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그림의 베르메르] 5편. 지리학자

— 세계를 설계하는 인간, 측량의 철학

by 이안

1. 서두 — 방 안의 지도, 밖의 세계


델프트의 한 조용한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지도 위에 흩어진다.

책상에는 나침반, 지도, 두루마리, 그리고 반쯤 열린 창문.

한 남자가 몸을 굽혀 계산 도구를 손에 쥔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지리학자〉는〈천문학자〉의 형제작으로 불린다.

하늘을 관찰하던 눈이 이제 땅을 바라보며,

인간이 신의 창조를 이해하던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그리는 시대’로 전환된 순간을 기록한다.
그는 더 이상 성경의 세계를 읽지 않고, 세계의 지도를 그린다.

2. 회화의 내면 — 측량의 자세, 사유의 몸짓


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인물의 자세다.


그는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종이 위를 응시한다.

그 긴장된 자세는 움직임과 정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손끝은 계산의 도구를 쥐고 있지만, 눈빛은 먼 세계를 향한다.

그의 시선은 지도 위를 지나,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더듬는다.


이때의 자세는 단순한 학자의 포즈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이성의 몸짓”이다.


베르메르는 그 찰나의 긴장을 빛의 균형으로 고정시켰다.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남자의 어깨를 비추며,
그의 생각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지리학자 (The Geographer), 1669년경, 캔버스에 유채,

53 × 46.6 cm, 슈테델 미술관(프랑크푸르트) 소장



3. 색채와 구성 — 측량의 기하학


〈지리학자〉의 화면은 놀랍도록 정제된 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

벽의 선, 창문틀, 지도 가장자리, 책상 모서리가

모두 한 중심점을 향해 기하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중심이 바로 인물의 머리와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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