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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Oct 10. 2016

아름다운 동행





 "급하면 우리 침실의 화장실을 이용해도 돼요. 말했잖아요. 내 집인 것처럼 지내라고."


 화장실 앞에서 줄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보고는 부부 침실의 화장실까지 내어주는 Kari의 모습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PCT라는 트레일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냄새도 나고 행색도 더러운 하이커들을 집으로 초대해 씻기고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안방 화장실까지 내어줄  수가 있다는 것일까? 것도 한두 명도 아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하이커들을...


 Sean과 Kari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했다. 트레일에 인접해 있는 마을을 들릴 때면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받기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 개인이 환대를 해주는 건 처음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로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게 아닌가도 했지만, 함께 온 친구들마저 Sean과 Kari한테 특별한 고마움을 표하는 걸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다들 이 은혜는 트레일이 끝나고 꼭 갚아야겠다며 입을 모아 그들을 고마워했다.


 아무리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고 PCT라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해도, 혼자도 아니고 온 가족이 모두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는 것... 그리고 Phish의 다 떨어져 가는 신발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창고에서 자신의 새 신발을 내어주는 Sean의 모습에 만약 나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기도 했다. 이때만큼은 이들처럼 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원래 하루만 이곳에서 쉬고 다시 출발을 하려고 했지만, 이 아름다운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에 정이 들었는지 오늘은 마을의 유명한 밀크셰이크도 먹으러 가고, 펍에 가서 맥주도 한잔하고 또 집에서 바비큐와 와인 한잔 하자는 Sean의 제안을 우리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먼저 출발하고 나와 Wildman, Thunder bunny(T-bunnz), Chef, Mama goose, Phish는 하루 더 머물고 가기로 했다. Phish도 오늘 가려했지만 Mama goose와 Sean의 끈질긴 꼬임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이 곳에서 더 머무르면서 우린 서로를 위하고 놀리기도 하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마치 형과 동생, 누나들과 함께 장난치며 지내는듯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Chester의 밀크셰이크는 정말 대박이었다.


 이것이 바로 남은 트레일을 함께 걸은 Trail Family, Hiker Box Gand(HBG)의 태동이었다.




< 스무명의 하이커들이 한 집에 모여 뜻깊은 파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환대해 준 Sean과 Kari의 가족들의 따뜻함 때문이었다. 집 뒷마당에서의 기념촬영. >
< 내겐 천사와도 같았던 Kari와의 한 컷. 뒤에 보이는 여자애가 Sean과 Kari의 딸 Brenah이다. >




 간단히 아침을 먹고 그동안 정이 든 Sean과 Kari의 집을 나섰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바래다준 Sean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서로 헤어지기가 아쉬웠는지 한참을 계속 뒤돌아보며 서로 먼저 가라는 손짓을 나누기도 했다.


 Chester에 도착하기 전 트레일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다친 Chef의 걷는 속도가 느렸다. 우린 그런 그녀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으려 했지만, 한사코 부담주기 싫다는 그녀를 뒤로 하고 먼저 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이 인접해 있는 길이라 그런지 가는 중간에 트레일 매직을 만날 수 있었다. 꽤나 빠른 속도로 걸어왔기 때문에 마침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었는데 가뭄에 단비같은 트레일 매직 덕분에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서인지 걷는 내내 심심하지가 않았다.


 특히 T-Bunnz 때문에 걷는 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부끄럼이 없는 건지 뭐만 먹었다 하면 '끄억'하며 큰소리로 트림을 하질 않나, '부우욱'하고 큰 방귀를 뀌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안' 하고 씨익 웃기만 한다던지..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행동의 그녀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었다.


 역시나 잘 쉬어서 그런지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34mi 넘는 거리를 걸었다. 달빛이 환한 숲 한편에 우리는 함께 자리를 펴고 카우보이 캠핑을 하기로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들이 왜 이리 푸근하고 편하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의 동행. 혼자 시작한 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새로운 만남 때문이었다. >




 아무도 예상치 못한 비가 간밤에 내리는 바람에 우리는 깜짝 놀라 비를 맞으며 일어나 다시 텐트를 치고 잘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숲의 피톤치드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있어 컨디션만큼은 좋았다. 신발을 바꿀 때가 되었는지 밑창이 다 닳아 바닥의 쿠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걷는 길에 모난 돌이라도 밟게 되면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다행히 얼마 남지 않은 'Burney'로 신발을 보내 두었기에 얼른 새 신발로 바꿔 신고 싶었다.


