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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턱 하고 걸렸던 그날도 일 년이 지났네요

우린 서로 등 뒤의 시간을 쫓는 것 같아요

by 추억바라기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어른이 되는 거지'

과거 군에 가기 전 주변 어른들이 많이 했던 말이다. 당연히 져야 하는 의무지만 누구 하나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곳이 군대라는 곳이다. 특히 쌍팔년도 군대 시절은 아니라도 90년대 군번으로 입소하던 그 시절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은 환경, 분위기 무엇보다 복무개월수를 생각하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쌍팔년도 : 1988년도


처음부터 입대 때문에 답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 먼저 간 것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입영 통지서가 나오고서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입영일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모르겠지만 군대 가서 보낼 긴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당분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거라는 답답함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더욱이 군에 입소 후 훈련소 6주 동안 혹은 조금 꼬이면 그 이상의 시간을 전화로 안부를 전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입소해서도 밤만 되면 집생각에 마음속으로 울었고, 부모님이 그리도 보고 싶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그래서 훈련소 퇴소 때는 부모님 면회가 그 무엇보다 소중했었다.


부대에서의 시간은 마치 누가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천천히 흘렀고, 반대로 휴가를 나오면 두 배의 속도로 지나갔다. 이러다 전역하는 날이 올까 걱정도 많이 됐지만 결국 계절은 바뀌고, 여러 번 계절이 바뀌고 났더니 해도 바뀌었다.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그 긴 시간은 끝이 났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이를 먹은 만큼 하루하루 정말 어른이 되어갔다.


생각해 보면 아들의 군입대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영 전날까지도 별일 아니라는 듯 평소같이 행동하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입영일 아침이 되자 얼굴 표정도 어두워졌고, 말 수도 많이 줄었다. 훈련소 입소 후 연병장 소집 전 나란히 벤치에 앉아서는 핸드폰만 만지작대는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들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란할지 너무도 잘 알기에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병장 : 군대 운동장


집합하라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울렸고, 당장 내일 아침부터 아들방이 빌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여러 번 아들 등을 쓸어내리는 손과 달리 나오는 말은 짧은 인사가 고작이었다.

"잘 다녀와 아들. 건강하고"


내가 건넨 말은 주변 다른 장병 부모들 말과 잠깐이라도 곁에 두려는 아내의 포옹으로 묻혀갔다. 마음 아파할 우릴 위해서인지 자신을 위한 행동인지 아들은 짧은 눈인사와 조금 떨어져 긴 손인사 한 번으로 장병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아들은 어릴 때 무척 예민했었다. 아기 때는 안아주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고, 심야 수유 후에도 한 번에 잠이 든 적이 거의 없었던 아들이었다. 잠투정은 왜 그리 심했던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그 버릇은 전혀 고쳐질 기미가 없었다.


언제 키우나 싶었던 그 시절이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아들은 군대에 들어갔다. 아들을 군에 들여보낼 때만 해도 '다 키웠다'는 뿌듯함에 스스로가 대견했고, 당장은 아니라도 곁을 떠날 거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아들을 봤을 땐 아직도 곁에 머물 자식이라는 생각에 어느새 안도했다.


어느덧 아들이 군에 간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들이 휴가 나왔다 복귀할 때면 여전히 아들 입소식이 떠오르곤 한다. 휴가 복귀마다 돌아서 나가는 아들의 등뒤만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아쉬움에, 그리움에, 안쓰러움에. 그래서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자식일 수밖에 없나 보다.


내가 입대할 때도, 휴가를 나왔을 때도, 휴가를 복귀할 때도 내 부모님도 내 마음 같지 않았을까. 그 시절 잘 다녀오라는 말을 건네는 아버지 모습이, 옆에서 고갤 돌리며 눈물 훔치던 어머니의 슬픔이 잠시 기억 속에 그려졌다.


우린 모두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땐 난 그분들의 자식이었지만 어느새 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앞서 가는 아버지 등 뒤의 시간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내 등 뒤의 시간을 아들이 쫓는다. 결국 아들과 나,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닮아가는 것 같다.


어깨에 짊어질 책임이 생기고, 세상을 마주한 눈빛이 달라졌을 때 아버지는 내게, 또 나는 아들에게 비로소 아빠가 되나 보다.


내 아들도 언젠가 나처럼 자신의 자식을 배웅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아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입대날 들어가는 그 뒷모습이 왜 그렇게 걱정되고, 무거워 보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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