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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lmost there

별 헤는 밤..

by Cool K



"Kate! 여기야!"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하비 사막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슈아트리 속을 비집고 들어가 둘이 앉을 만한 공간을 겨우 만들고 난 후에야 나는 Kate를 불러 세웠다.


"Oh my god!" 타는 듯한 열기에 죽는 줄만 알았다며 케이트는 앉자마자 물부터 벌컥벌컥 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어깨는 좀 괜찮아?" 지난밤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던 중 배낭이 무거워 어깨가 아프다고 좀 투덜거렸던 게 내심 마음게 걸렸던 모양이었다.


전부터 느끼고 걱정했던 부분이었지만, 내 짐은 이미 배낭이 견딜 수 있는 한계 하중을 넘겼다. 그 결과 배낭의 하중이 고스란히 어깨로 전해졌고, 통증은 내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메고 있던 'Gossamergear'의 'Mariposa' 배낭은 어느 경량 배낭보다 내가 신뢰하는 배낭이었고, 배낭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욕심에 따른 선택이 이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고, 이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시에라 구간을 지나게 될 때 곰통까지 넣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고, 결국 배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시에라 구간이 끝날 때까지만 이라도,..


전날 온라인을 통해 REI에서 'Osprey'의 프레임이 있는 배낭으로 구매해서 상기형에게 보냈고, 상기형과 다시 만나기로 한 Lake isabella에서 배낭을 바꾸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참고 견뎌야만 했다.





< 모하비사막의 낮은 뜨거웠다. 저기 듬성듬성 서 있는 조슈아트리가 만들어 주는 그늘만이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




대답 대신 배낭을 발로 차는 나를 보고 Kate는 낄낄거리며 작은 Zipper lock 속에 담긴 견과류를 한 움큼 입에 넣었다. 덥긴 하지만 습도가 낮은 이 곳에서 그늘에만 있으면 가끔 불어주는 바람에 몸을 식힐 수 있었다. 그늘에만 있다면 말이다.. 약간의 휴식으로 체온을 식히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늘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휴식 시간을 가졌고, 그 횟수가 늘어갈수록 사막에서는 낮과 밤을 바꿔 운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말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만큼 모하비 사막의 낮은 뜨거웠다. 내일이면 도착할 다음 보급지인 'Tehachapi'에서 빅사이즈 피자와 맥주로 양껏 취해 보자는 꿈같은 소리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줄여 나갔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서야 'Tyler horse canyon'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 구간에서는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기에 많은 하이커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Hiker Town'에서 봤던 일본인 브라더스, 'Sketch & Tony'도 먼저 와 있었다. 그래도 한번 봤다고 어색함이 사라졌는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을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했다.


오늘은 카우보이 캠핑.

Kate는 원래 카우보이 캠핑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Kate와 함께 Hiking을 할 때면 텐트보다는 땅바닥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고, 언제부터인지 텐트를 치고 걷어야 할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카우보이 캠핑의 매력에 나 또한 빠져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곳 'Tyler horse canyon'은 트레일 상의 협곡이라 장소가 협소해 텐트를 칠만한 공간이 많지 않았고, 많은 하이커들이 모이는 곳이라 카우보이 캠핑을 하는 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흘린 땀에 찌든 몸을 흐르는 물로 개운하게 닦아내고는 포근한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사막의 밤하늘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올려다본 밤하늘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수많은 별 사진과 은하수 사진을 봐 왔지만, 그런 사진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사진작가들이 전문적으로 찍은 사진들을 볼 때도 감탄하면서 사진 속의 장소에 꼭 한번 가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지금은 내가, 나 자신이 이 경이롭고 화려하기 그지없어 황홀한 광경과 같은 시공간에서 숨을 쉬며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심장이 뛰었다. 다른 사람이 찍어놓은 피사체가 아닌, 셔터스피드나 노출값 따위의 숫자가 아닌 오롯이 쿵쾅쿵쾅 거리는 내 심장박동만이 녹아든 저 밤하늘의 은하수를 내 눈 속에 담은 것이었다. 변변치 않은 실력일지라도 이 순간, 이 감정을 추억하기 위해 배낭에서 똑딱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연신 커터를 눌렀다. 비록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을 다 담을 순 없을지라도, 지금 찍은 사진을 볼 때면 나는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별 헤는 밤은 그렇게 아름답게 내 마음속에서 계속 영원할 수 있었다.





