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면...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 중에서

by 추억바라기

세월이 흘렀다. 암에 걸린 딸은 아버지보다 일찍 세상을 등지게 된다. 홀로 남은 아버지는 지난날을 자책하고 눈물을 참아가며 딸에게 우편번호 없는 편지를 보낸다. <딸에게 보내는 굿 나잇 키스>라는 책을 통해서.

서점을 배회하던 어느 날, 이 책을 집어 들어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나는 아래 구절에서 시선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 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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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브런치에 쓸 글감을 찾던 중 서재에서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벌써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였다. 책도 이쁘고, 글도 이쁜 이 책은 어디다 꽂아놓아도 눈에 띈다. 차분히 책을 넘기던 중 눈에 들어온 작은 글 하나. 자꾸 눈에 들어오고, 또 밟힌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랄까 이 글을 읽는 내내 이기주 작가가 이야기한 이어령 교수의 책에 대해서도 너무도 알고 싶어진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그래도 난 적당히 일하고, 열심히 아빠 노릇하려고 애써서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 딸도 그리 생각할지는. "글쎄?"


가슴 저미는 마지막 구절에서 눈에서 입으로 그리고 귀로 그 구절을 읊조린다. 몇 번을 읊조려 본다. 읊조리며 아픈 마음을 다독인다. 짧은 글이지만 이렇게도 사람 마음을 절절히 아프게 할 수 있구나 싶다. 세상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이 한결같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푸념, 절실함과 딸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이어령 교수는 7년 전 2남 1녀 중 맏딸 이민아 목사를 암으로 먼저 보냈다. 미국에서 검사 생활을 했던 딸은 목사 안수를 받았고, 위암 발병 이후, 수술하지 않고 시한부를 택해 열정적으로 쓰고 강연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지금 87세인 이 교수는 마치 그의 바람일 것 같이 암 투병 중이다. 하지만 먼저 간 딸과 똑같이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하고, 죽음까지 기록할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자식이 부모를 쫓아와야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쫓아간다고 말한다. 노령의 이 교수에게는 7년 전의 그 딸이 아직도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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