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산

난 오늘부로 외가 친척을 지웠다

by 추억바라기

"아들아, XX생명 엄마 앞으로 들어가 있는 보험에서 암 진단금으로 2천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네가 반대하지 않으면 A은행에 '만수(외사촌)' 앞으로 되어있는 대출금을 일부 상환하는 게 어떨까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나에겐 외가 사촌형제들은 없다. 아니 그들을 머리와 기억에서 지웠다. 길고 길었던 인연의 끈을 끊어냈다.

이젠 대면대면 남과 다름없는 그런 사이로 지내는 게 오히려 편하다.




어머니는 팔 남매 중 일곱 번째 딸이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셔서 오빠들이 부모님 역할을 해 오셨던 것으로 들었다. 지금은 외삼촌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외삼촌 두 분과 이모 두 분만 살아 계신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세상의 연을 끊고, 땅으로 돌아가셨다. 폐암 판정을 받으시고 5년을 치료받으시다가 세상을 등지셨다. 오랜 병환으로 몸은 많이 상했지만, 큰 병으로 돌아가신 것치고는 통증을 호소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


어머니에게는 형제자매가 많은 만큼 조카들 또한 많았다. 내가 어릴 적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난 어머니의 조카들인 외사촌, 이종사촌들과 많이 가깝게 지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내게 친형제, 남매만큼 가깝게 생각되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하루아침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렇게 가깝게 지내던 형제자매들도 하나둘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아버지 사업이 어려울 때 신용대출 보증을 섰던 조카와 형제들은 그 돈을 상환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해오고는 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이자를 연체하거나, 원금 상환이 조금만 늦어도 그 상환에 대한 협박을 나에게 해오는 일도 생겼었다. 연락을 하고 지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결혼한 집을 알았는지 밤에 들이닥쳐 협박까지 받았던 일도 있어서, 그 당시에는 사채업자들에게 협박받는 거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하고, 두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그래도 대화로 풀어보기 위해 따로 밖에서 만났고, 사정 아닌 사정을 그들에게 해봤었다.

"형, 그 돈을 왜 나한테 달라 그래요? "

"아버지 돈으로 네가 공부도 하고, 결혼도 했잖아. 고모부가 능력이 안되면 네가 갚아야지."

"난 정확히 그 내역도 모르니까, 아버지하고 상의해서 연락드릴게요."

"야, XX새꺄! 주민등록증 내놔. 우리가 뭘 믿고 그냥 보내주냐."

"야이~시, 가만히 안 있을래? 그래, 철수야. 고모부하고 잘 상의해서 좋게, 좋게 정리하자."

외사촌의 양아치 같은 친구가 내게 협박했지만 그나마 그는 친척이라고 양아치 친구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게 조용히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날 이후 얼마간은 계단에서 소리만 나면 아내는 두려움에 떨었고, 난 내 폰에 그 외사촌의 전화번호만 뜨면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생길 정도로 우린 서로 점점 불편한 사이가 되어갔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는 부모님은 당신들 자식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아니면 조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그 대출금의 이자가 연체되지 않도록 꼬박꼬박 제 날짜에 납부하셨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께서는 암 진단을 받고서 자식들이 정신이 없었을 때, 당신들 마음에 있었던 무거운 짐을 정리하려는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들아, XX생명 엄마 앞으로 들어가 있는 보험에서 암 진단금으로 2천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네가 반대하지 않으면 A은행에 '만수(외사촌)' 앞으로 되어있는 대출금을 일부 상환하는 게 어떨까 해."


당신들이 하시려고 한 일에 걱정이 앞섰고, 길고 긴 암 치료에 필요한 진단금을 그리 쓰시는 게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난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했고, 어머님이 마음 편한 대로 하시라고 했다. 결국 진단금의 대부분을 대출금 부분 상환에 사용했고, 그 뒤로도 아버지 당신께서는 남은 원금과 이자 상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자식들에게는 어머니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부탁했고, 당시 어머니 치료 목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들어가는 치료 비용 때문에 남은 대출금 이자와 원금 상환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환 중인 와중에도 꾸준히 일을 하시며 원금, 이자를 상환해 나가셨고 그 이후로는 외가와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게 되었다. 연락을 너무 주고받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조카라는 사람들이 어머니 병환 중엔 거의 연락이나 병문안을 하지도 않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주 전에 병세가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의 죄책감을 조금 덜려는 생각이었는지 병문안을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고 장례식장으로 인사들 하러 왔을 때 얼굴들을 봤지만, 그리 반갑게 웃을 수 있는 사이들은 아니어서 난 상주로서 최소한의 예의로 그들을 맞았고, 그들 또한 조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슬픔을 보였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부의금을 정리하면서 장례식 비용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 남은 돈을 어떻게 처리할까 동생과 고민하다가 결국 아버지와 상의해서 외사촌의 대출금 잔액을 전액 상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버지는 눈 감으신 어머니의 마음도 같을 거라고 하시면서, 당신께서도 한결 마음이 편할 거라고 하셨다.

해당 은행 담당자와 통화하고 잔액 전체 상환 후 잔금 처리 영수증을 받았다. 아버지를 통해 외사촌에게 그 영수증을 전달하고 난 뒤 마음속으로 할 도리만 하고, 더 이상에 교류는 없을 거라 마음을 먹었다.

결국은 어머니 당신에게 짐이 되었던 조카들의 부채는 당신의 치료를 위해 받았던 암 진단금과 당신의 주검으로 들어온 부의금으로 정리를 하신 모양새가 되었다. 당신께선 남아있는 자식들과 남편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가시는 길에 베푼 배려가 된 것 같이.


나에겐 더 이상 외가 친척은 없다. 18년을 괴롭혀오던 무거운 굴레를 벗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난 오늘부로 외사촌 형제들은 지웠다. 아니 머릿속에서 없앴다. 난 앞으로도 외가 어른들께 내가 조카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만 할 생각이다. 이젠 더 볼일이 몇 번이나 있겠냐마는. 힘든 인연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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