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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23. 2020

서울 평창동에서의 4일째 밤이
깊어 갑니다

지난 목요일 늦게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대치동 부모님 집에 들러서 간단히 이불 몇 개를 챙기고, 바로 평창동 전셋집으로 와서 짐을 풀었습니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 몇 벌과 밥그릇 국그릇 등이 전부였어요. 제주와 순천에서 9개월 동안 지낼 때, [한달살이] 민박집에는,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적인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어서, 옷과 약 그리고 노트북 외에는, 제 짐이 별로 없었거든요.      


순천에서 제 차에 이런저런 짐을 조금씩 싣고 올라올 때, 순천에서 샀던 무화과나무 한그루와, 제주도에서부터 키웠던 화분도 하나 가져왔어요. 남쪽 지방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서울의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주도 표선면에서 살 때, 아주 어린 묘목일 때부터 제가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면서 키웠던 나무들은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순천에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어요. 서울 평창동에서 제주 태생의 나무들을 한번 잘 키워봐야겠어요. 성공한다면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한 나무가 될 거 같아요.      


특히 제주도의 왕보리수는 따뜻한 바닷가 근처에서만 자라는데, 서울에서도 적응한다면, 아주 오랜 기간 함께 지내고 싶은 나무예요. 왕보리수의 잎은 건강하면서도 짙은 초록색 잎이 무척 예뻐서, 보고 있으면 식물들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왕성한 생명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안 작가는 제주도 표선면에서 100여 개의 화분에 300여 개가 넘는 나무를 키웠었다. 그중 화분 4개를 순천으로 가져왔고, 다시 짐을 줄여서 2개만 서울 평창동으로 가져왔다. (사진) 순천 민박집에서 이안 작가가 키우던 4개의 화분 중 2개>


어제 밤늦은 시간과, 오늘 새벽에 걸쳐 서울과 평창동에는 비가 내렸어요. 이안 작가가 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이번 주 목요일에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역대 11월 강우량을 경신했었는데, 올해는 늦가을에 큰 비가 많이 내리는 걸 보니,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면 눈이 많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평창동에서 이안 작가 살게 된 전셋집은, 보증금 6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인데, 북악터널을 빠져나온 큰길에서 500미터 정도를 올라와야 하는 비탈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 큰 눈이 오면 오르막길을 오를 일이 걱정되었거든요. 아마도 이안 작가가 어린아이였다면, 산과 나무 그리고, 집집마다 골목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듯한, 평창동의 눈이 쌓인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겠지만, 저도 이젠 눈이 오면, 미끄러운 오르막길에서 팍팍해질 무르팍과, 삐그덕거리는 허리 통증부터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 빗방울 소리가 크게 들리니까, 평창동에서의 첫날, 동네 입구에 있는 죽집 아저씨가 했던

”겨울 되면 서울 다른 지역에서 비올 때, 평창동은 눈이 온다고,
기온이 몇 도 더 낮거든, 그래서 여름에는 지내기 좋지 “


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요통 걱정은 잊고 금세 변덕을 부렸습니다. 혹시 첫눈이 오는 거 아냐? 라며 설레어했으니까요. 


제가 아무리, 매일 요통에 시달리는 늙은 아저씨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11월의 첫눈과, 평창동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하면서, 빙그레 입꼬리가 올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특히 서울에는 북한산이라는 매우 수려한 국립공원에 함께 있어서, 겨울이 되면 시야가 가리지 않은 서울 곳곳에서는, 백운대와 비봉 등 북한산과 도봉산의 봉우리에 쌓인 눈을 오랫동안 보면서 겨울을 보낼 수 있기도 하지요.     

<서울에 올라오니 콧구멍에 '글로벌 도시 서울의 신식 문물'바람을 쐬어주고 싶어서 명동에 나가봤다. 코로나 위기에도 12월은 어김없이 오는지, 롯데 백화점 앞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그러고 보니,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에, 방송국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극으로 치달았던 때, '부당 해고당한 후배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라고, MBC 라디오 PD에서 쫓겨나, 주조정실에서 근무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MBC 라디오 방송의 송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이 근무하는), 상암동 MBC의 주조정실에서는, 눈이 쌓인 백운대가 정면으로 보이거든요.      


이안 작가는 15년 2월부터 주조정실에서 근무하면서, 회사 간부들의 이런저런 괴롭힘에, 외롭고 힘들 때마다 백운대에 쌓인 눈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당시엔 합법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조금이라도 가담하면, MBC 직원 누구나 회사로부터 찍혀서 모질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어요.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이 변하지 않다 보니,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란 참으로 외롭고, 매일매일 분노를 인내하고 삭혀하는 기간이었답니다. 게다가 가슴속에서 빛나는 있는 공정방송에 대한 빛나는 자부심과 당당함 보다는, 회사가 주는 당근이 더 좋아서 조합을 탈퇴하는 조합원들도 늘어갔고요. 그래도 800여 명의 든든한 동지들이 함께 있어서, 다시 힘을 내곤 했었는데, 지금은 옛날의 동지들과 연락도, 만남도 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에서, 지난 25년 동안 MBC에서의 저의 모든 시간들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이곳 평창동에서 바라보는 북악산의 봉우리와, 비봉과 향로봉 방향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달래주고 있어서 큰 위로가 됩니다.      

 

<이안 작가의 전셋집 창문에서 바라본, 서울의 북악산.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멋진 산 봉우리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거 같다>


사실 올 3월,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지고, 제주로 내려서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에 가면, 볼 수 없는 가족 생각에 슬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영영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더욱 우울한 마음을 들더라고요.      


이제 평창동 서울로 다시 돌아오니, 세월이 더 많이 지나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언제라도 여의도로 차를 몰아서, 가족과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안 작가의 아내는 참으로 마음이 넓고, 의지도 강한 사람이었어요. 


함께 마지막 가족 여행을 갔던, 2015년 1월에, 제가 며칠 동안 불편한 기색으로 아무 말로 하지 않자, 아내가 자꾸 이유를 물었고, 그래서, 

”사실 회사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어서 라디오직 PD직에서 쫓겨났고,
노동조합 활동도 하게 됐다 “


라고 말했을 때, 아내는 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해주었어요.      


'힘내라'라고,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잘못된 정권이니까, 당신이 옳을 길을 가는 거다'라고. 용기를 주었어요. 

아마 아내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안 작가는, 암흑 같던 언론 통제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런 걸 보면, 비록 아내와 제가 지금은 이혼을 했다지만,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해주고, 또 서로를 응원해주는 좋은 동지이자, 친구 관계는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어쩌면 시일이 더 지나고, 제가 가족 앞에 좀 더 떳떳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날이 되면, 예전처럼 다시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르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도 해요. 물론 아내는, '다시 합치는 일은 절대로 없다'라고 선언했지만, 아내는 제가 힘들어하는 걸,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에요.   

   

많이 비겁한 술책이지만, 제가 엄살을 계속 많이 부리면, 언젠가는 저를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ㅎㅎ). 


네~네~ 알아요. 

엄살보다는 멋진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빠른 길이란 걸요. 

이제 50년 동안 익숙했던 서울로 왔고, 또 새로운 일도 구하게 되면, 

이안 작가가 좀 더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캡틴 아메리카처럼 남성미 팍팍! 넘치는 아저씨가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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