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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24. 2020

서울의 평창동에서, 한양 도성의
거리를 걷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으로 보증금 6천에, 월세 60만 원의 전세를 구하고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5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안 작가는 매일매일 평창동의 가을에 감탄하고 있어요. 그동안 서울에서 50년을 살아왔지만, 이토록 아름답게 가을이 저물어 가는 곳이 있는지, 미처 몰랐거든요.      


스스로를 서울 토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헛 똑똑이 토박이’였나 봐요. 한강의 북쪽, 서울의 고지대에 위치한 동네들에는, 강남, 목동, 여의도 등과는 분명히 다른 놀라운 매력이 있었어요. 이곳 동네들이 연출하는 가을 하늘과, 가을바람, 그리고 가을의 단풍들에는, 우리의 오래된 문화의 향기를 담아낸, 예스러운 운치와,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머물고 있는 숙소 왼쪽으로는 북악산의 높은 봉우리들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비봉과 향로봉 방향의 북한산이 보이는데, 밤이면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서 불빛들이 반짝이며, 이곳이 바로 5백 년 도읍지였음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조선시대였다면 그 불빛들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처럼 느껴졌을 것도 같아요.  


<이안 작가의 숙소에서 바라보면, 멀리 북한산성의 성벽을 따라서 이어진 불빛들이 저녁 하늘에 빛나고 있다 >


이안 작가는 오래전부터 조선이라는 나라를 동경하고 좋아해 왔어요. 그래서 조선을 두고, '전설 속의 나라', 한양을 두고 '전설 속의 수도'라고 명명하길 좋아했어요. 조선은 세계 역사 속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무(武)가 아닌 문(文)으로 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국가였으니까요.      


강한 왕권의 힘과 무력으로, 한 세대와 일정 규모의 면적을 통치하는 건, 어느 시대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었죠. 하지만 무가(김장 담글 때 무가 아닌 건 아시죠? ^^) 아닌, 문으로 한 나라를 500백 년 동안 통치한다는 '놀라운 전설'이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높은 문화와 학문의 힘이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광화문과 경복궁, 남대문과 동대문, 그리고 도성 밖의 무수한 유적들을 통해서, 500년 한양 도읍지의 생생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의 강북이라고 이안 작가는 생각해요. 물론 서울 북촌에는 한옥 마을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외형적인 문화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북촌이 아니더라도, 평창동과 부암동, 그리고 북아현동의 고지대와, 미아동과 길음동에도 역시, 조선 한양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어요. 


비록 한양의 기와지붕이 고급 단독주택으로, 한양의 초가지붕은 좀 더 허름하고 낡은 빌라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한양의 낮은 담장 사이로 이어지던 골목을 비추던 달빛은, 전봇대의 주황색 가로등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또 남산골에 모여 살던 한양 서민들의 사람 냄새와, 고도(古都)와 백성들이 함께 만들어냈던 공생 문화의 넉넉함은, 강북의 골목과 골목을 돌아, 담장과 담장 너머 마당의 오래된 소나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한양의 이 아무개 도령은, 아직도 서울에 살아남아 과거시험 대신, 매일 밤 수능 공부를 하고 있고, 김 아무개 처자는 두 집 건너 최아무개 총각과, 낮은 담장이 아닌 전봇대 아래에서 사랑을 속살거리고 있어요. 인왕산과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을 따라가면서, 나뭇짐을 날랐던 힘 좋은 산 사람 백 씨는, 서울에서는 주말마다 도봉산의 백운대 정상에 오르기도 하지요.     


<신문물의 이기인 전봇대의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그래도 가을밤 추억의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의 붉은색은 항상 정겹다 >


서울은 이처럼 500년 문화의 향기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멋진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안 작가의 평창동 전셋집에는 창문이 3개 있는데, 작은방과 큰방 그리고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주황색 가로등이, 늦은 밤과 이른 새벽마다, 단지 아스팔트가 덮였을 뿐인, 한양의 골목 풍경을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비춰주고 있답니다. 늦은 밤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조선의 왕이 암행을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     


담장이 높아 상당히 비싸 보이는 고급 집들도, 강남의 다 똑같은 아파트들보다는, 훨씬 더 멋스러움이 있고, 뒷 배경이 되는 북한산과도 아주 잘 어울린답니다. 시가로 30~40억이 넘으니까, 앞으로도 이안 작가의 집이 될 수는 없겠지만, 부자 동네의 고급스러움을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이안 작가에게 이렇게 큰 집을 가진 사람들이 이웃으로 있다니, 살짝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마치 옆집에 영의정이 사는, 조선시대의 퇴락한 가문의 가난한 선비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내와 연예할 때 혹은, 결혼을 하고 20년여 년 동안, 평창동 거리를 함께 걷곤 했는데, 그때는 지면 높이에서 성벽처럼 올라간 평창동의 고급 주택들을 올려다봐야만 했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안 작가가 머물고 있는 집에는, 주인집 할머님과 따님 내외분이 1층에 사시고, 이안 작가와 동갑내기인 아드님이 2층에 사세요. 그리고 이안 작가는 3층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창동의 집들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답니다. 3층 집에서 내려다보는 평창동과 주위 풍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상당히 근사해요.    


