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온건가? 저기야?"
도로 옆의 공터에 앉아 뜨거운 발바닥을 바람에 식히면서 Wildman에게 물었다.
오늘 걸어온 길은 유독 불에 탄 구간이 많아 기분이 씁쓸했다. 불에 타 앙상한 가지만 검게 그을린 채 남아 있는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나무들의 무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 새싹도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 그리고 모든 게 황량하기만 한 이 곳에서도 그 생명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화마의 아픔이 배어있는 숲을 지난 곳에서는 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그곳까지는 불길이 닿지 않았는지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 있었는데, 산비탈에서 비스듬히 자란 나무들이 모두 곧게 선채로 똑바로 자라나 있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광경이었지만, 그 나무들의 모습은 지금껏 남 탓만 하고 지냈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비탈길에서 비스듬히 자란 나무들도 그렇게 태어난걸 탓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곧게 자라 무성한 숲을 이뤘는데, 왜 나는 지금껏 노력도 안 해놓고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부모님 탓이나 회사 탓만 하고 지냈던 것일까?
7년이란 시간 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 막상 퇴사를 하고 나오니 주머니에 남은 돈이 얼마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라 집이고 회사에 큰소리를 치며 나오긴 했지만, 나이 서른 중반이 넘어가도록 장가갈 돈은커녕 당장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그동안 취미를 위한 장비를 사거나 주말마다 백패킹 때론 해외로 원정을 나가느라 돈을 못 모은 건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집에서 전세만 잡아줬어도.. 회사에서 월급만 조금 더 줬어도.. 내가 이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하면서 남 탓으로만 돌리곤 했었다. 나보다 더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도 지금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을 텐데, 나보다 월급을 적게 받으면서도 알뜰하게 살면서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이 저축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인데, 왜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반성하지 못하고 노력할 생각은 없이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고 했을까?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한참을 땅만 보며 걷기만 했다. 나와 우리 사남매를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고생만 하시며 일하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니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늘의 이 기분, 이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23mi을 내리 달렸기 때문에 오후 3시쯤 Mazama villige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오는 도중 불가피했던 로드워킹(트레일이 아닌 포장도로를 걷는 것)때문에 발에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마지막엔 발바닥이 뜨거워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PCT의 1,830mi 지점에 위치한 Crater lake는 유명한 관광코스라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식사를 기대하며 점심도 대충 먹고 걸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레스토랑의 엉망인 서비스와 볼품없는 음식 맛에 대한 먼저 온 하이커들의 평가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곳 Mazama villige에는 캠핑을 할 수 있는 캠핑장도 있었기에 우리는 캠핑장에 머물기로 했다. 사이트를 잡기 전 스토어 앞에 앉아 쉬면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부녀가 대뜸 우리에게 와서는 자신이 PCT를 걷고 있는 'Clutch'의 삼촌이라며 Clutch를 따라 캠핑카를 끌고 가족이 여행을 하고 있다며 시간 되면 자기 사이트에 와서 음식을 먹으며 쉬다 가라고 했다. 고마운 분들.
스토어 앞에는 이 곳에 도착한 하이커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그동안 못 봤던 반가운 얼굴들도 있어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던 우리 앞에 차가 한대 서더니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우 우리 새끼들!!!"
Mama goose였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먼저 반가움에 달려가 와락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도 따뜻한 포옹으로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현하고 나서 자초지종을 듣기 시작했다. 다리 때문에 속도를 못내 뒤처졌던 Mama goose는 우리를 뒤따라오다 점점 심해져 치료도 받을 겸 Ashland에서 자신이 속한 하이커 그룹인 'Warrior hiker'의 멤버 'Tank'에게 연락을 해서 치료를 받고 우리의 동선에 맞춰 이 곳으로 왔다고 했다.
