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lmost there

오~ 하늘이시여!

by Cool K






PCT의 시작을 알리는 Kick-Off가 열린다. 정확히는 ADZPCTKO (Annual Day Zero Pacific Crest Trail Kick Off). 매년 4월 중순~ 말 경, 그해 시작하는 PCT하이커들을 위해 PCTA(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에서 주최하는 공식적인 파티이다.


올해는 4월 22일~24일, 24일~25일로 나눠 열렸는데, 나는 두 번째 세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여기에 꼭 참석을 안 해도 되는 거였지만, 이번 PCT를 준비하면서 PCT와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다 경험해보고 싶어 일부러 출발 일정을 Kick-Off에 맞춰 잡았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여길 와서 이런 행사에 참가해보겠는가?


행사가 열리는 Lake Morena까지 꽤나 먼 거리를 감사하게도 주영 선배님께서 태워다 주셨다. 선배님께서는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라 말씀하셨지만, 이런 하나하나가 정말 감사하고 도움이 되는 손길이었다. 가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최근 캘리포니아가 극심한 가뭄이라 비 내리는 날을 보기가 힘들었다는데, 내가 미국 도착한 날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비가 온다. 내가 비를 몰고 다는 걸까? 뭐 비가 와서 도움이 된다면 비를 맞는 불편함 정도야 감수하겠지만, 선배님께서도 신기하다며 운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셨다.


생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했다. 행사의 첫 번째 세션이 끝날 무렵이라 정리를 하는 중인지 지금 바로 입장은 불가능했고, 두번째 세션 참가자들은 12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이 조금 남아 이 근처에 있는 유일한 마켓 겸 식당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먹고 다시 캠핑장으로 향했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전화가 되질 않았다. 인터넷 안 되는 거야 크게 문제가 안되었지만,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사촌 형이 오늘 얼굴 보러 들른다 했기에 전화가 안 되는 건 문제였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에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행사장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접수한 내역을 확인하자 내 이름과 트레일 네임이 적혀있는 네임카드를 건네주고 친절히 텐트사이트까지 확인시켜 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이 행사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인이라며 엄지를 척하고 올리고는 잘 왔다는 웃음을 지었다.


‘Cool K’, 앞으로 이 길 위에서 불려질 트레일 네임.


이름대신 불리는 트레일 네임이 어색하기도 하고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금방 익숙해지겠지 생각하며 배정된 71번 텐트사이트로 향했다. 선배님과 함께 텐트를 설치하고는 행사를 구경하기위해 별도의 부스로 꾸며진 벤더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확실히 하이커들이 모이는 행사라 그런지 아웃도어 관련 브랜드, 그중에서도 경량 백패킹에 특화된 브랜드들이 많이 참가해 제품을 전시하고 관심 있어 하는 하이커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몇몇 눈에 띄는 브랜드들도 있었다. ‘Zpack’이나 ‘Sixmoon design’ 등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유통이 안되어 사지 않고는 볼 수는 없었던 브랜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냐 만은 이번만큼은 사면 짐이 되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군침만 흘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선배님께서 일 때문에 샌디에이고로 넘어 가셔야 한다고 하셔서 그제야 침을 닦고, 선배님을 배웅해 드리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수백 번 절을 해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무언의 포옹과 악수 한 번으로 쿨하게 마무리 지었다. 점점 작은 점으로 변해가는 선배님의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다 문득 이제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비가 섞인 차가운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져 옷깃을 다시 여미고, 쓸쓸함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행사 자체가 올해 출발하는 PCT하이커들을 위한 자리였기에 트레일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많은 하이커들이 관심 있어 하는 'Ultra Light Backpacking'에 대한 프로그램, 야생동물이나 불, LNT 등의 트레일 환경에 대한 프로그램, 작년에 PCT 겨울 종주를 성공한 ‘Pepper’의 이야기도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에 좀 특이한 것은 ‘Poop Talk(똥 이야기)’라는 프로그램. 트레일 안에서의 배설 규칙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이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ULB와 겨울 종주, 그리고 이 Poop Talk만 들었는데 셋 중에서 Poop Talk가 가장 재미있었다. 정말 중요하지만 더러운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던지 녹화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공유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관심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LNT를 추구해야만 하는 모든 하이커들에게 환경과 직결될 수 있는 배설물 처리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하고, 다시한번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하이커 요가, 장비 콘테스트, 그룹 포토, PCT단편영화 상영, 트레일 컨디션 등 PCT하이커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이틀 동안 진행되고, 각각의 프로그램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알아서 참석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참 복도 많은 놈들이네’


