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얻어진 것들은 많다. 업무 영역의 확대도 그중 하나다. 난 태생부터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다만 공대 출신에 일하며 쌓인 캐리어가 엔지니어로서의 생활을 이어오게 했다. 글쓰기라고 해봤자 고객사에 서비스 중인 솔루션 장애 발생 시 쓰는 장애보고서가 최장의 작문이었다.
언제인가부터 글을 쓰게 됐다. 그 시작은 회사 내 홍보용 내부 기사부터였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사업을 성공리에 완료 후 공공자전거에 납품, 구축했던 솔루션의 홍보를 위한 마케팅용 글이었다. 마케팅팀에서 사업 기술담당이었던 내게 업무협조요청이 왔다. A4 한 페이지 분량이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이라 부담이 됐던 업무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붙들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난 5만 명의 브런치 작가 중 하나이지만, 전문작가는 아니다.
난 전문작가가 아니다. 다만 글쓰기를 좋아하고, 꾸준히 글 쓰는 아마추어 작가다. 과거 작가라고 하면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을 이야기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작가가 아닌 취미로 글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를 놀이나, 취미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블로그, 티스토리와 같이 마케팅이나 정보성 글을 홍보하기 위해 활동하는 플랫폼이 전부였다. 하지만 브런치라는 글쓰기 전문 플랫폼의 탄생으로 글을 쓰는 일이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기회로 주어졌다.
2022년 기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는 5만 명을 넘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 중 상당수는 책 출간이 희망이자, 꿈일 것이다. 꾸준히 자신의 글을 쓰고, 홍보하고, 구독자를 늘려가는 것도 그 이유이지 않을까.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까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브런치에서 발표한 통계수치가 그 결과에 대한 방증이다.
브런치 작가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출간한 작가수는 전체 작가의 6퍼센트도 되지 않는 2천9백 명이다. 또한 브런치에서 출간된 책은 4,600여 권이다. 많은 수의 수치로 읽히지만 아직까지 책을 출간하지 못한 작가가 90퍼센트가 넘는다는 아쉬운 결과이기도 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출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2년 종류에 상관없이 출간된 책의 종류는 61,181종이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5퍼센트 이상 줄었고, 2020년부터 해마다 출간되는 책의 종수는 줄고 있다. 단순하게 책을 내는데 목표를 두기에는 쉬이 지칠 수밖에 없는 통계다. 책출간이 아닌 순수한 글쓰기와 이에 따른 다른 분야로의 확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책을 낼 기회도 가질 수 있겠지만 자신의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편지를 잘 써서 가족, 연인을 감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기고 요청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업무 메일 정리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주변에 글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난 이런 여러 영역들 중에 본업에 영향을 주는 일이 종종 생겼다.
취미에서 시작했던 글쓰기가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다.
이직 후 제안서 작성 업무를 받았다. 여러 가지 업무들 중에 내 글쓰기의 첫 업무적 영역확장이었다. 20년 직장생활동안 써본 적 없던 제안서 작업을 주 업무 중 하나로 맡았다. 제품을 이해하지 못했고, 시장을 분석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중요한 업무가 20년이 넘는 내 경력에 처음 접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안은 예전 한 페이지 분량의 사내 홍보글을 몇 날며칠 고민하며 쓰던 완전 초보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잘 써진 건 아니다. 글 쓸 재주만 있었지 모든 게 부족했던 내게는 너무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제안서 제출하는 족족 기술평가 결과 순위에서는 아래 등수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품도, 시장분석도, 트렌드도 모두 익숙해졌다. 어느 날부턴가 내가 작성한 제안서는 평가 순위 윗등수에서 찾아야 했고, 가끔은 평가결과 1등으로 사업자 선정이 되기도 했다.
이런 내 글쓰기는 회사를 대표하는 소개자료(카탈로그)는 물론이고, 대형 전시회 회사 홍보에 들어갈 홍보물에도 쓰였다. 강렬한 멘트는 아니었지만 여느 광고 대행사에서 쓸 법한 카피 문구 같다고 직원들의 격려가 쏟아지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부스 앞뒤로 내가 쓴 카피 문구는 제 몫을 톡톡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업무영역을 넘나드는 내 취미의 선한 영향력에 이젠 나름 감사해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글쓰기로 경력대우받습니다.
요즘 학교에 제출하는 학생들 과제 보고서의 수준은 매우 높다. 과거 손글씨로 써내던 우리 학창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직장인들 제출 보고서 수준이상이다. 아이들 보고서를 직접 써주는 극성 부모는 아니지만 발표자료나, 제출보고서를 읽고 의견을 준 적은 여러 차례 있다.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은 좋은데 예시로 든 내용을 보강하면 더 좋을 거 같은데'
'발표자료에는 여기 서술형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정리해서 넣는 게 더 좋아'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읽는데 호흡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여기 이쯤에서 한 번 끊는 게 어떨까'
이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을 배우는 아들 보고서에 의견을 줄 수는 없지만 과거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한 번의 감수는 기본과정이었다. 문맥이나 글의 구조, 강조할 부분에 대한 어휘 선택에 대한 의견까지 아이들과 얘기했다. 공대생인 내게 자연스럽게 발휘되긴 어려운 글 쓰기의 순기능이다.
주변에서 글을 취미로 쓴다고 하면 묻곤 한다. '작가세요?' 난 전문작가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그런 오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책이 아닌 플랫폼에서 대부분의 글을 만난다. 이런 플랫폼들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미술, 음악, 영화, 자기 계발, 요리 등 다양한 정보를 습득한다. 즉 다양한 분야의 글들을 포탈, 기사,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쏟아진 많은 글들은 전문가의 손에서 태어나지 않고, 개인이 갖고 있는 관심 영역에서 쓴 아마추어의 글이 많다. 꾸준히 검색하고, 학습해서 자기만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글을 쓰며 출간을 하지도 못할 수도 있고,인기 있는 플랫폼 운영자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자신에게도, 주변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는 현실적 한계와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취미로서 쓰는 글은 대단한 재능도, 현실적 한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면 된다. 그렇게 쓰다 보면 다른 여러 순기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고, 글쓰기에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꾸준함과 즐거움은 글쓰기의 기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