'Warrior hiker'는 미국의 참전용사들이 만든 하이커 그룹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등 재향군인이 겪고 있는 상처를 장거리 하이킹을 통해 치료할 수 있도록 장비 및 정보를 지원하고 완주 후에는 취업까지 알선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Wildman도 warrior hiker 멤버라 Tank와 친한 사이였고, 이 둘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서프라이즈로 우리에게 말을 안 했던 것이었다.
볼록 나온 배에 덩치와 안 어울리는 귀여운 얼굴의 Tank는 나이는 많았지만 애들처럼 장난기가 많고 유쾌한 분이었다. 부대에서 탱크 조종수였기 때문에 트레일 네임이 Tank라고 소개하면서 사실 본인도 올해 PCT를 시작하였지만, 무릎이 안 좋아 사막 구간만 걷고는 그만두었다고 했다.
"다들 시장할 텐데 가서 핫도그나 먹자고"
Tank와 Mama goose의 사이트로 이동해서 짐을 풀고는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소시지를 구워 핫도그와 맥주를 함께 하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 Tank가 갑자기 이 곳에 왔으면 'Rim drive'를 즐겨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Crater lake'를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가 죽여준다면서 자신의 차로 걸어가더니 운전석에 올라 우리에게 마시던 맥주를 가지고 얼른 타라면서 클랙슨을 울리며 손짓을 했다. 얼떨결에 다들 차에 올랐다. 사람이 많아 구겨 넣듯 차에 올라타서는 Tank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몸이 불편해 차창 밖의 풍경을 볼 겨를도 없었지만, 연신 "와! 와!" 하는 소리에 궁금하기도 했다. 이윽고 차가 세워지자 다들 신음 소리를 내며 내리고는 허리를 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아한 옥색 띠를 두른 깊은 푸른색의 호수가 한눈에 다 안 들어올 정도로 넓게 펼쳐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마치 휴양지처럼 보이는 작은 섬도 하나 떠있었다.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백두산 천지를 보진 못했지만 천지보다 넓고 깊은 이 호수를 보고 있자니 자연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Crater lake..
크레티어 레이크 국립공원은 오레곤 주에 있는 마자마 산의 칼데라 호 국립공원이다. 마자마 산은 성층 화산으로 활화산이며 크레이터 레이크라고도 한다. 지금은 정상에 칼데라 호와 기생화산을 가지고 있다. 7,700여 년 전, 이 화산이 폭발했는데 1980년 세인트 헬렌스 산의 화산 폭발보다 42배 강력했었다고 한다. 폭발이 너무 강력해서 산체가 붕괴되었고, 그렇게 생긴 칼데라는 지름 10km에 달한다. 그 2,700년 후, 소규모의 분화가 일어 조그마한 기생화산을 만들어냈고 빗물이 고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깊이는 약 560m이다. 지금도 호수 내의 위저드 섬(Wizard Island)의 바닥에서는 화산 가스 분출이 계속되고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 무시하고 있다. 그래도 활동 중인 화산이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출처: 위키백과 >
원래 Crater lake는 사화산의 화구호(화산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호수)라는 뜻인데, 오레곤 주의 랜드마크인 Creaker lake는 다른 이름 없이 그냥 Crater lake로 불렸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미국에서는 가장 깊은 호수로 그 깊이만큼이나 짙고 푸른빛을 한 아름다운 호수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와중에도 T-bunnz는 소변이 급하다고 차 뒤로 돌아가 아무도 오지마라면서 소변을 보고는 쑥스럽지도 않은지 호탕하게 웃으면서 차바퀴 밑으로 젖어드는 자기 소변을 발로 슥슥 문지르고는 걸어 나왔다. T-bunnz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Tank의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저건 약과라면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우리를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다른 뷰포인트에서도 마찬가지로 'Crater lake'의 매력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미 가족단위의 많은 관광객들이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남들과 다른 우리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호수를 한 바퀴를 돌고는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 남은 술과 음식으로 한바탕 파티를 벌였다. 내일은 제로데이를 가지기로 했기 때문인지 술을 잘 안 마시는 Chef도 분위기에 흠뻑 취해 맥주를 거나하게 마셨고 다들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단 한 명, Vulture만 빼고는...
