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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lmost there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by Cool K




해가 머리맡에 쨍쨍하게 떠 있는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Sketch와 함께 출발을 했다.


늦은 아침이라고는 해도 9시도 안된 시간이었지만,.. Tony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좀 더 여유를 부리다 출발한다고 해서 우리끼리 나섰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세콰이어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SOUTH SIERRA WILDNESS'에 진입한다는 팻말을 뒤로하고 들어서니, 역시나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막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도 많긴 했지만, 걸을수록 녹음이 짙은 울창한 숲길이 펼쳐졌고 쭉쭉 뻗은 나무들은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차광막의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확실히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은 세계 최대 수목인 세콰이어 자생지로 유명한 곳이고, 특히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라 불리는 'GENERAL SHER MAN'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아직은 초입이라 그리 큰 나무들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펼쳐질 대자연의 위대함을 직접 눈으로 볼 생각을 하니 절로 신이 났다.





< 세상 어디나 하지말라는 건 꼭 하고 다니는 애들이 있다. >





오늘은 고도를 10,000ft까지 올려야만 했다. 표고차로는 4,000ft, 약 1,200m를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배낭은 무거운데 트레킹 폴은 없고 오롯이 다리 힘으로만 걸어야 한다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걷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였기에 지금은 나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힘든 건 나뿐 아니라 다른 하이커들도 마찬가지! 혼자 앓는 소리 해봤자 의욕만 상실될 뿐 도움될 건 없으니까.


색다른 풍경에 사진도 찍고 하느라 천천히 운행을 해서인지 늦게 출발한 Tony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여전히 말보다는 웃음으로 얘기하는 Tony는 묵묵히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미인지, 방긋방긋 웃기만 하고는 우리를 지나쳐 갔다. Sketch가 Tony와는 이 곳에 와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워낙 'light-backpacking'에 관심이 많고 또 일본에서도 오랜 기간 하이킹을 다녔기에 자기만의 운행 스타일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함께 어디를 간다고 해서 꼭 같이 붙어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각자의 운행속도와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 뒤쳐지면 다른 누군가는 기다린다고 지칠 수도 있고, 뒤쳐진 사람은 누를 끼칠까 봐 오버페이스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산행이든 하이킹이든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목적지가 정해져 있고 길을 다 아는 상황이라면 그냥 자신의 스타일대로 운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러 명이서 가더라고 각자 스토브나 팟을 들고 가는 것을 선호한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 시에라 구간에는 물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쉽게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운행 시 마실 1L씩만 들고 다녀도 충분하다. >





Sketch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개울을 낀 길을 계속 걷다 보니 큰 다리가 나 있는 곳 아래 하이커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어제 함께 파티를 즐긴 Hoho와 Chicory 친구들과 Tony도 그곳에 있었다. 사막에서의 점심시간과는 달리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가 여기서 쉬지 않고는 안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점심을 먹으며 새로 만난 Skyline이란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데, 웃겼던 건 Sketch와 같은 브랜드의 신발(Brooks의 Cascade 10 모델)을 신고 있었고 발등에 뜯어진 부위도 똑같았다. Skyline은 그 부분에 대해 열을 올리며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같은 신발을 신은 친구들을 여럿 만났는데, 모두 다 똑같은 부분에 펑크가 나있었어! 오, Sketch 너도 포함해서.. 정말이지 이 모델을 만든 회사는 반성해야 해. 사진을 찍어서 Facebook에 올리고 항의를 해야겠어! 어떻게 생각해 Sketch?"


"워.. 진정해 친구! 그래도 덕분에 우린 Super Dry System을 갖춘 신발을 신게 되었잖아. 물에 젖어도 남들보다 빨리 말릴 수가 있다고!"


구멍 난 부분을 우롱이라도 하는듯한 Sketch의 재치 있는 대답에 우리는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즐겁게 점심을 해결하고 슬슬 다시 출발하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여전히 웃통까지 벚어젖히고는 낮잠을 즐기고 있는 Hoho와 친구들을 보니 나도 조금 더 쉬다 가고 싶었지만, 배낭이 무거워 속도를 낼 수 없었기에 그냥 천천히 걸으면서 쉬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 사막에서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그늘을 찾았지만, 이 곳에서는 피했던 태양을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





1,200m의 고도를 높여야 하는 길은 힘들었다. 스위치백으로 나있는 완만한 오르막이라도 하루에 1,200m를 높이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3,000m가 넘는 산도 여러 번 타봤고 25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쿵스레덴' 종주도 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힘들게 느껴졌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마지막 업힐 구간을 오르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다. 처음 세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간 Tony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가 살고 봐야 했기에 계획한 24mi보다 4mi 모자란 현 지점에서 숙영을 하기로.. Sketch도 힘이 들었는지 내 의견에 동의하고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파이어링에 모닥불을 피울 준비부터 했다. 텐트 치는 것도 귀찮아 그냥 카우보이 캠핑을 하기로 하고는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확실히 시에라 구간이 고도가 높아 경치는 좋겠지만, 데이터 상으로 하루에 한두 개의 Pass를 올랐다 내려야 했기에 앞으로 체력소모가 더 심해질 것이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인가! 황홀하고 장엄한 시에라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 옛 조상들은 어찌도 이리 맞는 말씀만 하셨는지 참으로 신기할 지경이다.





