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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Nov 07. 2016

삼각관계




 Crater lake를 지나 온 후 우리는 한동안 각자의 길을 걸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룹으로 다닌다고 해서 매일 같이 걸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어디서 보자는 약속도 하지 않은 채 각자 길을 나섰다. 그룹으로 뭉쳐 다녔지만 혼자 걷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각자의 보폭과 걷는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그냥 점심 먹을 장소나 그날 그날 캠프할 장소만 미리 정해놓고는 알아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길이 외길인지라 캠프를 하는 곳에서 만날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많다 보니 다들 팀으로 움직이는 것에 조금씩 지쳐가는 듯 보였다.




< Crater lake를 지나 다시 오레곤의 울창한 숲으로 향하는 길. 쓰러진 나무가 다른 나무에 기대어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




 나 역시도 혼자 걷는 것보다 팀으로 다니는 것이 불편하기는 했다. 물론 함께 한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들이 훨씬 더 컸지만, 누군가를 배려하고 신경 쓴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무시할 순 없었다.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이 있었기에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같은 색깔을 입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더구나 혼자 시작한 이 길에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Phish는 트레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는데, HBG란 이름으로 함께 움직이고 나서부터 마을에서 즐기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해 불평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나도 트레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Phish와 같았지만,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 마을에서 보내는 시간들도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었기에 그런 Phish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스트레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관계의 문제였다. 어느 곳이나 남녀가 섞이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하곤 했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신경을 안 쓰면 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고,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하려 할 때마다 그 대상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애들 소꿉장난 같은, 무슨 하이틴 드라마 같은 유치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삼각관계를 4,600km나 걸어야 하는 트레일에서 겪게 되니 참 웃기지만 웃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Crater lake를 떠나 온 첫날밤, Chef와 Vulture가 친구들과 지낸다고 따로 움직여 함께할 순 없었지만 그 외 나머지 친구들은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유치할 수도 있는 현안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해결점을 모색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째, 삼각관계에 대해...

 Chef가 행동을 확실히 해야 한다. Vulture에게 마음이 없다면 정확히 관계를 정리해서 더 이상 희망고문을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이 길을 함께 할 Chef나 우리와도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든지 아니면 그의 길을 가던지 선택할 수 있다. Chef를 좋아하는 42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Vulture에 대한 본인의 마음을 우리에게 내색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에겐 42나 Vulture나 다 같은 동료인데, 그런 이야기들로 인해 우리가 색안경을 끼게 될 수가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에 대해 Chef의 입장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HBG에 대해...

 나는 이 길을 함께 하는 너희들이 너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에게 모든 걸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이 길을 혼자 시작했고, 함께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무언가에 얽매인다 생각하지 말고, 함께 할 때는 함께하고 혼자이고 싶을 때는 혼자 행동하면 좋겠다. 나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 길의 끝에 설 때는 우리가 함께 그 기분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타지에서 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짧은 영어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려니 힘이 들긴 했지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다 쏟아내고 나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대부분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T-bunnz가 Chef에게 우리 생각을 대표해서 잘 이야기하기로 하고, 남은 길은 지금과 같이 그날 그날의 목적지와 이벤트는 공유하되 혼자이고 싶을 땐 혼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대신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Facebook Messenger로 그룹채팅창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 오레곤주와 워싱턴주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서 한컷, 가장 자신있는 포즈로 찍자는 42의 제안에 왜 이런 포즈를 취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이후로 우리는 각자 알아서 길을 나섰고, Side trail인 Skyline trail을 걸어보고 싶어 한 Wildman과 나는 함께 걷기로 했다. Crater lake에서 지낼 때 아는 지인이 미국에 출장을 왔다가 시간이 남아 내가 있는 곳으로 면회(?)를 온다길래 얼마 안 남은 Crecent lake에 위치한 Shelter cove resort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아마 그곳에서 다시 다 모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한 것과는 달리 Skyline trail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기대했던 울창한 숲 대신 공사 중인 임도도 걸어야 했고, 그나마 있던 호수도 물이 너무 말라 맑지도 않고 모기 때만 웅웅 거리고 있었다. 괜히 트레일을 우회해서 더 많은 거리를 걷게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실망을 했지만 이제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말없이 둘이서 걷기만 한 길이라 그런지 꽤나 많은 거리를 걸어왔고, 얼추 다른 호수를 하나 더 지나치게 되었을 때 해도 질 무렵이었기에 물도 구할 겸 이 곳에서 캠프를 하기로 했다. 뒤따라 오는 줄로만 알았던 42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냥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오래간만에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해는 져 어두운 하늘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 아래서 텐트 대신 자리만 깔고 누운 채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쏟아 내었다. 처음 만난 순간을 회상하며 미소 짓고, Chester에서 보낸 시간들을 음미하며 다시 한번 행복해하기도 했다. 트레일이 끝나면 뭘 하고 살 건지에 대한 고민은 나와 마찬가지로 Wildman에게도 남겨진 하나의 숙제였다. 아마 우리 같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숙제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할 거 많고 남들 눈치도 안 봐도 되는 네가 더 낫다며 Wildman을 위로하고는 잠을 청했다.