미국은 하이커의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런 외적인 측면에서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힘내라며 응원이라도 하듯이 비가 점점 거세져, 비를 피하기 위해 텐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텐트로 돌아간 덕분에 안내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온 친구가 어디 있는지 물어서 찾아온 사촌 형과도 만날 수 있었고, 형이 건네준 비타민과 용돈 100불로 다시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기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촌 형이였지만, 부족한 시간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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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 Off에 set up 된 국내 브랜드 Zerogram社의 PCT UL2 텐트>



다음날 아침, 4,300km나 되는 장거리 트레일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밝아 올랐다.


행사가 열린 'Lake Morena'가 트레일의 출발점인 멕시코 국경에서 약 32km 정도 떨어진 지점의 트레일 상에 위치했기에, 많은 하이커들이 Kick Off에 참가해 25일 Campo로 이동 다시 복귀하는 식으로 첫날을 진행했다. 그래서 오늘은 구지 짐을 다 챙겨 떠날 필요가 없었다. 가볍게 32km를 걷는데 필요한 물과 점심, 행동식만 배낭에 챙겨서 길을 나섰다. 다행히 행사장 중간에 Ride Board가 있어 미리 카풀을 요청할 수 있었고, 이른 새벽에도 차량을 지원해주는 에인절들 덕분에 다들 멕시코 국경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갈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멕시코 국경을 마주하는 순간, 회사를 그만두고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순식간에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갔다. 늘 바라왔던 것을 이뤄낸 내가 자랑스러웠고, 오늘부터 이 길을 걸을 거란 생각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비로 인해 흐린 날은 오히려 하이킹 하기 딱 좋은 컨디션을 제공했고, 수십 번 포즈 잡고 눌러 댄 카메라를 접어 넣고 트레일에 첫 발을 내디뎠다. 예닐곱 명의 하이커들과 시작을 함께 했는데 다들 이 길이 처음이었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색다른 환경에 감탄하기 일수, 사막이 처음인 나도 거칠기만 하고 황량한 이 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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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국경의 PCT 시작점에서 한컷, 이른 아침이라 얼굴이 부어있다 >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디서 왔냐? 트레일 네임이 뭐냐? 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텍사스에서 온 로렌과 오레곤에서 온 조드, 아직 트레일 네임을 정하지 못한 이 친구들과 오늘 일정을 함께 했는데, 이 조드란 친구는 샌들만 신고 PCT를 종주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시작을 했다고 한다.

‘산이 장난이야?’ 하고 싶었지만,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표정으로 힘내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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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드, 로렌과 함께 맞이한 PCT에서의 첫 트레일 매직은 바로 시원한 캔맥주! >




걸은 지 두 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왼쪽 무릎에 이상 신호가 왔다. 몇 년 전에도 느껴봤던 통증이 무릎 바깥쪽에서 느껴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작부터 왜 이러나 싶어 속도를 낮추면서 천천히 걸었지만, 한번 느껴진 통증은 가라앉지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왜 시작부터 무릎이 아픈 것인지,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 7시경 시작한 트레일은 오후 3시쯤 끝이나 Lake Morena로 복귀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남은 프로그램들을 참가하면서도, 저녁에 조드와 함께 맥주를 한잔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무릎 통증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발 단순한 통증이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다음날 아침, 내 바람과는 달리 통증은 오른쪽 무릎까지 번졌다. 짐을 정리하고 홀로 떠나야 할 길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이 위기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짐을 챙겨, 이어지는 트레일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통증만큼이나 무거웠다. 처음 사귄 친구인 조드에게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이 상태로 하루 32km씩 정해놓은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일찍 나서야만 해가 지기 전에 캠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2.jpg < 고독한 싸움을 예견하는 황량한 사막으로의 여정 >




