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lmost t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ol K Sep 26. 2016

Mosquito Hell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 크지 않은 체구지만 암벽등반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 순수하다 할 정도로 착하지만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미국에 유학을 왔다가 형수님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인생을 시작한 상기형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겐 소금 같은 존재였다. 트레일을 위해 미국에 와서 주영 선배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지만, 조금씩 터놓고 얘기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마 취미나 서로 관심 있는 분야,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고 공유할 거리들이 많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먼 이국땅에서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요세미티에서의 시간들은 내게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요세미티에 위치한 'Upper pine campground'에서 밤하늘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함께 한 카우보이 캠핑, 아직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에 일어나 향기로운 드립 커피를 나눠 마시던 소소하지만 소중한 그 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냄새도 나고 씻지 못해 더러운 나를 반겨주시던 형수님께도 너무 고마웠다. 사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일면식 없는 남자를 집까지 데리고 오는 남편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건데, 형수님께서는 내가 일주일 동안 집에서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셨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뭐라도 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는 상기형이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네가 감사하다고 하는 이런 것들을 나한테 갚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돈도 없지 않으냐. 네가 이런 것들이 고맙다고 느껴진다면,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후배들에게 네가 베풀어 주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걸 갚을 거라고 선배들께 대접을 했었다면 선배들에게 그건 그냥 밥 한 끼 먹은 것 밖에 안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때 받은 것들을 너한테 베푼 것이다. 네가 느끼기에도 그냥 밥 한 끼 먹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지 않느냐? 내리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아직도 이 말을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다. 그리고는 올해 PCT를 준비하던 후배들에게 내가 사용했던 배낭이나 곰통, 또 필요한 것들을 단 하나의 조건을 달고는 그냥 주었다. 잘 사용한 후에 또 이 길을 걸을 후배들이 있으면 꼭 전달해주라는 조건. 내 배낭을 받은 친구는 CDT를 잘 걸었고 지금은 종주를 끝내고 캐나다에 머물고 있다. 또 곰통과 스토브를 받은 친구는 이제 PCT의 마지막 길을 걸으며 남은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역시나 함께 한 시간의 기쁨이 클수록 헤어짐의 아쉬움은 더 크게 남았다. 'Tuolume meadow'로 돌아와 상기형, 형수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니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익숙해질 만한데도 이별 뒤의 쓸쓸함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 Tuolume meadow로 가는 길은 왠지 모를 편안함과 익숙함이 베어있었다. >

 

< 요세미티의 하프돔을 배경으로 상기형과 어색한 사진을 한장 남겼다. 훗날 이 사진을 보고 웃게 될 일이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

 


 

 

 "맵지 않아? 이거 나한테도 매운데??"


 형수님이 가시면서 챙겨준 고추장 주물럭을 'Tuolume meadow campground'에 모여있는 하이커들에게 맛을 보여주었는데, 조금 맛보고는 맛있다며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는 그들에게 내가 물었다. 맛있기만 하다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져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배고픈 하이커들에게 무엇인들 맛이 없겠냐만은 매운 것은 맛이 아니기에 조금은 의외였다.


 이 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어 바로 트레일로 복귀하는 게 의미가 없을 듯해 머물게 된 여기 캠핑장은 PCT를 걷는 하이커들에겐 하룻밤 $6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많은 하이커들이 이 곳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Kennedy meadow'에서 함께 했던 Shadow와 그의 동생 Pogo도 이 곳에 있었다. 신라면을 좋아하는 Pogo에게 선물로 신라면을 하나 주었더니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라면은 한국 라면이 최고라며 엄지를 척하고 올렸다.


 한쪽 구석에 있던 남녀 하이커 한쌍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둘이 워낙 닮은 거 같아 남매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웃더니 이미 약혼을 한 커플이라고 했다. 아까 보급품을 찾기 위해 들린 우체국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서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더니 우리가 그렇게 닮았냐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Rivergelly와 Chopsticks. 트레일을 걷다 시에라로 넘어왔을 때, 큰 세콰이어 나무 아래서 약혼을 했다는 그들은 이 트레일을 완주하고 나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 했다. 건축일을 했던 Rivergelly가 단돈 $700로 만든 통나무집을 보여줬는데, 당장이라도 내가 들어가 살고 싶을 정도로 잘 지은 집이라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Chopsticks는 젓가락질을 정말 잘했다. 주로 포크를 사용하는 다른 하이커들과는 달리 젓가락을 애용했는데 젓가락을 쥐는 손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이것도 한번 젓가락으로 먹어보라며 가져온 신라면을 그녀에게도 하나 나눠주었다.


 미국 하이커들은 내 텐트를 보고는 엄청 신기해했다.

 내 텐트는 스웨덴의 텐트 메이커인 'Hilleberg'에서 나온 'Enan'이라는 모델이 인데, 비자립 형태의 일인용 텐트이지만 넓은 전실이 있어 우천 시 짐을 보관하거나 식사를 준비하기도 편했다. 비자립이라 바위같이 Stake를 박기가 어려운 곳에서는 돌이나 나무를 이용해 텐트를 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만큼 폴대의 무게가 줄어 가벼웠다. 이런 형태의 텐트는 미국 브랜드에서도 나오곤 했는데, 강렬한 빨간색의 내 텐트가 이쁘고 신기해 보였는지 어느 브랜드의 텐트고, 가격은 어느 정도, 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지나가면서 다들 물어보곤 했다. 사실 미국인들은 자기네 브랜드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알고 있는 유럽 브랜드를 모르는 하이커들이 많았다. 미서부 쪽에는 REI란 거대 유통망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집에서 가까운 REI 매장만 들러도 구할 수 있는 'Bigagnes', 'Marmot', 'MSR' 같은 미국 브랜드의 제품을 주로 애용했다.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굳이 다른 나라의 브랜드 제품을 찾아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걔 중에 장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하이커들이 그랬다. 그런 그들을 향해 독일에서 온 하이커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하기도 했다.