< 모닥불을 금지하지 않는 구간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파이어링을 이용해 모닥불을 피울 수가 있다. 쌀쌀한 저녁에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





조금은 쌀쌀할 거라 생각했지만 추위를 못느낄 정도로 깊은 잠을 잤나 보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몸이 개운한 걸 보니 아주 잠을 잘 잔 듯했다. 곰 때문에 곁에 두지 못하고 저 멀리 내다 놓은 곰 통과 배낭을 찾고 난 후, 간단히 커피만 한잔 마시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못 간 거리가 있어 좀 서둘렀고, 6시 20분경 출발해 5mi정도 내리막을 신나게 내 달렸다. Tony는 어디에 있는 걸까? 물론 알아서 잘 가고 있겠지만, 괜히 생각이 났다.


확실히 아침을 안 먹으면 힘이 나질 않았다. Sketch도 배가고프다해서 트레일에서 약간 벗어나 맨바닥에 그냥 퍼질고 앉아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무래도 영양가가 있는 걸 먹어야 할 듯해 오래간만에 오늘의 메뉴는 'Mountain House'의 치킨데리야끼. 'Mountain House'는 미국 건조 식량 브랜드로 다양한 맛의 건조 식량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하나에 보통 $7 수준으로 매끼 먹기에는 가격이 부담되었다. 하지만 가격만큼 필수 영양소를 고루 포함하고 있어 영양보충을 위해서는 이틀에 한두 개 정도는 먹어주는 게 좋을듯해 나를 위한 투자를 조금 한 것이다. 일찍 출발했고 내리막이라 속도를 낼 수 있어서인지 오늘은 제법 여유가 있을 듯했다. 커피까지 내려 약간의 허세를 부리기도..





<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데 어찌 카메라 셔터를 안누를 수가 있겠는가? >





아마 어제 우리가 숙영 한 지점에서 26mi 진행한 위치에 있는 'Chicken spring lake'에서 다들 만날 수 있을 듯했다. 거리상으로 그곳이 오늘 숙영 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고, 어제 Skyline이 곧 나오는 호수에서 캠핑을 하면 낚시를 할 수 있거라 운을 띄웠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떨어지길래 금방 그치겠지 하곤 그냥 걸었는데 하나둘씩 우의를 꺼내 입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판초우의를 처음으로 꺼내 입었다. 그냥 이벤트 재킷을 입을 수도 있었지만, 가져온 배낭 커버가 찢어지는 바람에 배낭까지 덮을 수 있는 판초우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비는 확실히 막아주지만, 입고 벗는 게 귀찮고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내리던 비가 잠잠해져 우의를 벗고는 바위게 걸터앉아 쉬면서 간식을 꺼내 들었다. 메뉴선정에 실패한 토르티야와 피넛버터가 처치곤란이라고 Sketch에게 말을 했더니 '그 맛있는 걸 왜??' 라는 표정으로 자기한테 달라고 했다. 남은 토르티야와 피넛버터를 통째로 다 넘겨주니, 통에 남아있던 피넛버터 싹싹 긁어 토르티야에 넘쳐흐를 정도로 바르고는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그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 거의 반이 넘게 남은 피넛버터를 토르티야에 쏟아 붓고 있는 Sketch.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 >





호수까지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니 좋은 소식은 9mi 밖에 안 남았다는 것, 나쁜 소식은 그 거리가 전부 오르막이라는 것이었다. 대략 4~5시간 정도 걸릴 거라 가늠을 하고는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온 '5 hour energy'를 꺼내 마셨다. 처음 마셔본 이 제품은 에너지 드링크와 비슷하지만 효과는 더 강력하다고 상기형과 우 선생님께서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셔서 한번 믿어보는 걸로...


비가 또 오기 시작해 다시 판초우의를 입고는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쉬면서 마신 에너지 드링크 덕분인지 한참을 올랐는데도 몸이 지치지를 않는 것 같았다. 아니 힘들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 인듯하다. Sketch는 힘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인지 아무 말 없이 꾸준한 속도로 걷기만 했고, 점점 더 거세지는 비는 바람을 타고 얼굴을 때리기까지 했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비를 계속 맞고 있으니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거기다 바람까지 한몫을 해주니 이제는 손까지 시려졌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곳이나 자리 잡고 일단은 비를 피하고 싶었지만, 호수까지 1mi도 채 안 남았기에 계속 걷기로 했다. 이미 Sketch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쳐져 있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이제는 입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했는데 저 앞에 텐트와 함께 누군가가 서있는 게 보였다. Skyline이었다. 원래는 Tony와 함께 호수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면이 개방되어 있는 호수보다는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이 곳이 나을 거 같아 자기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Tony는 호수로 갔다고 했다. 물론 Tony가 고집해서 호수까지 혼자 간 거였겠지만, 괜스레 혼자 비바람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있을 Tony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나쁜 놈! 자기가 호수에 가서 낚시를 하자는 둥 바람은 다 넣어놓고는.. 바람을 피할 거면 간다는 걸 말려서 같이 피하던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시크하게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기고는 서둘러 Tony가 있을 호숫가로 달리듯 몸을 날렸다.





"기다려 Tony!! 내가 간다!"







< Tony를 만나러 가는 길.. >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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