거친 사막이 주는 황량함이 더해져 애써 침착하려 했던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다음 목적지까지의 식량과 5L의 물이 더해진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시작부터 이럴 줄은 몰랐다. 다 내가 견뎌내야 할 무게인 것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나? 스스로를 달래면서 한발 한발 내디뎠다. 메마른 땅이지만 나무도 풀도 꽃도 살고 있었다. 모래로 뒤덮인 사막만 생각했는데 사막이라고 다 같은 사막이 아니었구나. 오르막을 올라 내려다본 광활한 대지는 잠시나마 통증을 잊게 했고, 내리쬐는 태양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는 건조 식량도 배가 고파서 인지 꿀맛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뒤따라온 조드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함께 Lake Morena로부터 약 32km 진행한 지점에서 캠프를 했다. 다행히 트레일이 지나는 곳에 캠핑장이 있었고 사이트당 22불씩 비용을 내야 했지만, 그 무렵 모여들은 하이커들과 함께 3불씩 각출해서 지불할 수 있었다. 스피드, 로렌, 조드, 카일, 에밀리, 제니, 유진 등 서로 인사는 나눴지만 무릎의 통증 때문에 긴 이야기도 못 나눠보고, 그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잠든 이후에도 다른 하이커들이 도착했는지 어제 저녁에는 없었던 텐트들이 내 텐트 주위로 쳐져 있었다. 독일에서 온 하이커들, 잠에서 막 깨어난 이른 시간이었기에 간단히 눈인사만 주고받고는 각자 짐을 정리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출발하기 전까지도 조드는 아직 잠에서 안 깨어났는지 기척도 없었다. 이것이 조드와의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또 만날 수 있을 거니 인사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먼저 길을 나섰다.


사막의 아침은 청량했다.


해는 6시부터 뜨기 시작했지만, 주변의 산과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줘 오전 9시까지는 걸을 만 했다. 점점 강해지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을 무렵에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게 일 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하이커들은 11시까지만 운행하고, 11시부터 해가 강한 오후 3~4시까지는 그냥 자리를 펴고 낮잠을 즐겼다. 나도 한두 번 시도는 해봤지만, 성가신 파리들과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쉽게 쉴 수도 없었다. 쉬는 시간마저 즐기지 못하고 불평만 할 바에야 차라리 천천히 걷는 게 낫다는 판단 하에, 조금씩 자주 쉬는 방법으로 운행을 계속했다.


그간 입에 맞는다 생각했던 건조 식량도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는 무용지물, 준비해간 육포만 간신히 입에 넣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이런 환경적 요인을 생각지 못하고 건조 식량을 베이스로 준비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것도 경험이다 생각하고 견뎌 낼 수밖에 없었다. 비 화식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육포가 전부였던 나와 달리, 확실히 정보가 많고 이런 경험이 많아 그런지는 몰라도 현지의 하이커들은 대부분 말린 과일이나 믹스넛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날씨가 더운 만큼 땀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마시는 물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평소 회사나 집에 있을 때 하루에 1L 마시는 것도 벅찼는데, 여기서는 하루에 최소 5L를 마셨다. 덕분에 평균적으로 짊어지고 다니는 물의 양은 5L에서 많게는 7L까지.. 배낭의 기본 무게가 8~9Kg, 식량 3~4Kg이라 했을 때, 최소 16Kg~ 최대 20Kg까지 메고 다녀야만 했다. 이 무게가 고스란히 무릎으로 전해지게 되니 지금 무릎에 통증이 있는 게 당연지사, 나는 스스로를 자만했고, 사막이라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트레일의 환경을 얕보았다.