< Rivergelly와 Chopsticks, 비슷하게 생긴 그들은 남매가 아닌 이 길에서 약혼을 한 결혼을 앞 둔 연인이었다. >

 

< PCT하이커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냈다. 강렬한 빨간 색상 때문인지 텐트에 관심있어하는 미국 하이커들이 많이 있었다. >





 'Tuolume meadow'부터는 정말 말 그대로 Mosquito hell이었다.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심지어 걸을 때마저도 모기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노출된 얼굴과 목까지는 버그햇으로 그나마 가릴 수가 있었지만, 그 외의 다른 곳은 옷을 입었어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두 팔을 휘저으며 달리듯이 걸어봐도 귓가를 앵앵거리는 모기떼들의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고, 잠깐의 틈만 보이면 옷을 뚫고 내 피 같은 피를 빨아 마셨다. 잠시 행동 식이라도 먹기 위해 멈추기라도 할 때는 '그래 나도 간식 좀 먹자' 하고는 피를 빨기 위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기 시작했다. 흘린 땀 때문에 달려드는 건가 싶어 물만 보이면 몸을 씻어도 보았지만, 말짱 헛수고였다. 거금을 들여 준비한 스프레이도 효과는 잠깐 뿐이었고, 모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텐트 안에 들어갔을 때뿐이었다. 그것도 텐트를 칠 때 안으로 들어간 모기를 다 잡은 후에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걸을 때는 모기가 없는 듯했지만, 쉬기 위해 찾은 나무 밑이나 수풀이 조금이라도 우거진 곳을 찾으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어김없이 모기가 나타났다. 숙영을 하기 위해 텐트를 칠 때도 마찬가지. 비를 맞으며 힘들게 텐트를 다 치고 안에 들어가 옷을 벗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그냥 보기에도 열댓 마리는 되는 듯한 모기들이 텐트 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때마침 옷을 벗은 내 몸은 사자 우리에 던져진 돼지 마냥 반가운 식사 거리가 되어버렸다.


 

 

< 버그햇을 이용하면 모기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워서 오랫동안 착용을 할 수가 없었다. >


<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피하기 위해 내 텐트안으로 들어오는 건지, 텐트를 치고도 안으로 들어온 모기떼를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





 'Tuolum meadow'를 떠나 온 후 삼일 간은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그저 과장된 표현이겠지 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말 그대로 왜 모기지옥이라고 다들 혀를 내둘렀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삼일 동안 세 개의 Pass를 넘어오면서도 한시도 빠짐없이 계속된 모기떼의 공격은 사흘째 'Sonora pass'로 향하는 능선 위에 올라서고 난 후에야 피할 수가 있었다. 어제 길을 걷다 만난 Songbird(일전 Shade 형제와 Kennedy meadow campground에서 파티를 하면서 만났던 하이커)가 곧 능선에 오르면 모기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얘길 했는데, 정말 능선에 오르자마 신기하게도 모기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모기에 신경을 안 써도 되게 되자, 주변의 경치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텔레토비가 뛰어놀던 그 동산처럼 길게 펼쳐진 능선을 오르는 길이 하늘과 맞닿아 있어 이 길을 계속 걸으면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있을듯한 착각이 들었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펼쳐진 초원 위로 솟아있는 산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어울려 소박해 보이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 'Sonora pass'로 향하는 능선길에 오르고 나니 쉬지않고 괴롭히던 모기떼들도 경치에 반했는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


< 길게 이어진 스위치백. 우리나라의 산과 달이 미국의 산들은 스위치백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가 있었다. >


 

 잠깐 길 가에 앉아 쉬면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두 명의 어린 하이커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앳된 얼굴의 여자애들이었는데 기껏해야 대학생이거나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 같았다. 어린 나이의 여자애들이 겁도 없이 이 길을 걷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또래의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의무감 혹은 스펙 쌓기 식으로 나가는 해외유학이나 연수보다는 차라리 이런 트레일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사실 이 트레일을 준비하고 걸어온 과정들은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배울 수 있었던 시스템과 너무 흡사했다.

 사전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한 뒤 그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그것을 수정 혹은 보완해나가는 일,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이나 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협동, 타협 등의 과정들이 이 트레일 안에 다 녹아져 있었다. 트레일을 준비하기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장비를 준비하는 것, 트레일을 진행하며 보급이나 기타 계획한 일정을 수정하거나 보완해나가는 것 등등. 물론 영어는 필수. 무엇보다 장엄한 대자연 안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좀 더 성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두 발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 이 넓은 미국 대륙을 종단하게 됨으로써 자기 안의 무한한 가능성과 하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의 이해관계를 통해 개개인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는 것, 다른 것과 틀리다는 것의 명확한 개념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이 길을 걸은 뒤 한국에서 만날 기회만 있다면, 이 시대의 젊은 친구들에게 꼭 한번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물론 스펙이나 숫자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업 혹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의 개선이 선행되어야만 취업 걱정에 조바심 나 있는 어린 친구들이 조금 더 넓고 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한 사회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가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분명 책상에만 앉아서는 절대 생각도 못할 것들을 이 길에서는 배우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의 차이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사고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때로는 학교나 책 보다도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할 테니까..





 그 순간 먼저 지나간 그 어린 하이커들의 뒷모습이 너무도 커 보였다.







<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던 'Sonora pass'로 향하는 길.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하늘과 마주할 수 있는 열린 길이었다. >


 





< to be continue... >

매거진의 이전글 모기와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