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만 생각했던 사이드 트레일인 'Kearsarge pass'를 힘겹게 넘어 도착한 'Lone pine'에서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zeroday를 보내게 되었다. 생각 외로 힘들었던 트레일 덕분에 망신창이가 되어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게 아쉬워서인지, 다들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하루정도 푹 쉬고 싶어 만장일치로 결정해버렸다. 하루 더 쉰다고 해봤자 관광을 할 것도 아니라 특별히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마트에서 식량을 준비하고 식당에서 밥 먹고, 맥주나 마시며 풀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게 다일뿐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런 일상이 이제는 특별한 하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약 40일이란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예전엔 몰랐던 일상의 사소함에서 오는 행복을 소중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걷는 게 일상이 되었고, 예전의 일상이 특별한 순간으로 뒤바뀐 지금이 신기하기도 했다.
'Lone pine'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번째는 너무 힘들었다는 것.
쉽게만 생각했던 길이 예상을 벗어난 난코스였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되자 멘탈이 붕괴되면서 피로감이 배로 느껴졌다. 정말이지 지금껏 가장 힘든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다리가 풀렸고 체력은 바닥이 났었다.
두 번째는 히치하이킹.
'Lone pine'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트레일에서 'Independence'라는 마을로 히치하이킹을 한 뒤 다시 'Lone pine'으로 히치하이킹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주말이라 여기저기서 온 등산객들 차를 얻어 타고 'Independence'까지는 순조롭게 히치를 할 수 있었고, Sketch와 Tony 보다 앞서 도착 해기에 그냥 기다릴까 하다가 'Lone pine'까지 가서 방을 먼저 잡고 기다리는 게 나을듯해 혼자 움직였다. 'Independence'에서 히치를 하려고 도로가에서 외로이 서있었는데, 어떤 낡은 차 한 대가 나를 지나치고 가다 다시 유턴을 하고 오더니 나를 불렀다. 젊은 남녀 커플이었는데 풍기는 이미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온몸에 문신이 있고 귀, 코, 입술에는 피어싱, 마치 약이라도 한 듯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기름값으로 10불만 주면 'Lone pine'까지 태워주겠다는 말에 엉겁결에 타긴 했지만, 차에 타고 있는 동안은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주눅이 들고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몸이 얼어있었다. 'Lone pine'으로 가는 도중 노래를 크게 틀고 액셀을 힘껏 밟으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는 '아.. 내가 여기서 생을 마감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려와는 달리 무사히 'Lone pine'에 도착해 우체국 앞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 내리는 순간까지 느껴지는 공포감에 입이 얼어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하고 보냈다.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식량을 준비하기 위해 들린 마켓에서 우연히 'Ryu'라는 일본인을 만나게 되었다. 자전거로 서부를 여행하는 도중 우리와 마찬가지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켓을 찾았다고 했다. 더러운 티셔츠에 반바지, 검게 그을린 피부, 딱 봐도 거지나 다름없는 그를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로 초대해 하루를 같이 보냈다. 거지들이 거지를 도운 것이다. 녹이 슨 자전거로 이 뜨거운 태양 속을 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런 자전거에 모든 짐을 싣고 요세미티까지 간다는 그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걸어가면 갔지 자전거로는 갈 자신이 없었다.
네 명 중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배려해서인지 자기들끼리도 영어로 대화를 했다. 굳이 그럴 필요 까진 없었는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주는 이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다. Ryu는 여행이 끝나면 일본으로 돌아가 북해도에서 스키강사를 할 거라 했다. 여름에는 서핑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고,.. 남는 시간에는 여행을 다닌다는 그는 가진 것 없지만,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기준이 돈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돈보다는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에 맞게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즐기는 그의 삶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그런 삶을 갈망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남들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는 있지만, 주머니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고 주변의 시선도 이겨내야만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틀을 'Lone pine'에서 보내고 다시 트레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단 하루였지만 서로 추구하는 바가 비슷해 대화가 잘 통했던 Ryu를 먼저 보내고 우리도 서둘러 준비를 했다. 아쉬움에 맥도널드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는 30분간 도로 옆에서 쇼를 하고서야 겨우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트레일로 복귀할 수 있는 'Onion valley'로 가는 하이커들이 많아 히치하이킹이 수월하지만 주중에는 가는 하이커들이 없어 쉽지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운 좋게 'Onion valley'에 캠핑을 하러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어서 30분 만에 트레일로 복귀를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Kearsarge pass'.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올라보니 그리 힘들지가 않았다. 역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힘들지 않게 주변 경치를 구경하면서 오른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Sketch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만날 수 있겠지 하고는 Tony와 먼저 출발을 했는데 그날 저녁까지 Sketch를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Glen pass'와 'Pinchot pass' 두 개를 넘어야 했기에 그라놀라에 단백질 파우더까지 섞어 양껏 먹었다. 'Glen pass'는 3mi만 오르면 되었기에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역시나 세상에 만만 한 건 없었다. 아침부터 땀을 빼면서 사투를 하며 오르는 길에 Sketch를 만날 수 있었다. 서로 어떻게 엇갈렸는지 신기해하면서 다시 헤어졌는데 이후로도 Sketch를 만날 수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과 존 뮤어 트레일(JMT)은 약 80% 정도 길이 겹친다. 그래서인지 사막에서 보다는 많은 하이커들을 트레일 위에서 만날 수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JMT를 걷는 하이커들도 많았다. PCT하이커와 JMT하이커를 구분하기는 쉬웠다. 일단 JMT하이커들은 구간이 짧아서 그런지(210mi) 옷이 깨끗했다. 더러워지긴 했어도 헤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배낭. 전반적으로 PCT를 걷는 하이커들 보다는 많은 짐을 가지고 다녀서인지 배낭이 컸다. 6-70L 정도 되는 큼직한 배낭에 주렁주렁 뭔가를 메달고 다니는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JMT하이커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엔 JMT를 꿈꾸었었다. 하이시에라의 멋진 경관에 흠뻑 취해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었다. 그러면서 정보를 구하다 알게 된 PCT에 더 빠져들어 지금 이 길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던 하이시에라의 황홀한 경치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JMT와 겹치는 이 구간들, 하이시에라 구간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아름다움에 취해 힘이 든다는 걸 못 느낄 수 있을지언정, 매일 한두 개의 pass를 올라야 하는 이 트레일은 사진만 보며 생각하던 그냥 그런 트레일이 아니었다.
'Pinchot pass'로 향하는 8mi의 오르막에서는 너무 힘이 들어 몇 번을 쉬면서 올랐는지도 모른다. 8mi을 오르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들 죽겠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힘들게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PCT나 JMT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트레일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르는 길이 힘이 들어 입고 있던 옷이 땀에 다 젖을때쯤에 나타나는 호수나 계곡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사막에서는 꿈도 못 꾸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땀에 찌든 몸을 담글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은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너나 할 거 없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옷을 다 벗고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첨벙첨벙 물에 뛰어든다. 햇빛에 달궈진 바위 위에 몸을 뉘우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무엇을 하든 자유다.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 길을 즐기는 방법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Tony와도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나를 비롯해 모두들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토록 원했던 이 곳에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보내는 시간들. 어쩌면 이런 시간들이 필요해 이 곳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사회가 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때로는 광대처럼 슬퍼도 웃어야만 했던 시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텐트 주변을 거니는 사슴들 때문에 밤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