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T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20년 차 직장인이다.
변화하는 IT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고 매사 책임감을 갔고 일해왔다 자부해 왔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스스로 하는 업무에 당당했고, 관련 업무에 대해서는 한발 더 뛰고, 한발 더 공부해서 인정도 받고, 승진 기회도 빨리 잡아서 다른 사람보다 진급도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부터 이런 자신감에 상처가 되고, 직장에서 처음으로 내리막을 걱정하는 일들이 생겼다. 때가 되기 전에 잘 되던 승진도, 여러 차례 누락되었고. 진행하던 업무에서도 배제되기까지. 승진 누락이 2번, 3번 반복되니 마음에 응어리는 분노가 되고,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미는 느낌에 툭하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도 많았었다.
직장에서의 어려움은 관계에서 비롯되었고, 이런 사람 관계에서의 상처로 인해 받았던 채벌이 나름 가혹하고, 크게 다가왔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힘의 역학 관계로 따져 묻는 조직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인사조치라고 생각되었다.
맡고 있던 직책의 보직해임에, 맡고 있던 팀의 해체까지.
회사의 조치에 대해 억울함이 컸었고, 함께 일해온 동료들의 안타까워했던 시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마음에 여유조차도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일 밖에 없었다.
사실 가슴속 묻고 있던 사직서를 머릿속에서 몇 번을 던졌는지 모른다. 그 일을 겪은 후 가슴으로 여러 번 울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주어진 직책, 업무로의 복귀를 빨리 결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 당시의 상처와 감정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었고, 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걸린 시간이 꽤나 길었었다. 오히려 그 당시 나의 조치나 행동에 대한 후회의 깊이만 깊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아니 2년이 지날 즈음부터는 어느 순간 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무던해졌음을 깨달았고, 그 당시 상황은 머릿속에 잊혀가고 케케묵은 감정만 남는 것을 알았다. 케케묵은 감정도 잊어가던 어느 날 ,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옮겨간 부서에서의 매니저와 불화. 나 스스로 트러블 메이커는 아니라고 단정해왔지만 사건, 사고가 내 주변에서 자꾸 생겨나는 이유를 조금은 억울해하며, 한편으로는 걱정도 해보고, 행동도 조심스러워졌었다. 그 당시 매니저에게는 한 살 많은 내 나이와 본인보다 먼저 팀장을 했었던 커리어에, 전혀 다른 업무 스타일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사조치 요청을 본부장에게 했다.
사실 너무 둔감하게도 나로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가끔 업무적으로 매니저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조율이 가능한 범위에서의 의견차 정도로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오면서 이런 날을 메모해 오며 벼르고, 벼루 었나 보다.
1차 경고에, 2차 땐 본인 위의 부서장을 대동해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싸움에서 진 녀석이 싸움 잘하는 형한테 일러준 것 마냥. 너무도 갑작스러운 면담, 연이은 인사 경고 조치에 어이가 없고, 당황함에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부서장에게 강력히 항의하고는 싶었지만, 이젠 찰만큼 찬 나이에 괜히 나서서 항의하다가는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앞섰다.
숨길수 없는 감정에 얼굴만 불그락 한 상태였고, 두 손은 주먹만 꼭 움켜쥐고선 입을 닫았다. 그 부서장은 회사에서 평범한 부장 생사여탈권 정도는 가지고 있을 법한 위치의 사람이라 부서장의 경고 조치를 받으며 아쉽게도 난 그냥 꽂아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에 말 그대로 멘털이 가출한 상태였다. 이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스스로도 다른 세계 이야기인양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서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이 해 보려고 해도, 내 머릿속과는 다르게 내 몸과 마음은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이 상태로 업무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급하게 오후 휴가를 내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간섭 않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영화관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고, 내 손은 현재 상영 중인 영화 검색을 위해 스마트폰을 바삐 두드렸다.
마음속으로 바랐던 요구사항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강도가 조금 세고, 조금은 공포스러운 그리고 사람이 많지 않은 영화. 내가 선택한 영화는 19금 영화에 잔인하고, 조금은 공포스러운 "프레테터". 19금이니 사람은 조금 적을 테고, 잔인하고 조금은 공포스러우니 내 머릿속에 잡스러운 생각을 몰아내기에는 적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 입장 전까지만 해도 계속 회사에서의 감정만 곱씹던 나였지만 영화관 입장 후 나는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게 이루어짐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관 입장과 동시에 남은 감정은 없고, 두려움만 남았다.
사실 입장할 때부터 평일 오후에 영화관에 사람이 이리 없을 수도 있는지에 의아해하며 입장했고, 영화관에 나 포함해서 관객은 딸랑 2명. 영화 장르는 공포영화. 혼자 안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영화 시작 바로 전까지 영화관 관객은 나 하나여서 정말 그냥 나갈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영화 시작과 동시에 한 명이 들어와서 자리를 지키며, 가슴 졸이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온 것을 후회하는 맘도 들었고, 텅 빈 영화관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오전에 그 감정은 별나라로 가버리고, 영화 관람 내내 쫄보가 돼버린 나는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시간은 시간대로 지나버렸다.
영화는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피식하는 웃음이 났다.
감정을 비우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무서운 영화에도 잠깐이지만 잊힐만한 그런 정도의 사소한 사건이라는 생각에 아주 조금이지만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보다 감정만 남았던 사건인 거 같아 좀 웃프다.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조금은 늦게 깨우치기는 했지만, 그 영화관에서 얻은 경험은 앞으로도 살아가는 내게 많은 힘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에 영화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9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도 사람인지라 조금은 감정이 개입되는 일이 짧은 시간 있었지만,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오히려 먼저 그 매니저의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한 듯 보이도록 행동했다. 그냥 무던하게...
그 양반 입장에서도 본인의 행동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괴로웠을 거라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원래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다리 뻗고 자지는 못한다는 옛말처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녔네라는 생각에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니면 세월에 내가 조금은 옆도, 뒤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난 오늘도 이 양반을 보면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입으로는 "식사 맛있게 해요."라고 인사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