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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Oct 04. 2016

비와 당신




 "우르르쿵! 콰쾅!"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매일 밤 이런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내 텐트를 날려버릴것 같은 바람과 함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눈앞이 번쩍번쩍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떨어진 번개는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텐트 안에 숨어있는 나를 위협했다. 'North kennedy meadow'부터 벌써 삼일째 비를 맞으며 걷는 중이었는데, 이놈의 비가 밤에도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림엽서처럼 예뻤던 'Sonoma pass'를 지나 'North kennedy meadow'부터 다음 목적지인 'South lake tahoe'로 이어지는 길은 단조롭고 약간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매일 내리는 비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고 마냥 고개를 숙인 채 고인 물을 피하며 걸어가기 바빴다. 물론 이런 걸 예상 안 했던 건 아니었지만, 막상 삼일동안 젖은 신발을 다시 신고 젖은 텐트에서 다시 잘려니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길을 걷다 잠깐이라도 비가 그치고 해가 나는 순간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 안에 있는 젖은 짐을 말려야만 했고, 레인재킷을 입었지만 장시간 노출되어 스며든 비에 젖은 옷이 체온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나무라도 빽빽한 숲길을 걸으면 그나마 나았을까? 능선을 타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번쩍번쩍할 때는 머리가 쭈뼛 서기도 했다. 몸이라도 숨길 수 있는 큰 바위나 나무가 주변에 있을 때는 숨기라도 하는데(너무 심하게 내려 한 시간을 꼬박 숨어있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는 옷이 젖는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전력 질주해서 빠르게 고도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 몸을 피할 곳 하나 없는 이런 능선에서 천둥번개를 마주할때의 공포는 안느껴 본 사람은 모를 정도로 살벌하기까지 했다. >


< 하루에도 수십번 입었다 벗어야 했던 판쵸우의. 레인자켓만으로 장시간 내리는 비를 커버할 수가 없어 판초우의까지 입고 운행을 해야만 했다. >




 극심한 가뭄이라던 캘리포니아인데 왜 나는 이렇게 비를 자주 만나는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서 만나는 비가 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자주 이 주변을 하이킹했었다는 미국의 하이커들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만나게 되면 무서울 때가 있다며 나를 달래주기도 했다. Songbird, Pretzel, Roadrunner는 물론 'North kennedy meadow'에서 처음 만난 Torch도 이런 비에 중간중간 마주치게 될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비 때문에 흙이 쓸려내려와 계곡물이 흙탕물로 변해 정수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라 곤란한 상황도 있었다. 손수건으로 여러 번 거르고 걸러낸 후 정수를 하고서야 마실수가 있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길을 걷다 'South lake tahoe' 근처의 'Carson pass'의 Information center에서 이 곳을 지나는 하이커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트레일 매직을 만났다. 생각지도 못한 트레일 매직에 그간의 고생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시원한 맥주에 시원한 수박은 물론, 이온음료랑 과자까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면서 얼른 먹으라고 잘라주는 수박을 한입 베어 무니 그간의 고생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맥주도 한잔하며 서로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던 중에 Information center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이곳에서 Tahoe까지 히치하이킹으로도 많이들 들어간다며 떡밥을 던지니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이미 저녁이 다되어가는 시간이었기에 걸어서는 오늘 안에 Tahoe까지 도착하기는 무리였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지라 구간을 조금 자르고서라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누구 하나 먼저 나서는 이는 없었다. 나 역시도 그러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속이기 싫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걷고 싶어 온 길을 차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 내리는 비에 흙이 쓸려 이내 흙탕물로 변해버린 계곡. 이 물을 정수하기 위해서는 손수건으로 면번을 거른 후 다시 정수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수반된다. >


< 생각지도 못한 Carson pass의 Information center에서 준비한 트레일매직. 미국에서 처음 맛 본 수박은 정말 꿀맛이었다 >




 이후 10mi정도를 더 걷다 Tahoe까지 약 4mi 정도를 남기고는 텐트를 쳤다. 트레일 매직 덕분에 배는 안 고팠지만 몸을 생각해서 간단히라도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 텐트로 들어가 누웠는데 갑자기 "쾅쾅! 콰콰콰쾅!"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텐트 '설마 또 시작이야?' 하며 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하더니 오늘이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 마을에서 쏜 폭죽 소리를 천둥소리로 착각한 것이었다.


