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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때리더니 이젠 귀엽다고 볼을 당긴다

데자뷔는 대를 이어서도 일어난다

by 추억바라기

"김철수! 잠깐 이리 와 봐"

몇 발자국 앞에서 걸어오던 선생님이 손을 까딱거리며 날 불렀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난 어정쩡한 자세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숙여 마지못해 인사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국어 선생님은 날 불러 세웠다. 당연히 어떤 행동이 이어질지 알았기에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중학교에서 선생님 호출에 줄행랑은 말 그대로 항명이었다. 당장이라도 튀어가야 했지만 몸은 이미 다음에 벌어질 행동이 싫었나 보다. 쭈뼛쭈뼛 아주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욘석, 어딜 그냥 가려고 해. 어휴 요 볼은 어쩜 이리 탱탱하니"


선생님의 장난(?)의 시작은 내 실수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첫날 첫 수업부터 초등학교때와 달리 엄숙했던 수업의 연속이었다. 많이 긴장했고, 경직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혈기왕성한 시절 장난도 심하고, 탈도 많은 남학교였으니 당연한 절차였을지도 모르겠다.


수학, 영어, 과학까지 모든 선생님이 삼촌뻘 정도 돼 보였다. 게다가 긴장해서였는지 모두 인상도 험악해 보이는 남자들뿐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엄숙한 목소리로 겁을 잔뜩 줬고, 조금만 졸거나, 떠들어도 지휘봉을 휘둘러 칠판이나 교탁을 두드려댔다. 첫날부터 맞았던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학년 초 학교 분위기는 공포스러웠던 기억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젊은 여자 선생님이 교실에 처음 들어왔고, 그분이 바로 문제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을 잘 모르던 날 포함한 학생들은 작은 체형, 동굴동굴한 얼굴에 선한 인상까지 보고서는 이젠 살았다며 긴장을 늦췄다. 수업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오전 수업시간 내내 떠들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내듯이 떠들기 시작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선생님을 너무 얕봤다.


"거기 조용~!!! 너, 너 그리고 너 나와. 그래 너도"


본보기로 몇 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불려 나갔고, 그 아이들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선생님은 불려 나온 학생들 오른쪽 볼을 왼손으로 당기더니 남은 오른손을 들어 냅다 왼뺨을 때렸다.


쫘악~~ (조용)~~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때까지 누구에게 뺨 한번 맞은 적이 없었는데 다른 무서운 선생님들도 아닌 천사라고 생각할 뻔했던 여선생님이 이런 무서운 체벌이라니. 한 명씩 체벌이 가해졌고, 드디어 내 차례까지 순서가 왔다.


선생님은 앞에 맞았던 아이들과 똑같이 왼손으로 내 볼을 당겼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오른손을 휘두르지 않았고, 잡고 있던 왼손을 당겼다 놨다 하며 내 볼을 신기한 듯 만졌다. 물론 그렇다고 안 맞은 건 아니지만. 잠시의 손 장난 이후에 내 오른뺨도 희생양이 되었다. 내피셜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강도는 조금 약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날 이후부터였다. 내 볼이 시달리기 시작한 게.


선생님은 1학년 첫 시간 이후로 나와 마주칠 때면 종종 내 볼을 당기셨다. 귀엽다고 하는 스승의 행동이었지만 무릇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던 내겐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을 시달렸고, 3학년이 되어서야 선생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니 분위기 잡고 뺨을 때렸던 수업 첫날 선생님 표정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항상 늘 웃고 계셨다. 일부러 무섭고, 엄하게 구신 행동들도 학기 초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한 선생님만의 방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다. 옛날이야기만큼이나 꽤 세월이 지난 이야기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그 시절의 나를 보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느니,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어떤 얘길 해줬는데 너무 웃겼다느니 등등.


아이들이 교복 입고 등교하는 모습만 봐도 그 시절 그렇게 입기 싫어했던 교복이 지금은 그립다. 왜 그리도 싫어했는지.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세월은 우리 아이들을 통해 다시 한번 나를 꺼내 놓는다. 시간이 흘러도 어떤 감정들은 변하지 않는 듯싶다. 우리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오래전 내 웃음을 다시 만날 때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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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 새로 한 안경 어때? 나 공부 좀 하는 학생 같지 않아? 이 안경 쓰고 지능이 좀 올라가 보이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시력이 나빠진 딸아이가 안경을 새로 했다. 뭐 본인 피셜로는 수학 좀 잘하게 보인다나 뭐라나. 하지만 '업'된 상태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잠깐 거울을 보더니 안경 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금세 불만을 터트린다.


"안경이 볼에 닿아. 도대체 내 볼살은 언제 빠지는 거야"


툴툴 끝이 없다. 몸만 보면 40킬로인데 얼굴만 보면 80킬로란다. 친구들조차 얼굴은 아직 초등학생이라고 놀린다고 불만을 뱉어냈다. '업' 된 기분이 채 2분이 가지 못했다.


며칠 전에는 선생님까지 딸아이 통통한 얼굴을 놀렸단다.

'지수야, 어젯밤에 라면 먹고 잤니?'

선생님도 참 왜 그러셨는지. 한참 외모 때문에 말 많고, 탈 많은 딸인데 눈치 없이 디스를 하시다니. 조금은 원망스러운 생각이 머릴 스쳤다. 하지만 금세 아이 불만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물론 딸아이가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으니 마음속으로 웃고 말았다.


딸아이 볼이야 어쩌겠는가. 그 옛날부터 집안 내력인걸. 아내나 나나 20, 30대까지도 한 볼살 했었다. 그 통통한 볼살 덕에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그랬는지 동안이라는 얘길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것들은 참 많더라. 볼살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 통통했던 녀석이 사라지니 금세 늙어 보인다는 얘길 듣는다. 정말 '아, 옛날이여'다.


딸, 있을 때 잘해라. 없어지고선 다시 생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


프랑스어로 "deja vu"는 "이미 보았다"는 뜻이다. 우린 이미 경험했던 일을 다시 겪으면 데자뷔를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데자뷔는 뇌의 착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부모, 자식 간에 일어나는 데자뷔와 유사한 현상은 단순한 뇌의 실수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시간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너, 그리고 언젠가의 또 다른 누군가가 시간이라는 거울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 하나의 데자뷔를 조용히 품는다. 그건 단순한 기억의 착각이 아니라, 사랑의 반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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