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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Sep 23. 2016

모기와의 전쟁

나쁜모기들 전성시대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Tony와의 둘만의 시간을 'Mammoth lake'에서 보내고 다시 트레일로 돌아왔다. Sketch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Red`s meadow'에 도착해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메시지를 남기고는 둘만 'Mammoth lake'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가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Sketch는 오지 않았고,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Red`s meadow'에 돌아왔을 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Sketch를 만날 수 있었다. 


 "어디서 뭐 재미난걸 혼자 했길래 이렇게 늦은 거야?"


 혼자만 남겨지는 Sketch를 조금이라도 위로하려고 웃으며 건넨 말에 Sketch는 오히려 신이 난 얼굴로 그간의 일들을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낚시로 송어를 낚았던 일, 'Muir ranch'에서 뜨끈뜨끈한 온천욕을 즐기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던 일 등.. 무엇보다 나에겐 악몽 같았던 'Muir ranch'가 Sketch에겐 이토록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목장에 온천이 있다는 것조차 난 몰랐었는데, 역시나 모든 게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서부터 느끼는 것들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Mammoth lake'는 아웃도어의 천국이었다. 여름에는 MTB,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물론 마을에 있는 Brewery도.. >


< 'Red`s meadow'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커들. 물론 이 곳에 보급품을 보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하이커들이 마을로 내려가 휴식을 취한 뒤 트레일로 복귀했다. >




 홀로 'Mammoth lake'로 향하는 Sketch에게 숙소나 레스토랑 정보를 전해주고는 잘 쉬고 오라는 인사 후 각자의 길을 나섰다. Tony는 이곳에서부터 다시 PCT로 만나는 지점까지는 JMT루트를 따라 이동하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JMT 구간이 뷰가 훨씬 좋다는 얘기가 있어 그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나는 PCT루트를 고집했다. JMT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온전히 걸어보고 싶었기에 굳이 지금은 PCT를 벗어나면서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결혼을 한 Tony는 그럴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후 늦게 들어선 길이었기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 'Island pass'로 향하는 트레일 헤드에서 숙영지를 꾸렸다. 하필이면 혼자인 오늘 같은 날 밤새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곰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식량이나 냄새나는 것들은 인근에 있는 베어 박스에 집어넣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배낭까지 베어 박스에 집어넣고는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내일은 두 개의 패스를 넘어야 했기에 일찍 잠을 자려고 했는데, 곰도 아닌 곰 울음 수리에 이렇게 잠을 설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히 간밤에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밖에서 잠을 잘 때 텐트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생각보다 훌륭했지만, 어제처럼 텐트 안에서 밖의 상황을 모르는 채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될 때는 오히려 더 무서울 때도 있었다. 텐트 밖에서 볼 때는 귀여운 새끼 사슴이 텐트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일지 몰라도, 만약 당신이 그 텐트 안에 있다고 상상을 해봐라. 어두운 밤 텐트 안에서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밖에 돌아다니는 짐승이 코요테 일지 마운틴 라이언 일지 곰일지 알 수가 없기에 그 상상력의 크기만큼이나 공포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오르던 동네 뒷산과 비슷한 'Island pass'를 오른 뒤 당일 하이킹을 온 가족들에게 부탁해 오래간만에 셀피가 아닌 독사진을 찍기도 했다. 'Island pass'는 정상에 있는 호수 안에 여러 개의 바위가 솟아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섬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인 듯했다. 정상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토르티야에 누텔라를 발라 먹었다. 땅콩버터는 퍽퍽해서 별로였는데, 악마의 초콜릿이라는 누텔라는 달콤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럽기까지 해 목 넘김이 좋았다. 내 스타일의 고열량 행동식을 찾은 듯했다. 




< 호수 중간중간 솟아난 바위가 마치 섬처럼 보여 이름이 붙여진 'Island pass'. >




 요세미티에 가까워질수록 모기가 많아졌다. 요세미티 국립공원부터는 하이커들 사이에서 'Mosquito hell'이라 불릴 정도로 모기가 많은 구간이 계속된다. 지금도 잠깐 쉬면서 잡은 모기가 네댓 마리는 되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어졌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온 모기망이 있었지만 그것도 얼굴만 가릴 수 있었기에 다른 곳은 무방비인 채로 다닐 수밖에 없다. 뿌리는 모기기피제가 있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Donohue pass'를 오르는 길에는 돌로 만든 계단이 깔려 있었다. 누가 깔아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보던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그런 모습에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느껴졌다. 즐겁게 오른 정상에서 오랜만에 Dude와 Toe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Agua Dolce에서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친구들이었다. 반가움에 그간의 안부를 전하고는 Facebook 친구까지 맺었다. 사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물어보기가 미안해 Facebook ID를 물어보는 척하면서 이름을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비상한 내 머리에 내가 감탄을 해버렸다. 나는 역시 천재였던 것인가?