 


< 저무는 해가 비친 호수위로 물안개가 옅게 피어올라 있었다. >
< 자리에서 일어나 때아닌 추위때문에 침낭을 벗어나지도 않고 그래놀라로 아침을 맞이한 모습 >

 



 1시경 도착한 Shelter cove resort는 Crecent lake에서 펼쳐지는 낚시대회 때문에 수많은 낚시꾼들과 가족들로 붐비고 있었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안쪽 캠핑장 옆에 있는 스토어 쪽으로 들어가 보니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지인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아침에 도착해 지금까지 테이블에 간단한 음식을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그 마음이 반갑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뒤이어 도착한 Wildman을 소개하고는 잡채와 김치, 소주를 함께 나눠 마시며 그동안의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원래는 리조트의 캐빈을 하나 빌리려고 했는데 오는 날이 장날인지라 낚시대회 때문에 방이 다 나갔다고 했다. 캐빈에서의 따뜻한 목욕이 아쉽기는 했지만, 캠핑장을 이용할 수도 있었기에 개의치 않고 다른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보급을 위해 이곳을 들린 다른 하이커들에게도 한국의 김치와 소주를 맛 보여주며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신기해서 한 번씩 먹어보고는 맵다고 손사래를 치며 물을 찾기도 했다. 그러던 중 T-bunnz를 시작으로 Phish, 42 그리고 Chef와 Vulture까지 시간차를 두고 도착을 했다. 때마침 하늘도 우리를 도왔는지 스토어 점원이 우리 쪽으로 와 지금 캐빈 하나가 캔슬된 게 있는데 이용할 거냐 묻길래 다들 함성을 지르며 배낭을 하늘로 던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Storm이라는 여자 하이커도 함께하기로 하고는 다들 캐빈으로 이동해서 따뜻한 목욕과 함께 지인이 준비한 제육볶음과 떡볶이, 채식주의자를 위한 순두부찌개 등 만찬을 즐겼다. 


 술잔이 돌고 돌아 다들 흥건히 취할 때쯤에 우리는 뭔가가 빠진듯한 생각이 들어 뭘까? 하며 고민을 하다 Wiki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불쌍한 우리 Wiki. 오늘은 어디서 외로운 밤을 쓸쓸히 보내고 있을까?"


