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 안돼! 안되는데 이러면..."
'Muir ranch'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희망에 찬 아침이었다.
JMT하이커들은 필수로 찾는 보급지지만 PCT하이커들은 굳이 들릴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야만 했던 나는 왕복 12mi이나 되는 거리일지라도 꼭 들려야만 했다.
한창 기대감에 부푼 나는 그라놀라 바 하나만 먹고 6시 20분경 출발. 이때까지만 해도 난 'Muir ranch'가 무슨 보물창고나 되는 줄 알았다. 왜냐면 'Muir ranch'에 보관된 보급품 중 보관기간이 지난 보급품은 통째로 다른 하이커들을 위해 오픈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신나게 달려 도착한 'Muir ranch'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그냥 작은 목장일 뿐이었다. 기대했던 하이커 박스는 텅텅 비어 있었고, 그저 많은 JMT하이커들이 보급품을 정리하는 모습만 멀뚱멀뚱 쳐다봐야 했다. 아직 시즌이 아닌데 일찍 오픈한 관계로 보관기간이 지난 보급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이커 박스가 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고, 이제 막 보급품을 받은 하이커들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쿨하게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 다독였지만, 헛걸음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다시 PCT로 돌아가는 길은 엄청난 급경사였다. 안 그래도 건진 게 없어 풀이 죽어있었는데 이런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죽을 표정인 나와는 달리 보급품을 찾기 위해 반대방향에서 내려오는 JMT하이커들의 표정은 아주 해맑았다. 아끼던 초코바까지 꺼내먹고 힘들게 PCT로 돌아오니 또다시 'Selden pass'로 향하는 업힐이 시작되었다. 식량 한번 얻어보려다가 아침부터 운동 제대로 하는 듯했다. 초코바로도 힘이 달려 꿀까지 물에 태워 당을 보충했다. 갈증은 좀 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Selden pass'는 그리 높지않은 Pass였는데, 아침에 고생한 것 때문에 멘탈이 붕괴되어 그런지 엄청 힘들게 느껴졌다. 느껴진 게 아니라 힘이 들었다. 오르막을 다 올랐다 싶으면 다시 또 오르막이 나오고, 오르면 또 나왔다. 게다가 겨우 올라 선 정상에서는 허기진 배를 달랑 라면 하나만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아침도, 점심도 빈약하게 먹어서인지 내리막을 내려오는데도 힘이 나질 않았고, 그 순간 생각나는 건 고기밖에 없었다.
"고기를 먹어야 돼.. 고기.."
평소에도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육류를 즐겨왔던 나였기에 힘이 달리는 지금 근래 들어 먹지 못한 고기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Mammoth lake'에 도착하면 꼭 스테이크를 사 먹으리라 다짐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조금씩 실었다. 오후가 되자 내리쬐는 햇빛도 점점 뜨거워졌다. 낮에 너무 많은 땀을 흘려서인지 현기증까지 날 정도였다. 다행히 얼마 안가서 만난 'West Fork Creek'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한번 담그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
젖은 옷을 말리고 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해서 셔츠는 그냥 짜서 입고, 바지는 안입은 채로 속옷만 입고는 길을 걸었다. 요즘 유행하는 하의실종 패션을 트레일에서 선보인 것이다. 다행히 셔츠가 길었고, 속옷도 사각이었기에 이게 숏 타이즈 인지 속옷인지 그냥 봐서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구별할 수 있다 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길 위의 생활이 편하고 좋았다.
원초적인 자유를.
이전 사회생활을 할 때처럼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지? 보고서는 뭐라고 써? 결재는 받을 수 있을까? 등의 수많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오늘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야 하는지, 똥은 어디서 눠야 하는지 등의 원초적인 부분만 해결하면 되었다. 오늘 입은 옷을 내일 또 입으면 남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내 몸에서 냄새가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그런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나 또한 다른 하이커들의 모습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길 위에 있는 동안은 완전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자연인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계속 길을 걷다 한 하이커를 만났는데, 왠지 낯이 익다 싶더니 PCT를 시작할 때 참가했던 'ADZPCTKO(Annual Day Zero Pacific Crest Trail Kick Off)' 즉, 그해 PCT의 시작을 알리는 Kick-off때 내 옆에 텐트를 친 하이커였다. 그 당시엔 트레일 네임이 없었지만, 지금은 'Angler' 낚시꾼이란 트레일 네임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특이한 건 배낭에 100 pound 짜리 큰 해머를 달고 하이킹을 하고있었는데, 저 무거운걸 왜 달고 다니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궁금해 물어보니 '100 mile hammer'라고 해서 처음 시작한 하이커가 100mi을 운반한 뒤 다른 하이커에게 전달을 하면 그 하이커가 또 100mi을 운반하는 식으로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운반을 하는 게임이라고 답해 주었다. 이미 올해 PCT에는 'Tototoyota the PCT hub vap'이라 해서 일본 Toyota사의 자동차 휠만 똑같은 방식으로 캐나다 국경까지 운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Pretzel'이 시작한 이 게임의 Hub cap은 현재 나와 비슷한 속도로 운반되고 있었다. Hub cap을 건네받은 사람은 건네받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Tototoyotathepcthubcap이란 해쉬태그를 이용해 서로 공유를 했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들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름의 의미를 두고 서로 재미있게 즐기는 걸 보면서 그냥 단순히 길만 걷는 게 아니라 길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지쳐 걸었더니 몸이 녹초가 되어 텐트를 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내일만 잘 버티면 모레는 'Mammoth lake'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남은 식량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 봐야겠다.
힘들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하루는 아주 평온했다.
'Silver pass'를 오르고도 계속되는 오르막을 걸었지만 그리 힘들지 않고 아주 우아한 하이킹을 즐겼다. 특히 'Silver pass'를 지나 내려오는 길에 만난 호수에서는 왠지 모를 눈물이 계속 나 바보처럼 소리 내어 흐느끼기도 했었다. 노래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호수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너무 감상적이게 되었나 보다.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에 부딪힌 햇살이 피어오르며 내는 영롱한 빛방울이 내 마음을 완전히 홀려버렸다.
빛방울에 취해 한참을 흐느끼다 문득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가족들이 생각이 났다. 여유도 없이 시간과 열정을 모두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했고, 나만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위로 누나들과 형이 모두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 기르고 있어 부모님이 막내인 나까지는 크게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고 다닐 수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나만 이런 좋은 곳에서 혼자 감동하고 감명받고 있으려니 아직까지 한 번도 이렇다 할 가족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는게 더 미안하게 느껴졌다. 기회가 되기보단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한 번은 이 아름다움을 가족들과 함께 같은 시공간에서 공유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더 확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자가 될 수 없더라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순수함을 가진...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하더라도, 작은 것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알며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만큼 자연은 위대하다.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보금자리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또 배울 수가 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주변에 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경이롭고 누구보다 현명한 스승과도 같았다.
어느덧 900mi을 지나게 되었다.
1,400km라는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500km라 한다면 어마어마한 거리를 걸은 것이다. 줄어드는 거리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캐나다에 가까워질수록 곧 이 길도 끝나게 되는 것이니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부족한 식량은 문제가 안되었다. 내가 식량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는 말을 하지 않아도 먹을 걸 나눠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 길 위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식량인데,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나를 위해 자기도 부족한 식량을 나눠 준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스스럼없이 내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친구,
나는 그런 친구들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었다.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