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프로야구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좋아했었다. 좋아하던 팀은 삼성 라이온즈, 특히 지금은 은퇴한 라이온 킹 이승엽 선수를 좋아했다. 95년 입단하여, 삼성 라이온즈 9년, 지바 롯데 마린스 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5년, 오릭스 버팔로즈 1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에서 마지막 6년을 뛰었다.
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그는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며, 라이온 킹의 이름으로 프로야구를 평정했고, 아시아 한 시즌 홈런 기록을 세웠던 2003년에는 이승엽 신드롬을 일으키고, 야구장에 잠자리채를 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선수임을 아내도 잘 알고 있었다. 연애 시절에는 아내가 야구를 잘 몰라서 야구를 함께 보거나, 야구 경기장을 찾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TV에서 하는 야구를 함께 보고, 야구에 대한 규칙이나 방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아내도 어느덧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되어 있었다. 특히 삼성 야구가 한참 전성기일 때, 잠실 경기장에서 LG나 두산과의 경기 , 목동 경기장에서 넥센과의 경기가 있을 때에는 우리 가족은 야구장을 찾아 열혈 가족 팬임을 자랑하고는 했었다. 2011년부터 다시 삼성의 전성기가 돌아오고 막강 불펜의 지키는 야구를 선보이면서 나를 포함한 여러 팬들에게 또 다른 야구의 묘미를 선물하였다. 난 응원하는 팀이 우승까지 해서 기뻤지만 딱 5퍼센트 정도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일본에서 뛰고 있던 '라이온 킹 이승엽 선수'를 그리워하며 결정적 순간에서 아쉬운 플레이를 하는 삼성 선수 누군가를 볼 때면 늘 그였으면 해결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던 어느 날 그리운 라이온 킹이 국내 무대로 돌아왔고, 1년에 몇 번 되지는 않지만 잠실, 목동을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더욱 열심히 경기장을 찾았었다.
일본에서 전성기는 끝났지만, 그의 야구는 한창일 때 같이 강력하거나, 파워 넘치지는 않았지만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림이 없어졌고, 더욱더 견고해진 느낌은 지난 세월에서 나오는 연륜과 경험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나이는 늘고, 배트 스피드나 민첩성, 파워 등은 약해져 갔지만 그의 야구는 언제나 이승엽 야구로 불렸고, 그의 인성이나 겸손함은 모든 후배들이나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난 과거의 이승엽보다 나이가 들어가는 선수 이승엽, 인간 이승엽이 좋아졌다.
2015년 팀도 선수도 정점을 찍었고, 그는 그 시점에서 앞으로 2년만 더 야구를 하고 은퇴한다는 선언을 하였다. 난 많이 아쉬웠지만 팬으로서 경기장에서 뛰는 그를 2년을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그의 은퇴 연도인 2017년, 한국 나이로 42세. 운동선수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당연히 그의 신체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단순히 경험과 연륜으로 극복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흐른 느낌이 들었다. 기록으로 보여주듯이 2016년에는 3할을 넘던 타율과 540타석 이상을 뛰었지만, 은퇴 연도인 17년에는 타율 2할 8푼에 470타석을 뛰는데 그쳤다. 물론 2할 8푼에 470타석만 해도 대단한 기록이고, 은퇴하는 17년에도 24개의 홈런을 칠 정도로 타석에서의 무게감만은 중심타자의 위용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를 번복하지 않았고, 이런 선수의 뜻을 존중하여 구단에서는 마지막 하반기 경기들을 그의 은퇴경기로 기획하여 기념 경기 등을 치렀다. 난 그의 경기를 여러 차례 현장에서 봤지만 삼성의 홈인 대구에 가서 경기를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 이런 마음을 아내는 이해하고 있었던 터라 그의 은퇴경기들 중 대구에서 치러지는 경기를 관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오빠, 우리 결혼일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결혼기념일에 휴가 낼 수 있어?"
"왜? 결혼기념일 맞아서 가족여행가게?"
난 결혼기념일에 휴가를 낼 수 있느냐고 묻는 아내가 내심 의아해 아내에게 여행을 계획하느냐고 되물었다. 결혼 16년 동안 결혼기념일에 휴가를 내고 따로 여행 간 적이 10주년결혼기념일 여행을 제외하고는 따로 없었던 나는 더욱 궁금한 마음이 커졌다.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항상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추석 명절과 겹치거나, 근접한 날짜에 있었다.
"음~,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이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대구에 이승엽 선수 은퇴경기 보러 가자고. 내가 오빠한테 주는 결혼기념일 선물."
"우잉~, 정말? 고마워 여보. 정말 내겐 큰 선물이다. 내일 당장 휴가 올려야겠어."
난 아내의 배려에 고마웠고,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을 상상하며 심장이 두근두근, 몸속 아드레날린이 곳곳으로 치달리는 느낌에 며칠 동안 기분이 '업(Up)'된 상태로 일상을 보냈다. 9월 22일 그 날이 왔고, 아이들은 처남에게 맡기고, 아내와 나는 서울역에서 동대구역 가는 KTX에 몸을 실었고,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드디어 고대하던 삼성의 새로운 홈인 라이온즈 파크에 도착했다.
좌석도 경기장이 잘 보이는 테이블석을 예매해서 아내와 나는 그 날 그의 경기를 관람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드디어 라이온즈 파크 입성, 과장을 조금 보태면 첫발을 내딛는 그 걸음걸음이 떨렸고, 경기 시작 전까지 그 들떠있는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고 그 떨림은 채 5회를 넘지 못했지만, 8회 대타로 나온 이승엽을 보고서는 그 들뜬 마음은 경기 결과와 상관이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경기가 끝나고 잠시 이승엽 선수가 인사를 하러 나왔고, 난 앞으로 현장에서는 '저 전설의 선수'를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아쉬움과 한국 야구에 큰 발자취를 남기며 긴 시간 많은 팬들을 웃고, 울게 했던 감사함에 복잡한 감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진심 어린 격려의 박수로 그를 보냈다. 그 날의 경기 결과는 대구 홈까지 찾았던 나에게는 아쉬운 패배였지만, 경기 결과와는 무관한 큰 감동과 멀지 않은 미래에 은퇴를 바라보는 나에게 새로운 시선으로서의 의미를 보여줬다.
이승엽 선수의 은퇴를 지켜보며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성기에도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은퇴하는 그의 모습 또한 멋있고, 아름다웠다. 다만 전성기 때만큼의 화려함은 없었다. 난 은퇴를 생각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나이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모습은 그나 평범한 우리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30년을 하던 야구를 당장 그만두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이승엽 선수 스스로도 아마 막막했을 것이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 건 우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화려한 은퇴를 준비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은퇴하는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응원하고 격려하는 나 자신과 그 순간 내 곁에 소중한 가족들이 함께 하였으면 하는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