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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Sep 21. 2016

John Muir를 기리며




'Mother pass'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른 'Mother pass'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한국에서 엄마의 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푸르름과는 또 다른에서 느낌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른 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배낭을 내리는데 갑자기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정상 한쪽 켠에 멋지게 챙모자를 쓴 레인저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매일 듣던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대신 훌륭한 솜씨로 기타 줄을 팅기는 기타 연주를 라이브로 들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근무를 위해 한번 오르면 4-5일은 산에서 지내야 한다는 레인저는 무겁지만 기타를 가져와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덕분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라이브 무대를 'Mother pass' 정상에서 즐길 수 있었다. 




< 정상에 오른 하이커들을 위해 훌륭한 솜씨로 기타를 연주하는 레인저. 귀가 즐거우면 모든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




 분위기에 취해 아예 자리를 깔고는 때 이른 점심까지 먹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조금 오래 쉴 때는 그냥 식사를 해결해버렸다. 토르티야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거나 아예 행동식만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는 미국 하이커들과는 달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만 힘이 났기 때문에 그들보다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점심은 주로 Nissin이라는 일본 브랜드의 라면으로 때웠는데 별로 맛은 없지만 값이 싸 큰 부담이 없었다. 라면 하나로는 모자라 남은 국물에 분말 감자가루를 섞어 먹으면 포만감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싸구려 라면일지라도 트레일, 특히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보면서 먹을 때는 아주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 


 'Mother pass'를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가팔랐다. 남진을 해야 하는 JMT하이커들이 북진을 하는 PCT하이커들 보다 힘이 들 거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려오는 길가에 넓게 펼쳐진 호수 한쪽에는 옷을 훌러덩 벗고는 수영을 하고 있는 하이커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호수에 햇살이 비춰 반사가 되니 물이 출렁일 때마다 누군가 다이아몬드를 굴리듯 반짝거렸다.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 땀도 나지 않아 그냥 사진만 찍고는 지나쳤다. 


 곧이어 나타난 'Palisade Creek'은 정말 절경이었다. 깎아지는 절벽을 타고 우렁차게 떨어지는 폭포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 매분 매초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며 내려오는데 앞쪽에서 길을 보수하고 있는 PCTA소속의 자원봉사자들이 보였다. 이 더운 날, 무거운 연장을 들고 이곳까지 올라와 보수작업을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에 괜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분들의 고생이 있었기에 아무 문제없이 우리가 트레일을 걸을 수가 있는 것이다. 힘들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내가 좋아하는 길을 내 손으로 보수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는 한 자원봉사자의 대답에서 이 트레일이 지금까지 어떻게 잘 유지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하이킹과 트레일을 사랑하는 이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존경받아 마땅했다. 


 한참을 다시 걷다 너무 더워 배낭을 내리고는 길 옆에 흐르는 계곡에서 몸을 식혔다.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물에 몸을 넣었다가 3초도 안돼서 밖으로 나와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Tony였다. 나보다 앞서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해맑은 얼굴로 지나온 호수에서 낚시를 해보려고 시도했다가 10분도 채 못하고는 때려치웠다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아마도 내일 올라야 하는 'Muir pass'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숙영을 하기 위해 서두는 듯 보였다. 해가 강하지 않은 새벽녘이 가장 걷기 좋은 시간대였기에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오르기 위해서는 올라야 할 Pass의 목전까지 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었다.


 몸을 말린 후 다시 출발을 했다. Tony가 있는 곳까지 가볼까 했지만 몸이 휴식을 원하는 게 느껴져 'Muir pass'에 오르기 6mi 전 지점에서 숙영을 했다. 다음 보급지인 'Red meadow'까지 약 80mi, 4일 정도 더 가야 하는데 계산을 잘못해서인지 지금 가지고 있는 식량은 2-3일 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Muir pass'를 지나 JMT하이커들이 주로 보급지로 찾는 'Muir Ranch'를 들러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하이커 박스에서 식량을 못 구하면 힘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걱정하기가 싫어 남은 파스타를 끓여 저녁을 해결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 넓은 곳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자는 이 쓸쓸함이 다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 'Lake Inlet'. 맑고 투명한 호숫가에서 수영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하이커들 >


