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버린 청춘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쏘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를 읽고

by 추억바라기

" 그렇다 자유였다. 고모가 퇴원을 반대하는 바람에 해 질 녘에야 수속이 끝났지만, 가방을 메고 홀로 병원 정문을 나섰으니 틀림없는 자유였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나의 자유였다. 발아래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늘어선 언덕이 있었다. 언덕이 끝나는 곳에 버스와 승용차가 오가는 국도가 있었다. 국도 너머에 도시가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집이 있었다. 그들의 세상이 있었다. 그들의 세상······. "




『28』, 『7년의 밤』, 『종의 기원』 등 선 굵고, 어둡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를 소재 삼아 작가만의 구성과 짜임새 있는 글로 독자들에게 너무도 선명하고, 소름 끼치는 전율을 주는 글들을 많이 쓴 스릴러 인기 작가 정유정 님의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소개할 책은 최근 작품과는 다른 장르의 블랙 코미디. 특별한 환경에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내 심장을 쏴라』.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정신병원에 갇힌 두 젊은이의 탈출기를 그린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이다. 반복하여 탈출을 꿈꾸고 시도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상에 대한 웃픈 이야기이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작가는 작품의 구성, 전개 등을 위해 오랜 고증 시간이 필요했을 듯하다.


25살의 동갑내기. 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수명과 류승민, 두 사람의 좌충우돌 정신 병동 사고 치기 프로젝트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앞에 소개 글만 보면 왠지 코미디 장르의 해피엔딩이 떠오르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한 조금은 새드 엔딩 같은 블랙 코미디이다.



"류승민, 이놈 기억하나?"

나는 본의 아니게 류승민이라는 인간과 마주 선 꼴이 됐다.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푸르뎅뎅하게 멍든 눈이 드높은 상공에서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발목에서 달랑거리는 짤라뱅이 바짓단이 보였다. 내 바짓단은 발등을 덮고도 남아 복도 바닥에 한 자락이 깔려 있었다. 우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맨발이라는 것뿐이었다.

"그제 밤, 너 때문에 피를 본 놈이야. 네 짝꿍이기도 하고. 이름은 이수명이다."

승민은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얼굴에 웃음기가 종이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사이좋게 잘 살아봐. 나이도 같고 아이큐도 비슷한 거 같으니까."

"아아······."


두 젊은이의 첫 만남이다. 둘은 외모부터 서로 너무 다르고, 집안 환경도 너무 다르다. 주인공 수명은 세상이 두려워 도망쳐버린, 그래서 자신의 세상 안에 갇혀 지내는 폐쇄적 인간이다.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본의 아닌 사고를 일으킨 탓에 “이번에 가면, 죽기 전엔 못 나온다"라는 아버지의 선고와 함께 수리 희망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인연인지 악연인지 같은 날 입원하게 된 승민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 웃지 못할 사고들이 생긴다.

생동감 있고, 짜 맞춰 놓은 듯 개성 있는 캐릭터의 구성은 작가의 글들에서 항상 보여왔던 시그니처이다. 다만 정신 병동이라는 독특하고,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제한적인 배경 때문에 각 인물들의 심리적 묘사보다는 캐릭터의 행동, 주인공 수명이 이해하는 수준 정도의 캐릭터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작가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음을 책을 읽다 보면 생각해 봄 직하다.


주인공 이수명은 끔찍한 과거를 앉고, 사회에서 자신을 격리하고 자신을 포기하며 살아온 청춘으로 비친다. 정신질환을 앓던 어머니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으로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트라우마 속에 본인을 가두고, 폐인처럼 살아온 인생으로 점철 지어진다. 이런 일들로 인해 자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맡겨지게 되고, 스스로 조차도 병원에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살던 중 동갑내기 류승민을 만나고 처음에는 그냥 미친놈 정도로만 생각하다 그의 인생과 그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그의 탈출을 돕게 되는 최고의 조력자, 동반자가 된다.

이수명과 대립각인 점박이, 환자들을 측은히 여기고 병원 측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최기훈 선생, 함께 방을 쓰는 김용, 만식 씨, 마지막 탈출을 돕는 우울한 청소부 등 생동감 있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로 인해 좁고, 폐쇄적인 배경에서도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조금 지루하고, 책 속 캐릭터들의 이해만으로도 조금은 더디 읽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심사평이나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도 유사한 경험을 얘기하는 곳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반부터는 정신 병동에서만 가능한 사건, 사고들에 두 주인공의 의기투합까지 흥미 있고, 조금 유머스럽기까지 한 장면들이 곳곳에 연출된다. 이야기의 종반으로 가면 이수명의 충격적인 과거 기억과 류승민이 정신 병동에 들어오게 된 사건, 이유 등이 나오면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슴 아픈 감동을 선사한다. 이수명의 내면에 닿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작가가 이 시대 슬픈 청춘들을 조금은 위로하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작가의 최근 작품들과는 조금은 다른 호흡으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사실 『종의 기원』은 읽는 내내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도 잊어버릴 때가 있을 만큼 긴장과 몰입이 극에 달했고, 책을 읽고 나면 피로할 정도로 많이 긴장을 했었던 듯하다.『7년의 밤』도 이미 알고 있는 진실임에도, 책의 종반부까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어우르며 진행되는 스릴 있는 구성으로 차분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을 쏴라』는 읽는 내내 긴장하거나 몰입이 극에 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탈출기를 통해 자유에 대한 갈망,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두 주인공들의 생각들을 이해하며 책을 펼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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