<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이 광경을 이 사진을 볼때마다 나는 추억 할 수 있게 되었다. 나한테 있어 사진은 그런 것인것 같다. >





이른 5시 반에 눈을 떠 다시 채비를 하고는 빠르게 길을 나섰다.

항상 보급지로 향하는 당일 아침은 행동이 번개처럼 빨랐다. 트레일을 걷기 위해 이 곳에 온 나였지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시원한 맥주 한잔에 따뜻한 음식이 내뿜은 마력은 우리 전부를 홀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했다.


이제는 낮에 17mi을 걸을 정도로 몸이 사막에 빠르게 적응했다. 트레일 안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은 점점 더 트레일에 맞게 적응하고 강해지고 있었다. 아침과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Tehachapi'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재촉했다. 강한 정신이 강한 육체를 만든다고 했던가? 우리의 강한 염원이 뜨거운 사막에서도 아무 탈없이 빠르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운이 따랐는지 'Hitch'도 빨리 할 수 있어 우리의 여정은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Tehachapi'는 영화 'Wild'에서 여주인공이 PCT를 시작한 첫 무대가 된 곳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하이커들은 'Tehachapi'에서 시작해 'Bridge of god'에서 여정을 끝낸 셰릴의 PCT는 종주가 아니라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글쎄, 종주보다는 길을 걸으면서 개인이 가지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친구들의 말은 그냥 흘려들었다. 아무튼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낡은 모텔에 방을 각자 구해서 일단은 지친 몸을 식히기로 했다. 하룻밤에 약 60불이나 하는 'Santafe Motel'이 어찌 낯이 익다 했더니, 내가 좋아한 영화 'Identity'의 장소가 되었던 모텔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래도 무료 wifi는 다행히 되었지만,..





< Tehachapi로 가는 길에 그늘 한 점 없고 뜨거운 태양만 있을지라도, 시원한 맥주와 따뜻한 음식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





샤워를 마친 우리는 밀린 숙제를 하듯이 고대하던 피자와 맥주를 Pub에서 거하게 먹고 마시고는 다시 밀린 빨래와 개인정비를 위해 모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Sketch와 Tony'를 만났는데 그들은 비행장 옆에 있는 무료 캠핑장에서 지내기로 했다면서 해맑게 웃고는 바로 옆에 있는 맥도널드로 향했다.


늦은 점심을 거하게 먹었기에 저녁은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Kate가 Thai food가 먹고 싶다고 해서 같이 따라나섰다. 모처럼의 문명생활이 좋은지 하루 더 쉬고 싶다고 하길래 나 또한 서두를 것 없을 거 같아 내일 하루를 더 머무르는 것으로 결정. 말 그대로 완벽한 'zeroday'를 가지는 걸로, 대신 모텔보다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비행장 옆의 캠핑장에서 지내기로 했다.


Thai food를 먹기 위해 2mi(3.2km)이 넘는 길을 걸어왔는데 그냥 가긴 뭐해서 좋아하는 쌀국수를 시키고는 아쉬움에 사이드 메뉴도 시켰다. 배가 별로 안 고프다는 것을 망각했는지, 트레일 시작하고는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려는 습관이 생겨 나도 모르게 내 위의 용량보다 많은 음식을 시키곤 했다. 그런데 이 곳 미국은 나오는 음식의 사이즈가 다르다는 것을 깜박했다. 일단 main으로 시킨 메뉴의 사이즈가... 보통이라고 하기에는 두 명이 먹어도 될 만큼 양이 많았고, 사이드로 나오는 롤도 과장 좀 해서 두어 개만 집어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였다.


먹는 걸로 무식하면 안 된다고 항상 어머니가 말씀하셨는데...

오늘도 나는 먹는 것 앞에서 무식한 놈이 되어 버렸다. 남기기 아까워 무식하게 다 먹은 음식에 채 해서 모텔로 돌아오자마자 다 올려내기 시작했다. 돈은 돈대로 쓰고 몸은 몸대로 상하고 먹은 건 다 토해낸 이 밤, 나 자신이 왜 이리 멍청하고 바보 같은지,..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바보처럼 또 한 번 몸으로 겪고서는 퀘퀘한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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