 나는 미국의 'Altra'라는 브랜드의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걸었는데 나 말고도 이 곳의 많은 하이커들이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걸었다. 신발 자체가 왜곡되지 않은 발 모양 그대로 본떠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시간을 걸어 발이 붓더라도 신발 안쪽에서 간섭을 느낄 수가 없어 편안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산행 혹은 등산이라고 하면 무조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공식이 있었다. 나도 물론 그랬고,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등산화를 고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PCT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등산화가 발목을 잡아 주기 때문에 좀 더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굳이 높고 험한 산이 아닌데도 값비싼 등산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미국의 산이 대부분 스위치백으로 오를 수가 있어 크게 무리를 할 필요가 없기에 한국의 산과 비교할 순 없지만, 트레일 이후 한국에서도 높은 산을 이런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올라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오히려 발목의 근육이 발달되는 느낌 때문에 등산화보다 가벼운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오르는 게 훨씬 편하기도 했다.


 PCT를 준비할 때 신발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Youtube나 Google에서 다른 하이커들이 추천하는 신발, 브랜드를 종합해보니 대부분이 트레일 러닝화 그중에서도 'Altra'나 'Brooks'를 선호했다. 수소문 끝에 'Altra Korea'의 이규인 대표를 만나 뵐 수 있었고, 대표님께서 트레일을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 인연 덕분에 지금도 좋은 관계로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트레일 중간 'Subway Cave'로 향하는 Trailhead에 위치한 화장실 앞의 그늘에서 뜨거운 햇빛을 피해 쉬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배경과 잘 어울리는 할리데이비슨 두대가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더운 날씨였지만 보호대가 갖춰있는 청바지에 두툼한 재킷을 입은 멋쟁이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헬맷을 벗었다. 당연히 젊은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반전이랄까? 헬맷을 벗은 그들은 일흔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이커였던 것이다. 서부 대륙을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고 있다는 황혼의 부부는 젊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익살스러운 농담도 즐길 줄 알고 서로의 땀을 닦아주는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서 내 인생 말년의 모습을 희망해 보기도 했다. 그들이 건네 준 사과와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서로의 길에 행복과 안전을 빌어주고는 각자의 길을 다시 나섰다.


 아침에 지나 온 'Old station'부터 약 30mi 정도 물을 구할 수 없는 구간이라 4L의 물을 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마지막에는 저녁을 준비할 물은 물론 마실 물마저 부족했다. 하지만 이 길에는 무슨 마법이라도 부려져 있는 건지 항상 위급한 순간에는 짠하고 트레일 매직이 나타났다. 오늘도 마지막 구간 물이 떨어져 다들 힘들어하고 있을 때 숙영지 바로 앞에서 누군가 하이커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깨끗한 생수 덕분에 우리는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다.


 단순히 걸을 수 있는 길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길 위에 만들어진 하이커들을 위한 아름다운 문화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이 길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휴식을 취할 때에는 최대한 몸이 편히 쉴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T-Bunnz. >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원래 'Belden' 이후의 보급지가 'Burney'였기에 나는 보급품을 찾기 위해 우체국을 들려야만 했었고 마침 T-bunnz도 우체국을 들러야 한다길래, 갈 필요가 없는 다른 친구들은 트레일에 위치한 'Burney state park'로 향하기로 하고는 둘만 먼저 출발했다. 어제부터 무릎이 아프다고 했던 T-bunnz는 더 안 좋아졌는지 뒤쳐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업고라도 가고 싶었지만, 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갈 거 같아 이내 포기하고는 먼저 가라는 T-bunnz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어제오늘 가장 힘든 건 바로 물이었다. 어제는 저녁에 만난 트레일 매직으로 다행히 물을 구할 수 있었지만, 트레일 매직이었기에 양심껏 물을 담을 수밖에 없어 모자라긴 했다. 그래서 오늘 걷는 길이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남은 물을 입만 축이는 정도로 조금씩 마시고 걸었지만 그 물도 오래가진 못했다. 결국은 물이 떨어져 입술은 마르고 목이 마른 채 힘겨운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건너 혹시나 누군가 또 물을 가져다 놓지 않았을까 살펴보았지만 빈 통만 굴러다니고 있었고 물은 찾을 수 없었다.