 '아! 마을은 축제 분위기일 텐데, 나도 오늘 그냥 들어갈 걸 그랬나?'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흥겨운 축제는 언제나 환영이었기에 한 번쯤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마을 축제를 즐기는 것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쉽긴 했지만 이미 놓쳐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어 그냥 멀리서 폭죽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대신하기로 하고는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내 텐트를 똑똑 두드리는 듯 한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위로라도 하는 양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비를 막지는 못하는구나. 이로써 5일째 비를 맞으며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




<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잠깐 머뭇거릴때 가끔 펼쳐지는 꽃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길 위의 하이커들을 달래주었다. >




 "이얏호! 좋았어!!"


 초심자의 운이었을까? South lake tahoe에 위치한 한 카지노에서 재미 삼아해 본 룰렛으로 단 몇 분 만에 $100를 손쉽게 딸 수 있었다.


 South lake tahoe는 Tahoe호와 Sierra nevada 산맥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수상스키, 카누, 카약 등의 수상스포츠는 물론, 스키, 스노모빌 등의 겨울 스포츠도 가능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미국의 Eldorado county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관광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호텔과 카지노가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거리에는 신나는 음악과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어 활력이 넘쳤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이런 흥겨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하이커가 아닌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는 관광객이 되어가고 있었다.


 점심이 안된 시간에 도착하자마자 모텔에 짐을 풀고 호텔 뷔페를 여유롭게 먹고 난 뒤 소화도 할 겸 구경이나 해볼까 들린 카지노 덕분에 모텔비랑 밥값은 아낄 수가 있었다. 더해볼까 싶었지만, 도박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또 이럴 때일수록 그만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미련 없이 카지노를 박차고 나온 뒤 휘파람을 불며 근처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뭔가 보상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커들이 많이 가는 호스텔이 아닌 하룻밤 $60나 하는 모텔까지 잡은 게 아닌가. 다음 보급지까지의 식량과 함께 오늘 밤을 위한 와인이며 $17나 하는 폭립까지 후하게 준비했다. 모텔로 돌아와 펼쳐놓은 음식들과 와인을 보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지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사 온 음식들을 정리를 좀 하고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번 더 했다. 요 며칠 비에 젖어 추위에 떨었던 걸 보상이라도 받듯이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따뜻한 물로 최대한 자주 씻고 싶었다.




< 우체국에서 찾은 식량과 마트에서 산 단백질 파우더와 행동식들. 약 5일에서 6일치의 식량으로 여유가 생겨 원두커피까지 갈아서 준비하기도 했다. >




 노곤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눕히고는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그동안 연락 못했던 지인들에게도 안부인사를 전했는데, 15년도에 쿵스레덴을 함께 다녀왔던 스님(인헤니오스 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하는데 인헤니오스님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길어 우린 그냥 스님이라 불렀다.)이 밥은 굶고 다니지 마라며 용돈을 보내 주기도 했다. 나는 해드린 것도 없고 지금 해드릴 것도 없는데 동생이라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형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침대에 누운 채로 마트에서 사 온 와인을 한잔 마셨다. 적막함이 싫어 티브이를 틀어놓았는데 역시나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와인을 홀짝이며 화면을 응시하는데, 하필이면 공항에서 가족들이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딸이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가족들을 뒤로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고, 그 딸을 뒤에서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와 엄마를 안아주는 아빠의 모습. 참고 참다 돌아보는 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데, 엄마의 눈물을 본 딸이 애써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두 뺨을 타고 흘렀고, 이내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그리움에 구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동안 비 때문에 고생을 해서인지 나 역시도 그동안 참아왔던 무언가를 토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 다짐했지만, 그리운 가족들 앞에서는 그냥 어린아이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그 감정을 Instagram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낯선 나라.. 타지에서 홀로 쓸쓸히 모텔방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잘 들리지도 않는 티비보는데, 가족과 헤어지는 장면에 구슬픈 음악..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떨어지는데 걷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어 그냥 멍하니 혼자 구슬프게 울었다. 미국나이로 서른세 살 애어른이..

나 잘하고 있는데 감정은 내가 컨트롤하기엔 너무 제멋대로야. 그래서 별로야
아부지어무니 철없는 자식 용서하세요.  

#난잘하고있다생각하지만주변사람들한테잘하고있는건진모르겠다 "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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