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풍경 –식구 그리고, 한 끼 식사-
(*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밝히자면, 필자가 서울 하고도 부자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종로구 평창동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 평창동은 크게, 조상 대대로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 ‘윗마을’과, 중산층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랫마을’로 나뉜다. 필자는 평창동의 아랫마을, 그중에서도 마음씨 좋은 주인 할머님의 가족이 1층과 2층이 살고 계시는, 아담한 집의 꼭대기 3층에서, 월세 60만 원에 혼자 살고 있다. 그리고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한국 뉴스]에 칼럼을 쓰고 있다.)
... 우리 동네로 이사 와라! 주말에 점심 한 끼 정도는 대접 하마...
눈이 내렸던 주말에 평창동 주민 한 분이,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그 주민은 다름 아닌, 나의 대학 동기이다. 이 친구는 평창동의 윗마을에서도, 전망이 끝내주게 좋은 3층짜리 대저택에 살고 있다.
필자가 올봄에 홀아비가 되고, 제주도와 전라남도 순천 등, 지방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다니니까, 친구는 내게 연락을 해서, ‘서울 평창동에도 잘 찾아보면 싼 월세집이 있으니, 서울로 올라오라’며, 조언을 했다.
필자는 올 3월까지 잘 다니던 MBC 라디오 PD직을, ‘욱’ 하는 심정에 때려치웠었다. 그리고 다달이 잘 나오던 ‘방송국의 쎈 월급’ 없이는, 도저히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회사를 떠난 뒤였다. 할 수없이 서울을 떠나서, 지난 10개월 동안 지방에서, 월세 50만 원 ~ 80만 원 정도를 내며 살았다.
그런데 평창동 윗마을에 사는 고마운 대학 동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야! 메뚜기처럼 살지 말고, 우리 동네로 이사 와라. 그럼 내가 주말엔 점심 한 끼 정도는 대접 하마. 가끔 같이 차도 마시고”라며, 밥 한 끼의 유혹을 했다.
친구의 말에 넘어가서, 10개월간의 떠돌이 지방 생활을 접고, 공기 좋은 북한산 자락의 동네로 이사를 오니, 눈이 내렸던 지난 주말에 정말로 점심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메뉴로 카레 덮밥이 나왔는데, 필자에게는 홀아비가 되고 나서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남의 집에 초대받아 먹게 된 밥이었다.
게다가 가정 주부의 손길이 닿은 집밥이라니! ‘아~ 이런 게 바로 식구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구나~’, 목구멍 어딘가에서 울컥, 뜨거운 게 올라왔는데, 대학 동기 앞에서, 쉰 살의 사나이가 눈물을 보일 수는 없으니, 그저 카레 접시에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먹어댔다.
... 식구 (食口) :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국어사전을 펴보면 [식구(食口)]에 대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나와있다. 필자는 지난 10개월을 식구가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내게 카레를 내어준, 고마운 ‘식구’를 다시 만난 것이다.
오늘 [한국 뉴스]의 음악 칼럼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함께 감상하고 싶은 노래는, 식구(혹은 가족)하면 떠오르는 노래이다. 한국인들은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에 대한 정서가 각별하기 때문에, 식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도 그만큼 많이 있다. 하지만 필자가 MBC 라디오에서 25년 동안 음악 PD로 일하면서 경험한, 청취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는 단연, 이승환의 [가족]이다.
이 노래는 1997년 1월에, 이승환 5집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다. 당시에 필자는 최장수 별밤지기 이문세의 자진 하차 후에 후임이 된,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조연출이었기에, 이승환과 같은 대가수를 지근거리에서 매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이승환은 5집 앨범을 내고, 소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고정 출연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MBC 라디오의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기 때문이다.
... 청취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가족 노래, 이승환의 [가족]...
