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TV를 보시던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끝낸 아내와 나를 불러 앉혔다. 평소 같으면 우리가 서서 무엇을 하든 오랜만에 본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신의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시던 분이셨다. 굳이 불러서 자리에 앉혀가며 할 말이 있다는 모습은 평소 보기 힘들다. 무언가 중대 발표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조금 걱정도 됐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 지우기 싫어하시는 아버지 성격을 잘 알기에 지레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 자리에 앉아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했다.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는 아내를 보며 입을 떼셨다.
'앞으론 니들 집에 올라오지 않을 생각이다'
무슨 말인가 정리가 되지 않는 것도 잠시였다. 이런 내 생각을 들킨 건지 아버지는 본인의 생각을 금세 정리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번까지만 제사 때 올라오고 내년부터는 명절 제사,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네 엄마 제사까지 그냥 너희들 편한 대로 해라. 간소하게 하든, 그냥 제사를 지내지 않든. 너희 뜻대로. 아버지 세대의 제사 문화를 너희들에게 이어가라고 너무 고집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 들고 이젠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고'
잠깐 마음속 희비가 교차했다. 일 년에 몇 번밖에 되지 않는 제사지만 육 년이 되어가는 동안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익숙해지면 쉬울 법도 한데 준비과정에서 매번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힘들어서 올라오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마냥 기쁠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던 중에 아내가 나서서 먼저 얘길 꺼냈다.
'아빠 제 생각엔 엄마 제사는 철수 씨가 장남이니까 그냥 지낼게요. 그 대신 지금처럼 격식을 모두 차리진 않고 엄마 생각하며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요. 그리고 엄마 제사가 O째 주니까 12월 O번째 주말에는 저희가 아빠한테 갈게요. 엄마 모셔놓은 곳에 가서 철수 씨가 술 한잔 올리면 엄마가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엄마 돌아가시고 늘 생각했었거든요. 엄마 기일에 엄마 모셔놓은 곳에 못 가는 철수 씨나 아빠 마음도 신경 쓰이기도 했고요'
아내의 얘기에 아버지도 많이 흡족해하셨고, 나 또한 아내의 '근사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이지 싶다. 어머니 기일 때고, 명절 때도 지금 집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니 정작 어머니를 모셔놓은 봉안당에는 그런 날을 피해 갈 수밖에 없었다. 제일 기억하고, 인사드려야 할 날에 갈 수가 없으니 옆에서 보는 아내도 마음이 쓰였지 싶다.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속 한편에 그런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어머니 기일조차 한 번을 가지 못했으니 불쑥불쑥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장인어른 첫 기일에 처가에서 제사를 지낸 후 다음 날 장인어른을 모신 곳에 인사를 드렸다. 당시 그렇게 할 수 있는 아내나 처가 식구들이 잠시나마 부러웠다.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아내는 진즉에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기에 오늘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오늘 아버지의 제안에 역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제안이 내게도, 아버지에게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듯싶다.
우린 어머니 제사 외에도 나머지 명절, 조부모 제사까지 많은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어머니 기일이 껴 있는 주말에는 동생네까지 모두 모여 어머니 모신 봉안당에 인사드리고, 모두 함께 식사를 하기로 정했다. 그날이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당신 기일에 자식들이 찾아와서 기쁠 것이다. 거기에다 당신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좋은 시간을 갖게 될 테니 하늘에서 더 기뻐하지 않을까.
또 설에도 아버지가 못 오신다고 하니 아내의 제안으로 우리가 고향으로 가기로 했다. 본가에서 간단하게라도 설차례를 지내고, 명절 때라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앞으로 조부모님 제사는 지금보다는 조금 간소하게 지내는 것으로 정리했다.
아내의 배려를 전제한 소신 제안과 아버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포용으로 앞으로 있을 우리 집 제사는 많이 바뀔 것이다. 전통과 현실의 적절한 조화가 앞으로 우리 집 제사의 기조가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그런 가족간이라도 소통과 이해 그리고 행복이 그런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당장 내년 설차례부터 시작이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로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헤쳐갈 것이다. 우린 그런 가족이니까.
전통적 제사를 직접 지낸 지는 육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모시다 보니 이젠 다른 제사에 가서도 차례의 순서나 제사 음식의 위치도 훈수를 둘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작은 불만 섞인 생각이 늘 남아있었다.
'문어는 꼭 올려야 하나?' , '이렇게 많은 종류의 전을 올려야 할까?', '통닭은', '제철 과일 몇 가지만 올리면 안 될까?', '잘 먹지도 않는 큰 생선을...'
제사 준비할 때마다 늘 꼬리표처럼 물고 다녔다. 몇 번 얘기는 꺼내봤지만 그냥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은 포기한 것도 있었지만 조금씩 변화도 생겼다. 직접 하던 전을 그냥 전 전문점에서 사는 걸로 바꿨고, 수박이 비싸니 멜론으로 바꿔 올린 적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 집 제사 문화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결국 대대적 제사 형식의 변화를 꾀하기로 정리됐다. 큰 변화였지만 반대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이 함께 해 더욱 따뜻한 기억이 가득할 날 일 듯 싶다.
제사. 단순히 상차림에서 끝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사랑했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기억 되새김'하는 날이다. 게다가 살아있는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가족이라는 따뜻함을, 온기를 상기하는 날이지 않을까. 얼마나 긴 시간이 될 줄은 모르겠지만 당장은 내년을, 내 후년을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