 너무 더워 길 옆에 앉아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도로가에 차 한 대가 서있는 게 보였다. 혹시나 물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가가 PCT를 걷고 있는 하이컨데 물이 다 떨어져 목이 말라죽겠다며 물 좀 얻을 수 없냐고 물어보니 차에서 내린 한 아주머니가 잘 왔다면서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트렁크를 열고는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믿기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마법이 펼쳐졌다. 아이스박스에 우산을 끼워 만든 그늘에 돗자리를 펼치더니 그 위로 도넛부터 시작해 과자며 음료, 심지어 요구르트까지 내려놓기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레져 이게 다 뭐냐고 물으니 당신 딸이 PCT를 그녀의 피앙새와 걷고 있다며, 'Burney'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조금 일찍 도착해 놀래켜 주기 위해 여기에서 기다릴 예정이라고 했다. Mama bear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딸의 트레일 네임은 'Pickle'인데 혹시 만난 적 있느냐고 물었고, 만난 적이 없다고 하자 사진을 보여주며 딸이 너무 대견스럽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트레일 매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쉬면서 Mama bear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Phish와 Wildman이 도로를 건너는 게 보였다.


 "헤이~! 트레일 매직!!"


 큰 소리로 외치자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뭐 나 보다 트레일 매직이 더 반가웠겠지만.



 

<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 마치 파도같은 산그리메에 비치는 여명의 모습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
< 말그대로 매직 같았던 Mama bear의 트레일 매직. 딸의 PCT 종주를 함께 즐기는 듯 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




 4시에 문을 닫는 우체국에 정확히 10분을 남기고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보급품과 상기형한테 부탁한 장비 총 두개의 박스를 찾아야 했는데, 내가 보낸 건 도착했지만 상기형이 보낸 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찾아야 했기에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 'Burney state park'로는 갈 수가 없었다. Chef의 가족들이 Chef를 보기 위해 'Burney state park'의 Cabin을 빌렸고 그 덕분에 다들 그곳에서 Chef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즐기기로 했다. 함께 할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내일 최대한 일찍 소포를 찾아 떠나야 했기에 근처에 싸고 적당한 숙소를 찾아 쉬기로 했다.


 대신 보급품 상자에서 꺼낸 새 신발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 8시 반쯤 나서서 우체국 근처 Subway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는 우체국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소포를 찾으려 했지만 간밤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T-bunnz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다음 목적지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라길래 'Castella'에서 받겠다고 우체국에 얘길 하고, 나를 데리러 온다는 그들을 기다렸다. 이럴 거면 어제 요청하고 바로 Cabin으로 가는 거였는데, 역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다.


 곧 도착한 T-bunnz와 Mama goose, Chef 그리고 Chef의 쌍둥이 동생. Chef의 동생이 친절하게도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 Burney까지 나를 데리러 와 준 Chef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 >




 Chef의 가족들이 있는 Cabin에 도착하니 Wildman과 Phish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른 아침에 트레일로 복귀했다고 했고, T-bunnz와 Chef는 가족들과 하루 더 지내다 내일 출발할 거라 했다. Mama goose도 늦은 오후에 출발한다길래 난 Chef의 부모님들께 인사만 드리고 이동하기로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신 Chef의 부모님은 인상이 참 좋아 보이셨다. Chef의 아버지는 이미 PCT를 두 번이나 종주한 경험이 있으셨고, 그래서였는지 그의 영향을 받은 Chef는 외적으로 보이는 가녀린 모습과는 반대로 항상 당차고 무릎을 꿰맬 정도의 상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용감했다. 맥주를 한잔하며 한국이란 나라를 궁금해하시는 두 분께 짧은 영어로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하시길래 언제든 오시기만 하면 가이드를 해드리겠노라 약속을 하기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란 인사를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한창 해가 뜨거울 시간에 출발해서 그런지 너무 더워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만난 작은 폭포에 이미 반나체로 들어가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하이커들이 있길래 나도 배낭을 내리고 몸을 좀 식히고 가기로 했다. 몸을 식히고 나니 다시 걸을만했다. 그렇게 뜨거웠던 해가 져물어 갈수록 저 멀리서 다가오던 먹구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Wildman과 Phish를 만나지 못하고 15mi 정도 운행한 지점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비가 언제 쏟아지더라도 당연할 정도로 무거운 먹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텐트를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비가 쏟아지는 게 보이더니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구름 안에 샤워기를 숨겨놓은 듯 딱 그 부분만 비가 내리는 게 신기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는 게 오늘 밤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트레일에 들어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거센 바람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빗속에서 자는 것에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 저 멀리서 다가오던 먹구름은 이내 하늘을 짙은 잿빛으로 가려 버렸고, 누군가 샤워기에 물을 틀어 놓은 것 처럼 군데 군데 쏟아지는 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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