저에게 이 집을 추천해주었던, 고려대학교의 러시아 문학 천재 조박사는, 이곳보다 한참 더 높이 위치한 집에서 산다는데, 그 친구 집의 베란다에라도 찾아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 동네 모든 곳을 조망해보고 싶어 지네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가장 일반적인 가옥. 마당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고, 뾰쪽 지붕 아래로 2층 집이 있다. 옆집과 맞닿은 담장은 이웃의 마당으로 이어지며, 공간을 사이좋게 나누고 있다 >


주인 할머님 집에서 동쪽으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는, 높은 구릉 지대를 타고 내려오며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 있어요. 물론 해발고도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인도의 Tibetan Village(티베트 마을)인, 다람살라의 맥로드 간즈를 찾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해발 1,800미터에 지어진, 티베트인들의 망명 도시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티베트 망명지가 이곳에 만들어진 배경은, 히말라야의 해발고도 4,000미터 이상의 고원에서 살던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의 침공을 피해서 망명을 하자, 당시 인도의 수상이던 네루가, 티베트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인도 북부의 땅을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안 작가는 3개월 동안 인도와 네팔 기행을 하면서, 다람살라에는 열흘 가량을 머물렀었는데, 그곳에서는 만년의 세월을 건너온 하얀 눈으로 뒤덮인 채,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덕분에 다람살라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에 머물렀지만, 자주 창문을 열고 히말라야에서부터 불어오는 만년설의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답니다.      


이곳 평창동에서도 창문을 열어, 찬바람이 실어다 주는 북한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겨울밤 서울 하늘에서 가장 크게 빛나고 있는, 오리온 좌를 자주 바라봐요. 별빛 아래에는 크리스마스 전등을 매달아 놓은 듯한, 북한산성의 성벽이 반짝거리고,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가정집의 불빛들도, 이곳이 영영 사라지질 않을 오백 년 도읍지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런 풍경에 취하다 보면, 커피 한잔에 만 오천쯤은 하는, 고급 카페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인도 북부지역에 히말라야를 끼고 조성된, 티베트 망명 정부 다람살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평창동 고지대의 가옥들. 높이 솟아있는 전봇대의 전선들 사이로 밤하늘의 별빛이 반짝인다>


‘스타벅스‘와 ‘배스킨라빈스 31‘도 근처에 있어서, 제주도 표선면과 순천시 승주읍에 머물 때, 스타벅스에 한번 가려면, 30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몰았던 것과 비교해서, 신문물을 마음껏 누리는 ’ 신남성‘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기도 해요. 1여 년 만에 찾은 서울의 이런 흥분도, 한 두 달 후면 그렇고 그런 평범함으로 바뀌는 건 아닐지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또한 평창동에는 예스러운 느낌의 식당이나, 상점이 많이 있어서 더욱 정감이 간답니다. 특히 '골동품' 또는 '옛 물건'이라는 간판의, ‘모든 골동품 고가 매입’이라는 안내판을 단 가게들이 종종 보이인데, 골동품 가게 안쪽으로, 고지도와 고서, 그리고 로봇 태권브이 초창기 포스터 등이 흥미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원래 순천에서 겨울과 내년 봄까지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서울 전셋집으로 오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 이안 작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친구의 사정이 있기도 했어요. 친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서울에 마땅히 묵을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저는 10월 하순에 계약했다가 취소했던 전셋집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 할머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계약을 다시 살려냈거든요.      


그래서 이안 작가가 지금 머물고 있는 3층 전셋집에서, 큰 방은 제가 쓰고, 작은 방은 친구가 쓰고 있어요. 친구와 저는 죽이 잘 맞는 편이라서 어린애들처럼 장난을 치면서 크게 웃거나, 자기가 더 잘생겼다면서 서로 잘난 체를 한참 동안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가끔 싸우고 삐칠 때도 있지만, 친구 사이이다 보니, 금세 풀어지고 다시 장난을 친답니다. 이안 작가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9개월을 동안 내내 울다가, 한해의 막바지에 겨우 웃음을 되찾았답니다.      


연말이면 친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갈 거라는데, 그 이후에도 이안 작가가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랜 도읍지 한양 도성 같은 평창동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눈과 마음에 행복한 추억이 가득 차도록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구별 북반구의 대표적인 겨울 별자리인, [오리온 좌]가 선명히 보이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밤하늘. 조선시대의 천문학자들도, 한양 도성이 있던 이곳 서울에서 저 별을 보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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