 울먹이는 목소리지만 얼굴은 한껏 흥이 오른 채 웃으며 말해놓고는 미안한지 메신저에 우리 위치를 남겼다. 다 큰애라 알아서 잘 할 거라 다들 Wiki를 응원하면서 다시 한번 오늘을 위한 건배를 들었다. 나도 더 놀고 싶었지만, 어금니 쪽의 치통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먹고는 일찍 잠들 수밖에 없었다. 술이 취하면 통증이 가라앉을까 마셔도 봤지만 치통은 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고, 그 끔찍한 고통을 잊으려면 최대한 빨리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래. Wiki를 안 챙긴 벌은 내가 받을 테니 다들 재미있게 놀아라'


 괜한 심통을 자장가 삼아 불 꺼진 방에서 쓸쓸히 잠이 들었다.




< Shelter cove resort의 캐빈에서의 하룻밤. 하루하루가 오랫동안 추억될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




 어질러진 테이블과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들이 간밤의 흥겨움을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치통이 휩쓸고 간 여운 때문에 머리까지 다 아파 바람이나 쐬려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다소 쌀쌀한 기운 때문에 다운재킷을 입어야만 했지만, 이내 떠오른 태양이 내려쬐는 햇살이 얼굴에 닿자 포근함이 느껴졌다. 


 스토어를 지나 캠핑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정문 쪽으로 지나는데 저 멀리 외롭게 걸어오고 있는 한 그림자가 보였다. 어정쩡한 자세에 흔치 않은 붉은 머리 Wiki였다. 왜 이리 빨리 움직였냐고 하자 근처에서 통신이 되자 Tbunnz의 메시지를 받고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 오는 길이라 했다. 하긴 술에 찌든 우리에게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하이커들에게는 한창일 10시가 지날 때였으니 Wiki에게는 벌써 건 지 세 시간이나 흐른 시점이었다.


 Wiki를 데리고 캐빈으로 돌아가 퉁퉁 부은 얼굴의 야생마들과 인사를 시키고는 따로 남겨둔 따뜻한 음식으로 다시 한번 Wiki를 환영해줬다. 11시까지 방을 빼줘야 했기에 빠르게 정리를 하고는 스토어 옆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디서 본듯한 캠핑카 한대가 캠핑장 안쪽에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Clutch 패밀리 아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나 Clutch 패밀리였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는 오늘부터 Clutch가 도착할 때까지 머물 거라면서 와서 함께 즐기자고 했다. 우린 Wiki가 오늘 도착했고 하루 더 머물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러기로 하고는 바로 맞은편에 하이커들을 위한 무료 캠핑장에 또다시 짐을 풀었다. 마을에서 오래 쉬는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Phish가 부담 가지지 않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Phish의 폰이 예기치 않게 고장이 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우리와  함께 하루를 더 이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근처에서 만난 한 낚시꾼이 인근에서 가장 큰 마을인 Bend란 도시로 내일 나간다며 갈 거면 태워준다고 했기에, 폰을 고치기 위해서는 내일 동행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낮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누워 책도 읽고 스토어 옆의 테이블에서 다른 하이커들과 춤도 추며 놀기도 하면서 보냈다. Clutch 패밀리의 헌신에 감사하며 그들이 준비한 음식과 음료, 주류로 또다시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흥겨운 시간을 보내나 했는데 뒤쪽 숲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Chef와 Vulture의 목소리였다. 모른 척 T-bunnz와 함께 내용을 들어보니 Chef는 우리와 함께 즐기다 내일 같이 출발하려 하는데, Vulture는 둘만 같이 있고 싶다며 길을 나서자는 내용이었다. '또 시작이구나' 우리는 씁쓸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는 둘이 잘 해결하기만을 기다리며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먼저 길을 나서기로 했고, 뭇 내 아쉬운 채 자리를 못 뜨던 Chef는  Vulture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보는 이들이 더 답답한 이들의 줄다리기가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피해자인 42. 애써 모른 척 표정관리를 했지만 우리보다 더 답답할 그의 속을 우리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한잔 두 잔 채워져만 가는 그의 술잔에 나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을 더해줄 수밖에 없었다.




