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그림으로 읽는 샤갈] 9편.
전쟁

불타는 하늘 아래, 인간의 얼굴

by 이안

1. 서두 — 사이렌이 멎은 뒤의 침묵


밤하늘이 붉게 타올랐습니다. 창밖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은 등불을 끄고 숨을 죽입니다.
불길은 도시의 지붕을 훑고 지나가고,
한 아이가 창문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샤갈의《전쟁》은 바로 그 순간의 공기를 붙잡습니다. 총성이 잠시 멎은 틈, 불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인간의 얼굴이 공포와 연민 사이에서 얼어붙는 시간. 이 그림은 전쟁의 장엄함이 아니라 그 속의 작고 떨리는 삶을 응시합니다.


2. 장소와 생애 맥락 — 망명자가 본 세계의 균열


샤갈은 러시아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몸으로 통과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 나치의 박해가 거세지자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고, 전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전쟁》(1960년대 중반 작업)은 이미 긴 망명의 끝자락에서, 뒤늦게 밀려오는 기억과 상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결과물입니다. 니스의 햇빛 아래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불탄 회당, 피난을 떠나는 행렬, 이름 없이 사라진 얼굴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평생 고향을 등지고 걸었고, 그 길에서 잿빛 하늘을 오래 보았다.”


이 그림은 그 잿빛 하늘을 색채의 언어로 다시 부르는 의식입니다.


스크린샷 2025-09-27 004320.png

Marc Chagall, 〈War〉 (La Guerre / Der Krieg) / 제작 연도: 1964–1966

재료: 재료: 종이에 혼합 매체 (구아슈, 수채, 템페라, 잉크 등), 캔버스에 마운트 /

크기: 약 296 × 406 cm (대작) / 소장: 쮜리히 쿤스트하우스 미술관 (Kunsthaus Zürich)


3. 도상학적 분석 — 뒤집힌 마을, 붉은 하늘, 떠다니는 인물들


샤갈은 전쟁을 ‘사실’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화면 어디선가 마을이 뒤집혀 있고, 불길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릅니다. 푸른 말을 타고 떠도는 사람, 토라 두루마리를 품에 안은 노인, 아이를 안고 달리는 어머니, 그리고 공중에 비틀린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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