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간의 빈자리
'난 상관없어'의 무성의한 답변이라도 괜찮아
'학교 잘 갔다 와. 학교 갈 때 전기랑 가스 잘 끄고'
'일어났어? 샌드위치 잘 챙겨 먹고 학교 잘 다녀와'
'지수야, 오늘 저녁 김치찜 괜찮아?'
며칠 동안 주고받은 아니 정확히는 내가 딸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다. 지난 며칠 동안 분주하게 보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재임을 너무도 잘 알게 해 준 며칠이었다.
출퇴근 거리가 있어서 난 늘 7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이번 한 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와 달라진 거라곤 매일 딸아이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는 정도. 오늘은 더욱 딸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신경이 쓰이는 출근길이다.
학교 교내 활동을 위해 동아리 면접을 보고 온건 어제저녁이다. 면접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저기압이었다. 기분이 내려앉은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몇 번을 물어봤지만 대꾸가 없다. 아니 대꾸대신 울음이 터졌다. 결과가 대충 짐작은 갔지만 이리 절망할 줄은 몰랐다. 다 큰 자식이지만 눈물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위로한다고 말은 건넸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방에 있는 아들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지만 그냥 놔두란다.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아내가 없는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달리 할 게 없긴 했지만 잠들기 전까지 너무 마음이 쓰였다. 늦은 시간까지 딸아이 방에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다음날 아침, 어제일로 출근길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오늘은 지방 출장이다. 아들은 학교 친구가 군대를 간다고 늦은 귀가를 미리 선약한 상태다. 딸의 저녁을 챙기려면 분주한 출장길이 될 듯하다. 혹시 몰라서 딸에게 메시지는 미리 보냈다. 늦으면 미리 카톡 보낼 테니 혼자 시켜 먹으라고. 어제 딸아이 상태를 생각하면 오늘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상태다. 마음같이 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오전에 한 건, 오후에 한 건. 오늘의 업무 미팅 스케줄이다. 장장 세 시간 반을 이동해야 하는 거리다. 두 건의 업무 미팅이 행정구역상 모두 다른 지역이지만 거리가 멀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 오전 업무 미팅을 위해 이동 중 갑자기 오후 미팅 시간을 한 시간만 미루자는 연락이 왔다. 퇴근길을 서둘러야 해서 마음은 급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러자고 했다. 이동 거리에 비해 다행히 업무 미팅은 길지 않았다. 덕분에 늦지 않은 시간에 복귀할 수 있었다.
평소 퇴근보다 조금은 서두른 지하철 안.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았다. 다행이었다. 지금 퇴근길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 와중에 '뭐 먹고 싶은 거 없어'하고 딸아이의 기분을 조금 더 띄워봤다. 돌아온 대답은 '난 상관없어'의 쿨내 나는 '무성의'한 답변이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의 빈자리에도 '나 꿋꿋하게 잘 지낸다'라고 칭찬받으려 했다. 하지만 실상은 딸아이와의 '소리 없는 눈치 전쟁'을 일러바치고 앉았다. 아내는 이미 딸아이와 통화를 했고, 현재 딸아이의 정확한 상태체크까지 유선으로 한 듯했다. 자신이 얻은 정보를 남김없이 알려주며 잘할 거라는 응원을 덤으로 보냈다.
다행히 저녁 식사를 하며 딸아이와 많은 얘기를 했다. 학교 얘기에서부터 요즘 나오는 드라마 얘기 등. 불편해할까 동아리 얘기는 묻지 않으려 했지만 딸아이 스스로 먼저 얘길 꺼냈다. 다른 동아리에 들었고, 이미 떨어진 동아리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장하다', '잘했다 지수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 날 아내가 돌아왔다. 오일만이다. 아내가 이, 삼일 집을 비운적은 여러 차례지만 이번처럼 오일은 처음이다. 긴 시간이었고, 아내의 빈자리를 딸아이로 인해 더 새삼 느낀 오일이었다. 닷새만에 보는 엄마가 딸아이도 반가운지 한 참 수다를 떨었다.
"엄마, 엄마! 있잖아 아빠가 엄마랑 한 약속 어겼어. 엄마 입원한 그날 바로 막걸리 한 잔 드셨어"
"하하... 너 그걸 바로 이르냐"
치사한 똥강아지. 내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이며 신경 썼는데. 아내가 오자마자 냉큼 일러바치는 딸아이가 그래도 밉지 않다. 내려앉았던 기분이 이젠 평온을 찾은 듯싶다. 한창 아프면서 클 때다.
'늘 뜻하는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툭툭 털며 일어나면 넘어져도 괜찮아. 이번 일은 네 인생에서 아주 작은 실패 중 하나일 뿐이야' 딸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였다. 정작 하진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