< Crater lake에서 Chef에게 받아 Crecent lake까지 운반하고는 Wildman에게 휠을 전했다. 이내 Wiki에게 돌아가긴 했지만... >




 "다시 복귀해서 만나자고~ HBG Forever!!"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며 벤으로 향하는 차에 오른 Phish였지만, 왠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흥겨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나, Wildman, T-bunnz, 42, Wiki 다섯 이서 트레일로 복귀했다. 햇살 가득한 도로를 지나 울창한 숲으로 접어들자 이내 콧구멍 속으로 짙은 풀내음이 들이켜졌다. 넓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잠깐의 휴식도 취하고, 온몸이 이끼로 뒤덮인 커다란 나무들 틈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트레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걷는 속도가 맞지 않아 Wiki와 42는 뒤로 처지고, 우리 셋만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달리듯 오레곤의 숲길을 빠르게 걸었다. 정신없이 걷다 마주친 엄청나게 큰 호숫가에서 개와 함께 캠핑을 나온 한 무리의 남자들과 조우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구사이였다는 그들은 30대 중반의 나이로 대여섯 명이 자주 이렇게 캠핑을 즐긴다고 했다. PCT를 종주 중이라는 우리의 말에 대단하다며 아이스박스에서 이것저것 꺼매주면서 조금 쉬다 가라 했지만, 이미 푹 쉬고 온터라 갈길이 멀다며 고마운 마음만 받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오레곤은 확실히 걷기가 편했고, 걷고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쭈욱 평평한 구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온화한 초록의 숲길이 주는 편안함이 그런 기분을 만들어 주는 듯 느껴졌다. 울창한 나무 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길을 걸을 때마다 내 주위를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아름다운 숲이 산불로 인해 다 타버린 구간을 지나야 만 할 때는 다 타고 남은 앙상한 나무를 보며 더 큰 안타까움과 애석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이 자연재해라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겠지만, 만약 인재로 인한 것이라면 더없이 안타깝고 반성해야만 할 문제였다.




< 우정이 돈독해 보였던 20년지기 동네 친구들의 캠핑모임. 인근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주 캠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
< 몽환적인 오레곤의 숲길을 거닐고 있노라면 세상만사가 다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
< 산불이 휩쓸고 지나면서 불에 타 앙상한 나무가지만 남은 이 곳은 마치 나무들의 무덤인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




 6시가 넘어 캠프할 곳을 찾으며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T-bunnz가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 먼저 출발했기에 오늘은 만날 거라 생각지도 않았던 Chef와 Vulture가 트레일 옆 넓은 공간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는 우리랑 Chef와는 달리 Vulture의 표정은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도 한쪽에서 텐트를 치고는 저녁을 준비했다. 이윽고 도착한 42와 Wiki도 Chef와 Vulture가 같은 곳에 있는 게 의아한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짐을 풀었다. 나도 양손을 들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하고는 계속 저녁을 준비했다. 


 왠지 모를 어색함이 이 좁은 공간을 뒤덮었고, 저녁을 함께하자고 우리가 불렀지만 그들은 따로 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으아, 싫다 싫어! 왜 자꾸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거야? Chef는 모두를 위해서 빨리 입장 정리를 해야만 해.."


 나도 모르게 참았던 것들이 토해져 나왔다. 왜 이 좋은 길에서 이런 어색함을 느끼고 불편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남자 친구가 우리랑 동행하는 게 불편하다고 하고, 본인이 우리보다 남자 친구가 좋으면 스스로 선택해서 서로가 안 불편하게 만들면 될 건데 왜 이리 우유부단해서 서로가 불편해지게 상황을 끌고만 가는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런 유치한 상황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나 내가 매번 어색해져야만 한다는 게 화가 났다.


 "캐빈에서 엄마랑 화상통화를 할 때만 해도 Chef는 Vultuer랑 헤어졌다고 했는데..."


 T-bunnz가 말끝을 흐렸다. 반면에 42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어떻게 끝이 날지...'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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