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 나른해진 오후.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요즘은 부쩍 식곤증이 심해졌다. 눈꺼풀도 나이 때문에 살이 찐 건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배속에 음식만 들어갔다 하면 평소보다 심하게 중력의 힘을 느끼는 것 같다.
'지잉~~~'
노트북 옆에 놓아둔 스마트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잠김창 위로 보이는 알림으로는 문자 메시지다. 한창 업무중일 때는 확인도 늦게 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졸음도 깰 겸 오른손으로 폰을 집어서 두 번 터치로 화면을 깨웠다.
깨운 스마트폰 홈화면의 메시지 아이콘 위로 '1'이라는숫자가 보였다. 손가락을 두드려 메시지를 열었다. 부고 메시지였다. 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정확히는 성인이 되고서 연락조차 한 적이 없던 친구였다. 친구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나한테 왜 보낸 걸까? 폰에 저장된 번호로 모두 전달한 메시지인가? 가야 하는 건가?'
고민스러웠다. 5년 전 내 어머니 장례식 때 조문을 왔었나 생각해 봤지만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나마 어머니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그 친구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았던 게 마지막 인연의 끝이었다.
그래도 문자까지 줬으니 무작정 안 가는 건 찜찜할 것 같았다. 그래도 굳이 안 가려고 마음먹으면 가지 않아도 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반대로 가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지만 30년이 넘게 연락하지 않던 사이였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경사도 아니고 조사니까 장례식장이 사무실에서 가까우면 가봐야겠다'
다시 한번 부고 메시지를 자세히 봤다. 장례식장 위치를 알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지방만 같아도 가지 않으려고 했건만 다행히도(?) 30분 거리였다. 그냥 편하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가기로 마음을 먹으니 한 가지 고민이 또 생겼다. 조의금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상조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직장에서 가까운 동료 사이면 5만 원, 10만 원을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내는 금액이 5만 원이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그래도 5만 원은 아니지. 10만 원은 내야겠지?'
결국 고민 끝에 10만 원으로 갈등하는 내 자아와 합의를 봤다. 가까운 친구였으면 더 넣었겠고, 얼굴만 아는 직장 동료 정도였으면 가지 않았거나 5만 원 카톡 조의금만으로 갈음했으리라. 명색이 한 동네에서 어릴 적 어울렸던 친구라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했고, 그 마지노선이 10만 원이지 싶었다. 퇴근길에 은행에 들러 10만 원을 찾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가는 내내 왜 연락했을까 하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봤자 초등학생 때 친하게 지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거의 본 적이 없던 친구였다. 이젠 친구보다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 정도가 어울릴 사이였다. 가는 교통편이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타고, 내리고, 갈아타고를 반복하는 복잡한 길이다 보니 고민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게다가 초행길이다 보니 생각은 깊게 빠져들지 못했고 들락날락 반복하다 어느새 내 발길은 장례식장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면서 분향소 쪽을 보니 친구가 보였고, 부의록을 작성하고 분향을 했다. 분향을 하고 나서 상주들과 맞절 후 제대로 친구의 얼굴을 봤다. 30년 만이지만 세월이 흐른 흔적 말고는 변한 게 없었다. 잠시 맞잡은 손에서 다른 감정은 없었고, 반가워하는 표정과 말들만 오갔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
친구의 안내로 빈테이블에 앉았고, 둘 간에 많은 사연이 있는 건 아니었던 터라 담백한 안부만 오갔다. 연락 없이 흐른 세월의 양이 크다 보니 친하게 지냈던 세월의 기억은 한 줌이었다. 그래도 그 한 줌의 기억으로 찾아온 내게 친구는 무척 고마워했다. 나 또한 부친을 보낸 친구에게 조금은 위로가 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을 마주하며 얘기를 나눴다. 특별히 어색하거나, 뛸 듯이 반갑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또 언제 볼지 모를 옛 친구를 이렇게라도 한 번 본 걸로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그냥 최소한의 도리는 할 수 있는 사이 정도는 되니까.
'잘 정리하고 나서 연락할 테니 밥 한 번 먹자'
자리를 털고 나올 때 친구도 나를 따라 나왔다. 걸어 나오면서 한 말은 적당히 거리 두며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 간에 하는 인사말이었다. 모두 잘 알듯이 사회생활에서 밥 먹자는 말은 가벼우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인사말이다. 난 그 순간 이미 '와줘서 고맙다' 정도의 인사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난 30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인사를 끝냈고, 이후 만나지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그곳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부고 메시지에 당황한 건 사실이다. 알고 계시던 어른이었지만 일부러 찾아뵙고 인사할 정도로 가깝지 않은 지인이었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던 사이였지만 막상 연락을 받고 나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누굴 통해서 들은 얘기였다면 가지 않았겠지만 직접 연락을 받고 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갈등의 시작은 나로 인한 것이었지 부고 메시지를 보낸 친구를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방문 여부에 따라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판단할지 또는 어떤 낙인을 찍을지. 다시는 안 만나도 될 사람, 못 만나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이건만 난 그 순간에도 누군가를 의식했다.
막상 방문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부고 메시지를 보낸 의도나 목적을 의심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알리고 싶었을 뿐인 듯하니까. 정말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를 잃은, 가족을 잃은 사람이니 그냥 위로가 필요한 게 맞다고 생각하고 말면 그뿐이지 싶다.
내적 갈등은 필요 없었다. 고민되면 안 가면 됐고, 다녀왔으니 잘 다녀왔다 생각하면 됐다. 내겐 아주 작은 고민만이 있었을 뿐이다. 큰 슬픔을 가진 친구도 있는데 고민이 대수는 아니었다. 다신 연락이 닿지 않아도 그날의 위로만으로도 됐다. 그래 그냥 그것만으로도 된 거다.
매주 수요일에 연재하던 브런치북은 이번 주 개인 일정으로 쉬어 갑니다. 연재 기다리셨던 많은 분들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