사랑해요 우리 /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
행복해야 해요 /
아픔 없는 곳에 / 영원히 함께여야 해요
이승환 5집에는 [붉은 낙타], [애원] 등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두고두고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은 노래는 [가족]이었다. 특히 이 노래에는, 이승환의 팬들이 함께, ‘사랑해요 우리~’라고 시작하면서, 떼창을 부르는 후렴 부분이 있는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멜로디와 함께, 울컥하는 큰 감동을 안겨 준다. 필자도 평창동에서 친구의 고마운 카레덮밥을 먹으면서, 이승환의 노래 [가족]의 멜로디를 떠올렸다.
<사진 1> 이승환 5집 [CYCLE]의 표지.
1997년에 1월에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승환의 [가족]은, 549명의 팬들이 함께 노래의 후렴을 합창했다. 앨범의 속표지에는, 함께 노래를 부른 팬들의 사진과, 549명의 이름이 모두 표기되어 있다. 가족의 사랑을 노래한 따뜻한 감성의 이 노래는, 그해 11월에 한국이 IMF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더욱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고려대 88학번 이소룡’은, 중국 주먹계 보스에게서 특식(?)을 제공받는데...
얘기가 좀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식구 하니까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이 친구는 필자와 함께, 몸무게는 적게 나가고, 체형은 날렵하면서도 근육질의 체형이라서, ‘고려대학교 이소룡’이라고 불렸었다. 친구는 나를 유난히 좋아해서 나를 보면 늘 한 식구 같다고 했었다.
‘고려대 이소룡’은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H건설에 입사를 했는데, 일 잘한다고 이름을 날린 덕분에 우수사원으로 뽑혀서, 중국 건설 현장에 연수를 갈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국 현장에서 주먹으로 크게 세력을 키우고, 돈도 많았던 조선족 건설업자 따거(형님)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 따거는 친구와 배포가 잘 맞아서 친하게 지냈는데,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우리 사이는 형, 동생 같은 식구니까, 남자에게 아주 좋다는 ‘특식’을 주겠다 ‘면서, 중국에서도 주먹 세계 보스들도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는 한 사발의 액기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비밀이라고 한다)을 대접했다고 한다.
필자의 친구 ’ 이소룡‘은 중국에서 ’ 귀한 특식‘을 대접받고, 한국에 돌아온 후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필자와 안암동의 모 막걸리 집에서 회동을 가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고려대 이소룡은 온 데 간데없고, ’ 고려대 홍금보‘가 앉아 있었다. 이소룡을 1년 만에 홍금보로 변신시키다니, 그 액기스는 정말 소문대로 ’ 용한 특식‘이었다.
친구에게 자세한 사연을 들어보니, 그 특식을 먹은 후, 매일 밤바다 몸에서 ’드래곤의 화염‘ 같은 열불이 나서,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지냈고, 식욕이 화산 폭발하듯 용솟음쳐서, 매일 6 끼니를 꼬박 챙겨 먹었다고 한다. 녀석은 대학시절에 필자와 몸무게가 같은, 앞자리가 ’ 5‘였는데, 지금은 단위가 3자리로 바뀌고 말았다.
중국에서 보스 따거가 특식을 접대했을 때, 녀석이 자기 몸만 챙기지 않고, 식구처럼 여기던 필자를 생각해서, 특식의 반은 남겨왔더라면, 지금쯤 우리 둘의 몸무게는 공평하지 않았을까?
친구는 그 일이 있은 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세 자릿수 몸무게를 두 자릿수로 만들기 위해서, 새벽마다 고난의 행군 중이다. 이러니 식구들은 뭐든 함께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가족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한파가 시작된 겨울에는, 이승환이 부른 [가족]의 따뜻한 멜로디도 함께 감상하면서.
<사진 2> 무도인이자 영화배우였던 이소룡.
필자의 절친, 고려대 경영대학 88학번 이소룡아~, 너의 몸매가 홍금보에서 다시 이소룡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늘도 새벽 운동 빼먹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