< 때로는 아슬아슬한 길을 걷기도 하지만 두려움 보다는 이 길 뒤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Muir pass'를 아주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앞서 지나간 하이커들 말로는 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데 내가 오를 때는 눈이 녹아서인지 걷는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이 곳의 경치는 지금껏 하이시에라에서 봐왔던 경치 중에서도 가히 최고였다. 아직 얼어있는 호수는 너무 맑아서 가까이 가야만 호수인 걸 알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 맑은 호수는 이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경치에 홀려 오른 정상에는 사진으로만 봐왔던 'Muir pass'의 랜드마크인 'Muir hut'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서있었다. 'Muir hut'은 'John Muir'를 기리기 위해 지은 대피소이다.


존 뮤어(John Muir, 1838년 4월 21일 ~ 1914년 12월 24일)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미국인으로 자연주의자, 작가, 자연 보호주의 자이다. 그는 많은 편지, 수필, 그리고 책을 통해서 자연을 탐험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특별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했다. 그의 자연보호운동은 요세미티 밸리, 세콰이어 자연공원 그리고 다른 자연보호 구역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창설한 시에라 클럽은 미국에서 유명한 자연보호 단체가 되었다.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시에라 네바다 산의 등산로를 존 뮤어 트레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청년기에 엘로우 스톤에서 자연에서 큰 영감을 얻었으며, 인생의 후반기에는 미국 서부의 숲을 보존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는 미국 의회에 자연공원 법을 청원하였으며, 이 법은 1890년 제정되어 요세미티 공원과 세콰이어 자연공원이 지정되었다.   -위키백과


 역시나 Tony가 먼저 도착해 있었고, 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나처럼 신기한 눈으로 'Muir hut' 안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John muir가 없었다면 내가 이 곳을 걸을 수 있었을까?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 트레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이 적혀있는 팻말을 만지며 잠시동안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파랬다. 마치 누군가 물감을 뿌려놓은 듯 새파란 하늘이 너무나 이쁘게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저게 바다라면 새들은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거겠지' 때마침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도 헤엄치고 싶었다.


 큰 원형의 통을 배낭에 달고 있는 하이커가 있어 뭐냐고 물어보니 낚싯대라고 했다. 'Break'라는 트레일 네임의 그는 JMT하이커로, 캘리포니아주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어 점심, 저녁은 송어로 끼니를 때운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낚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Tony는 그가 부러웠는지 한참을 그의 낚시가방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 'Muir pass'를 오르는 길. 걷는 자의 행운일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눈이 다 녹은 길을 오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

 

<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호수는 속살이 다 비칠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


< 'Muir hut'. Jhon Muir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Muir pass'위의 대피소. 새파란 하늘에 지어진 집처럼 신비로운 기운이 돌았다. >




 'Muir pass'를 지나오며 만난 'Wander Lake'는 더 환상적이었다. 호수가 얼마나 투명한지 그냥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정화될 것만 같이 순수한 호수였다. 아직 오전 10시밖에 안된 시간이라 추워서 들어가진 못했지만 한참을 호숫가에 서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Wander Lake'에서 수영을 한번 못하고 온 게 후회가 되어 오후에 지나게 된 'Evolution Lake'에서는 수영을 했다. 사실 수영이라고 해봤자 물이 너무 차서 몇 번 휘젓고 나오는 게 다였지만, 왠지 이름이 Evolution이라 그런지 수영을 하는 내내 몸이 진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이 진화의 날이었는지 'Evolution Lake', 'Evolution Valley', 'Evolution Creek', 'Evolution Waterfall' 이렇게 Evolution이란 이름이 붙은 4종 세트를 지나게 되었다. 특히, 'Evolution Creek'은 눈이 많이 온 시즌에는 수위가 높아져 건너기 힘든 곳이었는데 다행히 무릎까지만 물이 차있어 수월하게 건널 수 있었다. 초반에 오래 쉬었던 덕분에 눈이 녹을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나 보다. 여러모로 복 받은 하루였다. 다만 내일 들려야만 하는 'Muir Ranch'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될 뿐... 만약 하이커 박스에서 식량을 구할 수 없다면 지금 남은 식량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먹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는 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 'Evolution Creek'을 건너며 즐거워하는 Tony. 수위가 높을때에는 우회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험한 구간이기도 했다. >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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