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수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도 쓰임과 용도에 맞춰 써야 합니다
'이사님! 기안을 올리려는데 결재 좀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부서 내 사내 인프라 시스템을 담당하는 직원이 기안을 올린다면서 결재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기안의 내용은 디스크 증설에 관한 구매 기안이었다. 그러라고 얘기할까 싶다가 정확한 사유에 대해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개발서버의 접속 속도, 처리 속도의 저하로 개발자들의 불만이 많아서라고 했다. 서버 접속 속도, 처리 속도 등은 다른 원인에 있을 듯해서 정확히 점검, 확인을 해서 다시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
반나절이 지난 후 담당이 전한 말은 접속속도, 처리속도 개선을 위해 디스크 증설이 아닌 메모리 증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가로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삭제하면 조금 더 개선될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정확한 원인 파악 후 속도 개선을 위해 제대로 된 부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대외 서비스 목적도 아닌 사내용이라 중복투자가 아닌 정확한 용도에 맞는 시스템 증설이 이루어져야 했다.
항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사용하는 물건 하물며 먹는 음식도 쓰임과 용도가 명확하다. 맛있는 음식은 고픈 배를 채워주고, 혀를 즐겁게 하고, 간혹 기분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커피는 아침 각성에, 안경은 흐릿한 시야를 맑게 한다. SNS는 기존 오프라인 인맥을 강화하고, 새롭게 온라인상의 인맥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의 목적이다. 책은 사람에게 공감과 흥미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다.
그럼 글은 어떤 쓰임과 용도로 쓰이고, 사용될까. 물론 쓰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글은 쓰는 목적과 용도에 따라 형식의 차이가 생긴다. 업무 과정에서는 간단하게는 메모, 조금 길게는 메일 그리고 장문의 보고서, 제안서 등 길이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연애편지로도, 축하 메시지를 위한 엽서나 카드에도 쓰인다. 때로는 생의 마지막 심정이나 각오를 정리하거나, 남겨질 사람을 위한 유서에도 쓰인다. 이와 같이 쓰이는 목적과 형식에 따라 글의 용도, 쓰임은 다양하다.
글도 형식과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난 업무 용도로 글을 업무 지시, 협조, 보고를 위한 메일로, 가끔 기획서나 제안서로도 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글은 사적인 용도로 쓰임이 중요하다. 주말마다 찾는 카페에서 써 내려가는 긴 글은 '오마이뉴스', '브런치' 등에 송고, 발행할 목적이다. 가끔은 특수한 목적의 기고글로도 쓴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진정한 소통을 글로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글은 목적도 중요하지만 형식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글을 쓰는 사람은 늘었지만 글을 읽는 사람은 많이 준 듯하다. 긴 호흡의 글보다는 짧고, 간결한 기사를 좋아하는 추세다. 하지만 모든 글이 짧을 필요는 없다. 글이 어디에 쓰이는지에 따라 글의 형식은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업무용 메일을 쓰는데 두서없이 써지는 대로 쓸 수는 없다. 또한 감정에 휘둘려서 자신을 모두 드러낼 일도 아니다. 업무 메일은 메일을 쓴 목적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긴 글이나 추측성 글은 기피해야 한다. 또한 업무 메일은 예의나 매너는 기본으로 갖춰야 할 형식의 글이다.
반면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쓸 때는 지나치게 짧은 호흡의 글보다는 조금은 긴 호흡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적절히 감정을 포함하여 읽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글보다는 여러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가 당연히 주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에세이는 대다수의 공감보다는 특정 다수 즉 타깃이 있는 글이다. 그런 점에서 기사와는 다르다.
기사는 에세이, 메일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한다. 사실은 기본이고, 특정 다수가 아닌 대다수의 공감이 중요하다. 경험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사회적 관심이나 문제를 이야기해야 좋은 기사로 쓰임이 있다. 꼭 내가 경험하지 않아도 진실성과 이야기의 목적만 명확하면 기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주관적인 생각과 관점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실에 근거한 객관화를 갖추어야 기사로서 쓰임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직장 내 갈등, 이직이 관심은 있지만 이는 특정 다수만의 글일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 노년의 인생 이모작 등을 주제로 쓴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 있는 기사가 된다. 이처럼 글의 형식과 주제도 결국 쓰임을 쫓는다. 그런 면에서 내 글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일이 많다.
글로 만난 남자들의 아주 사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지난 금요일 저녁 오마이뉴스에서 함께 그룹기사를 쓰는 작가님들과 모임을 가졌다. 1월 이후 3개월 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남이라 반가운 마음에 얼굴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서로 안부 인사를 묻고 나자 본격적인 수다가 이어졌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글 이야기, 가족 이야기, 회사 이야기 등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20년 혹은 그 이상 직장생활, 결혼생활을 한 남자들의 만남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함께 쓰는 사람으로서 화제와 수다의 중심은 바로 그 글이었다.
'지난번 작가님 글 너무 좋았어요', '이번에 또 북토크 잡히셨다면서요' 등과 같이 느지막이 인연이 된 작가들의 수다는 깊어만 갔다. 이야기 도중 난 글쓰기 선배인 두 작가들에게 최근 채택되지 못한 그룹 기사를 두고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했다.
'제가 송고한 글은 왜 오마이뉴스에서 높은 등급으로 채택되지 못하는 걸까요?'
사전에 내 글을 읽었던 두 작가들은 조금은 말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함께 글 쓰며 알고 지낸 시간이 있지만 아무래도 질문에 대한 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 싶다. 두 분 중 한 작가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작가님 글은 종종 느끼지만 작가님을 향해 있어 보여요.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는 방향이 작가님이 아닌 외부를 보셔야 채택에 기회가 더 생길 거 같아요. 기사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아마 작가님의 그 글은 브런치에서는 인기 있을 거 같아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매번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쉽게 행해지지 않는다.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데 객관화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게 말로 풀기야 쉽지만 정작 글로 쓰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용도나 목적에 딱 맞는 글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모든 글은 사소하더라도 목적이 있다. 모든 행동에도 이유와 목적이 있듯이 글도 정확한 쓰임에 맞게 제대로 쓰여야 할 듯하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