<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일까? 'Donohue pass'를 오르는 길에 깔려 있는 돌계단을 보며 생각이 들었다. >




 이 곳을 지나게 되면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에 쓰인 글씨가 'Welcome to Mosquito hell'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상을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그간의 시에라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알프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넓게 펼쳐진 초원과 그 중간을 흐르는 옥빛 개울, 그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맥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아직 오후 4시 정도밖에 안된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이 곳에서 머물다 가고 싶었다. 급할 것도 없었기에 전망 좋은 곳을 찾아 텐트를 펼쳤다. 하지만 10분도 채 안되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텐트를 치고 나서 짐을 정리하자마자 귓가에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열댓 마리의 모기가 텐트 주변과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든 보이는 모기를 잡아가며 이 곳의 경치를 즐기다 가려했지만, 잡을수록 더 나타나는 모기를 감당할 겨를이 없어 결국은 다시 텐트를 접고는 부리나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달리면서 내려왔을까?

 길 가에 흐르는 Creek 주변에 하이커들이 쳐놓은 텐트가 여러 동 보이길래 텐트를 칠 만한 곳을 찾아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가만히 5분간 주위를 돌면서 모기가 어느 정도 있는지 먼저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고여있는 호숫가라 모기가 많았지만, 여기는 빠르게 흐르는 Creek 옆이라 그런지 모기가 별로 없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얼른 텐트를 치고는 안으로 모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출입구를 단단히 하고서야 숨을 돌렸다.




< 마치 알프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곳. 저 푸른 초원위에 구름같은 집을 짓는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인듯 했다. >


< 이 순간을 놓치기 싫어 하루 머물고 싶었지만, 이내 시작된 모기떼의 습격으로 바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두 명의 레인저가 다가와 퍼밋과 곰통을 보여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리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텐트사이트 일지라도 Creek과 너무 가까운 곳에는 가급적 텐트를 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뿔싸. 알고는 있었지만 망할 모기 때문에 내가 텐트를 친 곳에서 Creek까지의 거리가 10m도 채 안된다는 걸 신경을 못쓴 것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는 말을 하고는 퍼밋과 곰통을 레인저에게 보여주었다. PCT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퍼밋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모든 식량을 곰통에 다 넣어둔 상태였기에 아무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내 옆자리에 텐트를 친 두 명의 하이커는 무슨 일 때문인지 오랜 시간 동안 레인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곧 그중의 한 명, John이라는 나이 든 하이커가 내게로 와 자기는 당일로 하이킹을 왔는데 미처 곰통을 준비하지 못해 (준비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없을 줄 알고 안 챙긴 듯했다.) 당장 쫓겨 날 상황이라고 하면서 내 곰통에 여유공간이 있으면 조금만 넣어 줄 수 있냐는 부탁을 했다. 이미 해는 저물고 있을 때라 정말 이대로 쫓겨난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물론 레인저가 그런 상황을 만들진 않겠지만,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고는 내 곰통을 열어 그가 가져온 식량은 구겨 넣었다. 


 해준 거라곤 곰통에 식량 조금을 넣어준 것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 잘 해결된 것인지 레인저가 돌아간 후 John이 찾아와 고맙다며 내게 위스키가 담긴 플라스크를 내밀었다. 다행히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하산하는 걸로 해결되었다고 했다. 비싼 위스키라며 이름을 얘기하는데 위스키를 즐기지 않아 뭔지도 몰랐지만 주는 성의를 봐서 한잔을 받고는 이내 원샷을 했다. 위스키 한잔으로는 고마움을 표하기가 미안했는지 작은 케이스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자기가 즐기는 시가라면서 한번 시도해보라는 말을 남기고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곰통에 자리가 없었더라도 예순이 넘어 보이는 어른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당연하다 생각해서 도움을 주었는데 이렇게까지 고마움을 전해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 시가를 피워 본 적도 없는 촌놈이었지만, 고맙다며 내 손에 쥐어 준 이 시가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




 내일은 'Toulume meadow'에 도착해 상기형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트레킹 폴과 새 스토브를 'Mammoth lake'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어차피 형수님과 요세미티로 휴가를 갈 예정이라 일정이 맞으니 요세미티에서 같이 하루정도 쉬고 장비는 그때 받아가라고 했다. 예정엔 없었지만 요세미티를 간다는데 내가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요세미티를 간다는 말에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악!!! 그러고 보니 그 힘들다는 하이시에라 구간을 나는 트레킹 폴도 없이 걷고 있었구나.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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