불편했던 다리가 괜찮아졌다는 Mama goose는 먼저 트레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함께 하자고 붙잡았지만 속도를 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고 자기 하나로 인해 팀에 부담을 주는 게 싫어 먼저 출발하는 게 낫다는 그녀의 의견을 우리는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길에서마저 누군가에게 이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 길을 홀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고는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보급품도 찾고 스토어 앞에서 오늘 도착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PCT를 시작한 첫날 만났던 독일 친구 'Wonder hands'가 사정이 생겨 오늘 돌아가야만 한다는 말에 아쉬워하기도 했고, 조금씩 마신 술에 취해 배낭에 넣어둔 지갑과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며 온 캠핑장과 레스토랑, 스토어를 뒤지는 등 한바탕 소동도 벌였다.
그다음 날은 가벼운 배낭만 꾸려서 약 15mi 정도의 트레일인 'Rim trail'을 돌기로 했다. 호수 북쪽 2마일 지점 트레일 헤드에서 캠핑장까지 내려오는 코스. Tank도 집으로 돌아갔고, 전날 친구들이 찾아온 Chef와 Vulture도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기에 나와 Wildman, 42, Wiki 그리고 Phish와 T-bunnz만 'Rim trail'로 향했다. 호수를 끼고도는 트레일은 걷는 것만으로도 호수의 장엄한 풍경을 직접 만져 보는 것처럼 황홀했다. 비록 인근에 난 큰 산불 때문에 연기가 하늘을 메우고 트레일이 닫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때면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Ashland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계속 이슈가 되었던 Vulture만큼은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다들 친해져 보려 노력은 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리와 거리를 두는 Vulture와 그런 그를 부담스러워하는 Chef 이 둘의 사이 때문에 난처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42가 Chef를 좋아하면서부터 일이 더 꼬이기 시작했다. Vulture는 우리와 함께 다니긴 했지만 항상 우리보다는 Chef와 둘만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말을 걸고 함께하자고 해도 괜찮다고만 하고는 늘 자리를 피했다. 당연히 연인 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Chef에게도 둘만 있는 게 어떠냐고 얘길 했지만, Chef는 우리와 함께 다니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계속 티격태격하는 듯했다.
무슨 하이틴 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니고 웃기긴 했지만 당사자들은 심각한 분위기였기에 겉으로 웃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 한 번은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제로데이를 가지고도 'Rim trail'을 도느라 하루를 더 머물게 된 'Crater lake'도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다. 사흘 동안 머물며 새로 알게 된 친구 'Clutch'의 삼촌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일본인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 아가씨였던 어린 친구들과의 신기했던 만남, Wiki처럼 보조배터리를 화장실에서 도둑맞는 등 여러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정까지 들어버린 'Mazama villige'를 막상 떠나려고 하니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생각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항상 알면서도 맞이해야만 하는 이별은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 함께 히치하이킹을 하는 게 무리였기에 각각 조를 나눠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T-bunnz와 42를 선두로 다른 친구들을 다 보내고 난 후, Phish와 나는 겨우 픽업트럭을 한대 잡고서야 트레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히치를 하기 위해 목적지를 알리는 글을 종이에 적어 도로 옆에서 들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들어오는 차는 있어도 나가는 차가 없어 애를 먹었다. 그러던 중 요란하게 생긴 픽업트럭을 잡게 된 것이었는데, 운전자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를 빼고는 온 얼굴이 타투로 덮여 있었고, 귀나 코 등에 피어싱을 한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꼭 영화에서 보던 단골 악역의 모습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표정관리를 하고 일단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보기와는 정말 다르게 친절하고 착한 친구였다. 직업이 타투 아티스트라 겉모습이 그랬을 뿐이었고, 애 둘을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와 근처에 살고 있으니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건네는 명함을 손에 쥐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작게만 보이고 부끄럽기도 했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깨달으며 배우고 있었다.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