니네요. 저와 함께 오마이뉴스에서 '중년의 글쓰기'를 함께 하시는 신 작가님이네요. 신 작가님 브런치에서 제안하기 하시면 답변 주실 거 같아요'


문자를 보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출판사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터라 조금은 의아했다. 전화를 받고 출판사 담당자는 인사부터 해왔고, 짧게나마 '청탁'글에 대한 취지를 다시 설명했다. 마음속으로는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데 조금은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바로 전화를 걸어 준 그분의 태도가 감사했다. 그러고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들려왔다.


 '선생님 저희는 세 분의 글 모두를 봤고요. 세 분 중에 누구든 저희가 원하는 글을 써주셔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중에 선생님께 먼저 연락을 하게 됐고요. 오해가 계신듯해서 연락드렸어요'


짧게나마 오해를 풀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원고 마감일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원고지 7매, 1,400자의 짧은 글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늘 3,000자 이상의 장문을 쓰다가 반도 안 되는 양으로 줄여서 쓰기란 쉽지 않았다. 글 쓰기도 습관인 것처럼 글도 늘 쓰던 습관대로 써지나 보다. 아예 주말 두 시간 이상을 노트북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고생한 끝에 어렵게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마감 이틀을 남겨놓고 퇴고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짧은 글이라 조금은 어색했지만 마감일 전에 글을 보낼 수 있었다.


2023년 1월의 어느 날,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 두 분 (실배, 이드id), 담당 편집자와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2차로 맥주 한 잔을 더 했다. 한 참 5개월의 여정을 서로 축하하며, 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연말 내게 온 작은 스캔들 얘길 꺼냈다.


'작가님 대신 글 청탁을 받았어요. 글 제목을 물었더니 신 작가님 글이더라고요'

 

얘길 듣던 작가들과 편집자는 잘된 거라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웃자고 꺼냈지만 찜찜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었는데 시원하게 웃고서는 털어낼 수 있었다.


며칠 전 택배로 내 글이 실린 잡지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실린 사진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다.  '찰칵~', 기념사진 남기고, 글로도 남기고. 다음번에는 출간되는 책을 '찰칵~' 찍을 날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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