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도 주노의 초상 (Portrait of Léopold Zborows
상파울루의 번잡한 대로를 지나, 공중에 매달린 듯 붉은 기둥 위에 떠 있는 상파울루 미술관(MASP)의 투명한 전시 공간에 들어선다. 남미의 햇빛이 유리 벽을 통과해 바닥에 부서지고, 거리의 소음이 서서히 사라진다. 현대 건축의 차가움 속에서 오래된 그림들이 숨 쉬고 있는 이 기묘한 공간은 그 자체로 여행자의 감각을 깨운다.
관람객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다, 한 그림 앞에 멈춘다. 붉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정면으로 앉아, 관람객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름 모를 군중 속에서 갑자기 오래된 친구와 마주친 듯한 이 낯선 친밀감.
그것이 바로 모딜리아니의〈레오폴도 주노의 초상〉이다.
레오폴도 주노는 폴란드 출신의 시인이자 화상으로, 파리 몽파르나스의 보헤미안 세계에서 모딜리아니와 만났다. 그들은 단순한 화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넘어, 한 시대를 함께 살아낸 동반자였다. 주노는 모딜리아니에게 모델을 연결하고, 그림을 팔아주며, 집세와 식비를 대신 내주었다. 모딜리아니는 병약하고 가난했지만, 그의 붓은 멈추지 않았고, 그 곁에는 늘 주노가 있었다. 이 초상은 그런 삶의 맥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후원자가 단순한 자본가가 아니라,
예술가의 생존과 영혼을 지탱하는 존재였음을 알려준다.
그림 속 주노는 단단한 의자에 앉아 정면을 향한다.
길게 늘어난 얼굴과 비워진 눈,
뾰족한 코와 단정한 입매는 모딜리아니의 양식화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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