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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06. 2023

난 해외여행 보내주는 회사에 다닌다?

중요한 건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의지?

2022년 오랜만에 뜨겁게 타는 열정은 아니었지만 무척 바쁘게 보낸 한 해였다. 하루가, 한 달이, 아니 일 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일에 묻혀 지냈고, 또 그렇게 일하는 게 싫지 않았던 한 해다.


감사하게도 22년 결실도 일한 만큼 결과를 빚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이 많아 끔찍했던 한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일하면서 즐거웠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욕을 할까? 매 순간이 기쁘고,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리 느낀 순간이 더 많았다.


 남들이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며 한 번 쉬어가는 12월도 일이 많은 회사인 만큼 분주함은 일상이었다. 12월의 그 분주한 어느 날 회사는 직원들에게 큰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21년 연말에 약속했던 전 직원 해외여행. 말하는 거야 쉽지만 그 큰 약속을 지키기는 쉽지는 않았을 거다.


12월의 어느 날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이 계획은 발표됐고, 기대반 설렘반의 기분으로 우린 1월의 어느 날 인천공항에 모였다. 긴 시간 업무를 비울 수 없어서 금요일부터 주말을 끼고 가는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동료들 얼굴 하나하나는 한없이 밝아 보였다.


입사한 지 6개월도 안 된 신입 직원들부터 나처럼 20년을 넘게 회사를 다녔던 사람들까지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다. 해외를 처음 나가보는 직원부터 불과 일주일 전에 다녀온 동료들까지. 하지만 대부분 전 직원이 포상으로 가는 해외 휴가는 처음이라 설렘만은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휴가지는 필리핀 보홀. 이름도 생소하지만 여행지가 결정되고 인터넷에 블로그를 보니 알만한 사람들은 많이들 찾는 여행지 같았다. 코로나 전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온 게 해외 마지막이니 나도 해외는 만 5년 만이다. 4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 후 도착한 땅. 우릴 처음 맞이한 건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고, 협소한 보홀 팡라오 국제공항. 특유의 습한 대기와 더위는 도착 시간이 새벽임에도 동남아임을 몸으로 직접 알 수 있게 해 줬다. 


여행기간 동안 머물 리조트는 다행히 공항에서 10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로비에서는 각자의 룸과 룸메이트를 배정받았다. 1인 1실이 아닌 1인 2실이어서 노숙을 하지 않는 이상 불편해도 3박 5일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룸메이트가 발표되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기간 동안 룸메이트는 아주 전략적이고, 계획적으로 맺어졌다.


   작전명 '친해지길 바래!'  


회사의 임원 한 분이 방 함께 쓸 동료 매칭 특명을 인사 직원에게 요청했다. 회사에서 가장 안 친할 것 같은 동료들끼리 '룸메'로 묶으라는 지시였다. 유능한 인사팀 직원은 결과적으로 내려진 특명을 아주 성실히 수행했다. 내가 봐도 몇몇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원들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임원과 타 부서 사원, 연구소장과 영업사원, 사업본부장과 개발팀장 등.


그 규칙에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 임원인 나와 같은 방을 쓴 동료도 타 부서 주임급 직원이었다. 난 상관이 없었지만 아마도 3박을 하는 동안 내 '룸메'는 꽤나 힘이 들었던 듯하다. 제시간에 방에 와서 함께 잠이 든 적이 없을 정도로 아침에나 옆 침대에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오죽하면 마지막날엔 내 룸메에게 '잠은 집에 와서 자라'라고 할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배정 후 서둘러 짐을 풀고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 잠에 들려고 했다. 막상 시차도 한 시간밖에 안 되는 보홀이지만 잠을 청하니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어찌어찌 뒤척이다 잠이 든 것은 아침을 맞이하기 한, 두 시간 전이었다. 짧은 잠은 잠시였지만, 졸음과 피곤함도 여행지여서 그런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착 당일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같이 수많은 반딧불이 조명처럼 반짝이는 투어로 황홀한 경험을 했다. 조명이라고는 하나 없는 세상에 나무 한가득 반짝이는 불빛은 말 그대로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튿날 이어지는 버진 아일랜드의 이질적인 바다 구경과 호핑투어. 바다를 좋아하진 않지만 긴 시간을 배로 달려간 곳의 수평선과 바다는 믿기지 않는 풍경을 선보였다. 바다 빛깔, 이질적인 섬, 형형색색의 열대어.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생각지도 않게 바다의 매력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까진 전주곡일 뿐.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마지막은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래상어와 함께 수영을 했다. 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고래상어에 놀라고, 압도적인 그 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현지 시티 투어는 또 다른 색다름을 제공했다.


2023년 1월 필리핀 보홀에서...


짧지 않은 3박 5일간의 일정은 지나갔다. 여행지를 떠나기 몇 시간 전 모두들 자리에 모여 이번 여행에 대한 소회를 남겼다. 모두들 하나같이 즐거웠던 여행, 이 자리를 만들어 준 회사의 배려에 감사함을 전했다. 물론 잊지 않고 이런 행사가 이어지도록 2023년도 열심히 하자는 다짐도 함께. 나 또한 함께한 여행의 추억과 1년 뒤 다시 전 직원 포상 휴가를 위해 열심히 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내 '룸메'였던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건넸다.


 '준호야, 내 년 여행에서는 잠은 네 방에서 자라'


전 직원 포상휴가. 계획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실행은 더욱 어려움이 따른다.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일정까지 올 스톱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너의 의지다. 아무리 전년도에 했던 약속이 있더라도 약속을 지키기란 약속을 깨거나 모른 체하는 것보다 수십 배는 어렵다. 하지만 일 년 전 약속을 지키면서 많은 직원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가져왔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처음 포상휴가 실행 계획을 얘기했을 때는 많이들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정작 출발 한 달여를 남기고, 실질적인 계획을 얘기했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남아있는 불신을 말끔히 씻어낸 얼굴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우린 포상 휴가를 다녀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수도 없이 하며 산다. 게 중에 의도치 않게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많은 약속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지켜지지 않는다. 애초에 지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지 못했던 것처럼 약속을 한 사람도, 약속을 받은 사람도 같은 마음이다. 약속이라는 말의 뜻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 간의 신의는 많이 잊혔다. 오늘 하루도 지키지 못할 많은 약속들을 들었고, 뱉었다. 약속을 지키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의지와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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