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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풍경 우리 집이 제일 부럽다고?

혼자가 익숙해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명절에는...

by 추억바라기

추석은 가을 들판을 가득 채운 황금빛 벼처럼, 일 년 동안의 행복의 결실을 수확하는 풍성함의 상징과도 같다. 집집마다 분주히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고,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해지는 때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우리 사회의 명절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한때는 당연하던 제사와 차례를 더 이상 모시지 않는 가정이 늘었고, 모이더라도 하루쯤 얼굴을 보고 흩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가운데 우리 집은 작년 조금은 특별한 결정을 내렸다. 명절마다 각자의 부모님 집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제사 대신 살아 계신 부모님을 곁에서 챙기고, 그 시간을 소중히 나누자는 의미였다. 아내는 매번 이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어머, 너무 잘했네. 부럽다.”라는 반응을 듣는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던 일임에도 친구들은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놀라워한다. 추석이 되면 아내는 장모님과 처가식구들이 있는 처가로, 난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간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주 어릴 적 말고는 늘 어머니가 함께 계셨고, 결혼을 해서는 부모님 댁에 혼자 가는 일 없이 아이들과 아내가 늘 함께였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가족이지만 아버지와 둘이서 며칠을 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늘 걱정하고는 있지만 자식으로서 나이 든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작년 추석을 함께 보내고 나니, 그 시간만큼 진득하게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 2024년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체 세대의 42%가 1인 세대였다. 무려 1,012만 2,500세대가 혼자 사는 집이라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령 1인 세대의 증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인 가구는 이미 213만 가구를 넘어섰다. 전체 세대의 9퍼센트, 65세 이상 인구가 포함된 가구의 38퍼센트에 이르는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52년이 되면 전체 1인 세대 중 절반 이상이 노인 가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불과 27년 후의 일이다.

예전에는 삼대가 한집에 모여 사는 것이 흔했다. 어린 시절만 떠올려도 골목마다 조부모, 부모, 손주들이 함께 북적이던 집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미성년 자녀가 아니면 두 세대가 함께 사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다. 자식들이 있음에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어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긴 세월 자식들을 키워낸 부모들이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고령의 부부끼리 혹은 혼자 지내는 쪽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가 된 뒤에도 이웃과 형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오랫동안 자식 곁에 사는 것보다, 가까이 사는 친구나 형제가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자식이 있지만 늘 바쁘고, 부모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삶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부모들은 애쓴다. 그래서 노인들은 가끔 찾아오는 자식보다 매일 마주치는 옆집 사람에게 더 마음을 연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을 마다하겠는가.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자주 찾아주고,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자식들은 그 바람을 잊고 살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 산다는 이유로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신 마음 한편에는 ‘언제든 내가 찾아가면 되지’ 하는 안일함이 자리한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그 ‘언제든’이란 시계의 시간은 줄어들고, 짧아진다. 자식은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그 시간이 기다려줄 거라는 오해와 편견 속에 산다. 하지만 부모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복지가 좋아지고, 생활이 윤택해진다고 해도 가족이 주는 따뜻한 온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어떤 제도도, 어떤 경제적 풍요도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한다. 결국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자주 연락드리고, 적어도 명절 같은 날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은 든든해진다.


추석은 원래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가족이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햅쌀로 빚은 송편, 차례상에 올린 음식,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풍성한 하루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많이 사라졌지만,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달라진 세상 속에서 그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가족이 함께 모여야 할 이유, 부모를 찾아야 할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올해 추석만큼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잠시라도 얼굴을 보러 가면 어떨까. 차례상을 차리든 차리지 않든, 제사가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웃고, 부모가 미소 짓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명절의 ‘찐’ 풍경이다. 풍성한 한가위 보름달처럼 가족의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명절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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