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속의 영혼, 빛이 말하는 초상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작은 전시실 안, 한 소녀의 시선이 방문객을 멈춰 세운다.
그녀는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한다.
푸른 터번과 황금빛 옷자락 사이에서, 한 점의 빛이 귀걸이에 머문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다. 오히려 숨죽이며 살아 있다.
베르메르는 대화하지 않는 인물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 가장 강하게 ‘현존’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는 신화의 여인도, 초상화의 모델도 아니다.
단지 ‘존재’ 그 자체로 거기 있다.
그 침묵의 정적 속에서 관람자는 문득 깨닫는다.
이 초상은 얼굴이 아니라,
빛이 그린 영혼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그림에는 배경도, 이름도, 사건도 없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살짝 입을 연 채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선이 우리를 스친다.
그 찰나의 동작 속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긴장이 있다.
베르메르는 일상의 장면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갖는 순간을 그렸다.
그녀가 입을 여는 듯 보이는 이유는 말하려 해서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그 순간,
빛만이 말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관람자를 향하지만,
그 시선은 우리를 뚫고 ‘내면’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이 초상은 타인을 보는 그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라보이는 거울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 × 39 cm,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Mauritshuis, The H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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