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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논란과 트럼프 정치]

신뢰를 무너뜨리는 권력의 기술

by 이안

1. 서두 — 일상의 약, 정치의 무기


요즘 미국 정치권에서 뜻밖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타이레놀’이라는 일상적 진통제를 공격하며, 임신 중 복용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함께 발표한 이 정책은 단순한 의학적 권고를 넘어, 타이레놀 라벨 변경과 의사 지침 개정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주요 의학 단체들은
“타이레놀은 임신 중 가장 안전한 진통제 중 하나”라고 반박했고,
제조사 Kenvue 역시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당연하게 믿어온 약이 사실은 위험할 수 있다”라고 반복하며, 대중의 불안을 자극했습니다. 그 순간, 타이레놀은 약이 아니라 정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 트럼프 정치의 노이즈 전략


트럼프식 정치는 언제나 ‘논쟁의 중심’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취합니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한 구호로 압축하고, 감정적 충격을 통해 여론을 장악하는 방식입니다. 백신, 기후변화, 이민, 언론 등 사회의 신뢰 체계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영역을 ‘의심의 언어’로 흔들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타이레놀 논란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트럼프는 과학적 논쟁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논쟁 자체를 지배하려는 것입니다.


의학적 사실보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대중의 신뢰는
기존 권위에서 자신에게로 이동합니다.


3. 신뢰의 정치학 — ‘진리의 화자’를 자처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 행태는 권력이 ‘진리의 위치’를 점유하려는 시도입니다. 플라톤 이후 정치와 진리의 관계는 늘 긴장 속에 존재했습니다. 진리는 탐구의 대상이고, 권력은 그 결과를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전적 원칙이었죠. 그러나 트럼프 정치에서는 그 경계가 무너집니다.

“과학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선언은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권력의 언어가 진리를 대체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이때 정치의 무대는 사실의 논쟁에서 감정의 전쟁으로 바뀝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상 속의 불안(das Unheimliche)”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불안은 단지 두려움이 아니라, 현실의 의미 체계가 흔들릴 때 생겨나는 존재적 동요입니다. 트럼프는 바로 그 불안을 정치의 연료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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