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과 사전심의제도

-음악이 흐르는 풍경 - with 서태지와 아이들(1)-

by 이안

... 시사(時事) PD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과의 첫 만남...


필자가 방송국에서 음악 PD로 25년을 일했다고는 하지만, 한반도 유사 이래 처음으로 ‘아이돌 팬덤’이라는 현상을 만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서태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난 알아요], 2집 [하여가], 3집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등의 노래를 통해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계를 들어다 놨다 할 시절에, 필자는 안타깝게도 시사 프로그램의 막내 PD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 발표되었던 1994년도에 MBC 라디오에 입사를 하고, 지근거리에서 그를 여러 번 영접(?)할 수도 있는, 같은 방송국에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출근을 했고, ‘그와 그의 아이들‘이 가끔이라서 방송국에 출두하는 날에는, 하필이면 취재 약속이 잡혀서, 항상 외부에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하지만, 1996년도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속, [시대유감]이라는 노래가 당시에 한국 사회에서 ’ 뜨거운 감자‘였던, 공윤(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에서, ’ 사회를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서태지는, 그때까지 뮤지션들이 일반적으로 해오던, 가사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공윤에 ’ 굴복‘하는 대신, 아예 가사를 전부 빼고 [시대유감] 전체를 연주곡으로만 앨범에 싣는 ’ 강한 저항‘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과, 공윤의 사전 심의 제도에 관한 기사가, MBC [뉴스데스크]에서까지 연일 아이템으로 다루게 되었다.


게다가 공윤의 사전심의제도의 위헌 여부와 관련해서,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서태지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사회, 정치적으로 큰 화두가 되었고, 드디어 ‘시사 PD’ 피터팬도, 여의도 MBC 라디오 7층 스튜디오에, 서태지와 양현석, 이주노, 셋을 가둬(?) 놓고,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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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서태지의 만남>

서태지는 지난 2004년 2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과 대중문화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당시에 김 전 대통령은 "가장 보고 싶은 손님이 왔다"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리 남을 인물"이라고 격려했고, 서태지는 "정성껏 만든 앨범"이라며 정규 7집 앨범을 선물했다. 한국 대중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면서 ‘문화대통령’으로도 불렸던 서태지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많았다. 대중문화에 애정이 많았던 김 전 대통령은 사전심의와 관련해서도 서태지에게 힘을 실어줬는데, 그 배경과 관련해서, 음반 사전심의가 ‘독재시대의 유물’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도 있었지만, 1993년에 발표된 서태지의 3 집속 [발해를 꿈꾸며]를 듣고, 통일에 관한 열정을 노래한 젊은 뮤지션 서태지에 대해서 이미 애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태지는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평소 대중문화와 음악을 사랑해 주신 분이었는데 존경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의를 표한다"라고 추도하기도 했다.


... 여의도 MBC 라디오 7층 스튜디오에서는 [컴백홈]과 [시대유감]이 흐르고...

가둬놨다고까지 표현한 것은, 1996년도에 4집을 발표하고 발매 열흘만에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던 ‘은하계 최고의 인기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그들을 라디오 스튜디오로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가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태지의 광팬이기도 했던 필자는, 서태지를 코앞에 두고 인터뷰를 한다는 황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휘청였고 머릿속이 아찔했고, 덕분에 당시에 나눴던 인터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저 ‘태지님’의 아름다운 머릿 결 뒤에서 후광이 찬란히 빛나던 기억만 생생할 뿐이다.

그래도 천부적인 시사 PD로서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서(실제로 MBC 라디오에서 [손석희 시선집중]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을 할 때, 손석희 선배로부터 최고의 라디오 PD라는 타이틀을 얻은 바 있음!) 당시에 나눴던 이야기를 회상해 보자면,


1996년 당시에 가요계에 큰 충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랭스터 랩 장르의 4집 타이틀 곡 [컴백홈]에 대한 이야기와 10대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나갔던 문화대통령 ‘서태지 현상’에 관한 이야기는 나누었다. 하지만 정작 시사 PD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시대유감]과 공윤, 그리고 사전 심의 제도의 사회적 논란과 관련해서는, ‘태지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자, “네 괜찮습니다. 저 사인이라도 한 장만...”하면서 비굴한 웃음을 던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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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 서태지와 아이들 4집 가사지의 일부. >


공윤 윤리 심의필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보인다. 서태지는 <시대유감>의 가사 수정을 요구한 공윤과 관련, “가사를 바꾸는 건 여러 여건상 불가능했다. 자존심도 허락지 않았고 메시지 전달에도 문제가 많았다”며, “언젠가는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인터뷰를 통해서 말했다. 이에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문체부와 공륜에 진정서와 편지를 보냈고, 공륜 철폐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에 새정치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한 여고생의 편지를 통해서 이 문제를 접하고, 지도위원회를 열고 당내에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관련 진상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원하기로 했다.


... 눈물을 쏙 빼게 혼을 내던 무서운 선배님 앞이었지만, 속으로는 웃었던...


인터뷰가 끝나고 당시에 MBC 라디오에서 가장 무서운 선배 중 한 분이자, 피터팬 PD의 시사 프로그램 ‘사수’였던, 김 00 차장님께 불려 갔는데, “이 한신한 놈아! 네가 PD냐? 거물 서태지를 섭외해서, 스튜디오에 밀어 넣어주는 것 까지 해줬는데, 사전심의 관련 인터뷰를 하나도 녹음 못했냐!”면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나야만 했었다. (그래도 필자는 태지님과 단독 인터뷰를 20분가량 했던 영광에 속마음으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던 거 같다)


사실 필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처음 들었던, 1992년 대학 3학년 때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후 발표되는 앨범들도 빼놓지 않고 수집했고 그의 노래들은 늘 필자의 애청곡이었다.

그러던 중 4집을 발표하고 얼마 안 되어, ‘소모적인 방송활동’과 ‘창작활동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 선언을 했고, 미국에서 칩거해있다시피 했던 그는 드문 드문 앨범을 발표했었다.

어설픈 시사 PD 피터팬은 그 사이에 MBC 라디오의 힘 좀 쓰는 음악 PD로 성장했고, 서태지의 음악에 관한 열정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던 그가 5년 만인 2014년에 다시 앨범을 발표했는데 아이유와 함께 컬래버레이션해서 선공개 한 [소격동]이라는 노래를 듣고 다시 그에 대한 팬심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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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 2014년 서태지 9집을 발표하고 기자 회견을 하는 서태지>


서태지는 2014년 가을에 [소격동]이라는 노래를 아이유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선공개하고 이어서 [크리스말로윈]을 타이틀 곡으로 한 9집을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소격동]이 도대체 뭐냐? 동네 이름이냐? 실제로 대한민국에 있는 동네이냐? 상상 속의 가상의 동네이냐?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만큼 소격동이라는 동네는 인근의 삼청동 가회동 평창동에 비해서 덜 알려진 동네였다. 하지만 [소격동] 속에 흐르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가사와 멜로디에 피터팬 PD는 잊고 있었던 서태지에 대한 팬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풍경- with 서태지와 소격동(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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