그 오만방자함이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통증은 양쪽 무릎에서 오른쪽 발목까지 번져 더욱더 나를 괴롭혔다.




3.jpg < 황량한 대지를 올라 모든 걸 내려다볼 수 있는 백만 불짜리 텐트사이트에서 캠프를 한들, 그 아름다움도 통증을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




참고 걸을 수는 있었지만, 참았던 고통이 고스란히 잘 때 밀려와 잠도 못 이루게 했다. 더 심각해지는 건 발목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져 무릎이 아팠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다.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긴 했지만 그걸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일단은 무식하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첫 번째 보급지까지 가서 상태를 살펴보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행동에 옮겼다. 첫 번째 보급지인 Warner Springs는 campo에서 약 177km 지점으로 현 지점에서 64km가 좀 넘게 남아있었다. 그 전에 Julian을 들릴 수도 있지만, Julian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히치하이킹이 쉽게 되지 않아 그냥 Warner Springs로 계속 향할 수 밖에 없었다.


Warner Springs까지의 여정은 정말 힘들었다. 몸 상태도 몸 상태였지만, 역시 사막은 사막이었다.




4.jpg < 태양을 피할 곳은 없다. 그냥 인내하고 걸을 수밖에.. >




사막에서는 매 시간 끊임없이 물과의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더구나 캘리포니아의 가뭄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Data book에 있는 water source를 체크해서 필요한 양만 보충하고 다녔는데, 그다음 water source가 가뭄 때문에 물이 말라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한창 더울 시간에 물이 다 떨어져 다음 water source까지 6km를 더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갈증이 너무 심해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그 시간 지나가던 찰스와 마이크란 친구가 물 1L를 흔쾌히 빌려줘서 살아난 적도 있었다. 찰스는 이후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만나게 되어 서로 안부도 전했고 끝까지 완주도 했다. 그 이후로는 항상 1~2L를 더 보충해서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하루 섭취하는 물의 양도 점점 늘어만 갔다.


물을 마실수록, 몸은 물을 더 원하고 있었다. 대신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생체리듬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배변을 했고, 소변도 하루 10회 정도... 다만 물이 귀해 씻을 수가 없으니 날이 갈수록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땀에 찌들어 냄새도 심해졌다.

거지도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이 귀한 지역이라 그런지 PCT하이커들을 위한 트레일 매직도 많았다. 약 32km 정도 물이 없던 구간이 있었는데, 누군가 하이커들을 위해 1갤런짜리 생수를 미리 수백 개씩 쌓아두고 ‘PCT HIKER ONLY! Max 3 Liter Per Person!’이라는 메모만 적어 놓았다. 그걸 그곳에 가져다 놓은 사람도 대단하지만, 정말 물이 필요한 시점에서 욕심 낼 수도 있는데 정확히 3 Liter씩만 가져가는 하이커들도 대단했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지킬 건 지키는 모습. 그들의 이런 성숙한 모습과 문화가 너무 멋있었다.




DSC00570.jpg < 기쁜 마음으로 남긴 찰스와의 100mi 인증샷. 이제 앞으로 25번만 더 진행하면 된다는 아주 귀여운 글과 함께 놓인 표지판을 배경으로… >




길을 떠난 지 5일째 되는 4월 29일, 드디어 대망의 160km 지점을 통과했다. 이제 약 16km만 더 진행하면 Warner Springs에 도착할 수 있지만, 좁혀진 거리만큼이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다리를 절면서도 8km 정도 더 운행해 도착한 텐트사이트에서 쓰러지듯 배낭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곤 원망하듯 속으로 읊조렸다.


‘오~ 하늘이시여! 진정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이 날 만큼은 믿지도 않는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기댈 수 있는 게 나 하나론 부족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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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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