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풍경,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
... 고려대학교 최재성은 노래도 잘 불러...
대학 친구 중에 나보다 민중가요를 더 잘 불렀던 친구가 있었다. 녀석의 별명은 ‘고려대학교 최재성’이었다. (최재성 :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남자 주인공. 그 시절 최재성의 ‘멋짐’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다 아시시라~) 친구는 대학시절 “알흠다운 꽃 미모와, 박력 있는 말솜씨”로, 주위의 숙명여대, 서울여대는 물론, 멀리 신촌의 이화 여대생의 마음까지 훔치며 행복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특히 그 친구는 노래를 부를 때,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에 슬쩍슬쩍 꽃미소까지 날렸기 때문에, ’ 광야에서‘, ’ 그날이 오면 ‘ 과 같은 노래를, 온갖 감정을 끌어모아 불러 젖히면, 후배 여학생은 물론, 대학 동기인 나까지 반해서 고백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30년 전의 그 꽃미남 대학 친구가, 며칠 전 나에게 연락을 해서, 대작가님이 혼자 살고 있는, ’ 평창동 홀아비‘의 집에서 2020년 연말의 밤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살짝 귀찮기도 했지만, 나는 먼지 쌓인 진공청소기를 꺼내서 녀석이 자고 갈 방을 밀었다. 그동안 ‘홀아비 생활 수칙, 제1조 1항’, 월 1회 청소를 고수하면서 살아왔는데, 녀석의 호흡기 건강을 위해서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청소기를 민 것이다.
... 진지한 토론과 대학 노래패의 민중가요가 흐르던...
방바닥을 청소기로 밀면서, 대학시절 고려대 정문 앞에 있던, 늘 먼지가 뭉텅이로 돌아다니던 그 녀석의 싸구려 자취집이 생각났다. 나는 친구의 방에 자주 놀러 가곤 했었는데, 친구의 방에서는 늘 담배에 전 퀴퀴한 냄새와 함께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목소리와 대학 노래패의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들은 나에게 늘 기분 좋은 흥분을 안겨주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통일 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는,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는 엄혹한 정권의 탄압에 짓눌려, 소위 ‘써클’ 혹은 ‘언더’에서만 불렸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운동이 대중화된, 198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물론 공중파 라디오에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민중가요를 불렀던 뮤지션 중에서, 안치환, 김광석 등은 솔로 가수로 데뷔해서도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사진 1.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표지>
광야에서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 그날이 오면 / 사계 / 마른 잎 다시 살아나 / 이 산하에 등 민중가요의 명곡들이 망라된 노찾사의 2집. 이중 ‘그날의 오면’은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1985년에 공연된 노래극 '불꽃'의 주제곡이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선율로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노래로 꼽히고 있다.
... 민중가요로 가수의 첫 발자국을 뗀 김광석과 안치환...
특히 김광석은 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대학연합 동아리에서 선배들과 함께 민중가요 공연을 시작했고, 1984년에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에 참여하면서 가수의 길에 첫 발을 디뎠다.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1987년에 발표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도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김광석이 불렀던 [광야에서], [녹두꽃] 등의 노래들은 김광석의 울림 있는 목소리와 함께, 민중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큰 감동을 줬다. 또한 1984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서, 대학 노래패 <울림터>에서 활동하다, 노래 모임 <새벽>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던 안치환이 불렀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잠들지 않는 남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의 노래들은,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의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던 노래 1위, 2위, 3위 의 노래 이기도 했다.
대학 동기중 민중가요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 불렀던, ’ 고려대 최재성‘은 지금 인천 지역 신문사에서 언론 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 통일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반월 공단 등지에서 일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 취재도 자주 다닌다.
나는 이 친구가 정의를 외치던 대학시절의 꿈과 소신을, 아직까지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푸르던 시절 시위 현장에서 또는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그날이 오면’을 부르던 녀석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녀석이 민중가요를 부르며 주위 동료들에게 벅찬 감동 선사했던 추억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굳은 다짐이 되어, 아직까지도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조안 바에즈가 전 세계인에게 선물했던 희망의 노래...
노래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 1960년대 초반부터 인권/평화운동과 관련된 노래를 불렀던 미국의 팝가수 조엔 바이즈가, 영미권은 물론 남미 유럽 등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당당히 ‘영원한 저항 뮤지션’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도, 그녀가 노랫말 속에 담아 불렀던 노래의 힘 때문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킹 목사의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조안 바에즈는 비록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35만 명의 군중을 이끌며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열창했었다. 이후 베트남 전쟁 현장에 직접 달려가서, 반전 비폭력 노래를 불렀고, 프랑코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의 스페인에서는, 생방송 중 저항 세력의 성가로 유명한 ‘노 노스 모베란’을 열창해서 큰 반향을 낳았다. 아무리 엄혹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 아픈 추억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코로나 속의 암울한 연말이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정의당 당원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올 겨울에 대학 친구 최재성과 함께 보내는 평창동 홀아비의 방에는, 아마도 1988년 녀석의 자취방에서처럼, ‘그날이 오면’이 흘러나올 거 같다. 전 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2020년을 함께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그날이 오기’를 함께 바라며 듣는 녀석의 노래가 희망을 전해줄 거라고 믿는다.
<사진 2. 군중 앞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노래를 부르는 조안 바에즈 >
조안 챈도스 바에즈 (Joan Chandos Baez, 1941년 1월 9일 ~ )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평화와 반전, 그리고 인권에 대해서 노래한 가수이다.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포크의 여왕’으로 불리던 그녀는, [The river in the pines], [Donna Donna] 등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