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그림의 브뤼헐] 4편. 죽음의 승리

질서의 붕괴, 인간의 최후의 거울

by 이안

1. 서두 — 불길한 하늘, 침묵의 행진


붉은 하늘 아래, 세상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불길이 들판을 덮고, 마을은 불타며, 사람들은 사방으로 도망친다.

그들의 발밑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죽음의 군대가 북소리를 울리며 행진한다.


〈죽음의 승리〉는 피터르 브뤼헐의 회화 중
가장 암시적이고 잔혹한 장면이다.
이곳엔 신도, 왕도, 농부도,
어린아이도 차별 없이 죽음 앞에 놓여 있다.


브뤼헐은 종말의 공포를 외치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평등의 질서를 시각화한 철학자였다.


이 그림은 세계의 멸망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붕괴의 초상이다.


2. 회화의 내면 — 무질서의 구조, 끝의 질서


처음 보면 혼란스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장면에는 냉철한 질서가 있다.

죽음의 군대는 체계적으로 행진하고, 전장은 무질서 속에서도 정확히 구성되어 있다.


브뤼헐은 카오스를 그리되,
그 안에서 붕괴의 논리를 찾았다.
그의 죽음은 무의미한 파괴가 아니라,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구조적 한계다.


그는 ‘죽음의 기계’ 속에서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지 보여준다.


칼을 든 해골, 땅에 쓰러진 병사, 마지막까지 금화를 움켜쥔 상인 —

그들은 각자의 질서를 잃고, 하나의 거대한 순환 속으로 흡수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종말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피로가 임계점에 다다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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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대), 죽음의 승리 (The Triumph of Death), 1562년경,

목판에 유채, 117 × 162 cm,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소장


3. 색채와 구성 — 붉음의 침식, 회색의 세계


〈죽음의 승리〉의 색은 불안하다.

불타는 하늘은 붉게 일렁이고, 땅은 잿빛으로 가라앉는다.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 아니라, 파괴의 온도다.

그 위에 얹힌 회색과 갈색의 잔영은 세상의 무게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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