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송년회

<음악이 흐르는 풍경> –한 잔, 또 한 잔을 마셔도~-

by 이안

... 200년 된 더덕주... 과연?...

평창동 월세집으로 이사를 온 필자를 위해서, 대학 친구가 얼마 전에 담근 술을 보내왔다. 친구 말로는 200년 된 더덕으로 담근 더덕주라서, 글 쓸 때 한잔씩 마시면, 글이 술술 풀려서 대작가로 성공할 거라고 한다.


친구 말을 믿고 뚜껑을 열어서 향을 맡아보니, 과연 200년 된 더덕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얼마 전 당근 마켓에서 구입한, ‘행남사’(행남 자기의 전신)의 1970년대 도자기 주전자에 더덕주를 따랐다. 더덕의 향기가 방안 가득 퍼져가면서 침이 고였다.


앙증맞게 작고 고급스러운 사기(沙器) 잔에 쫄쫄 따라서 한 잔 들이켜니, 목구멍을 타고 넘어, 위장에서부터 슬슬 퍼져가는 술기운이 기분을 좋게 했다. ‘과연 200년 된 더덕주가 맞는구나! 이제 필자가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서서, 평창동 작은 월세집에서, 고급 전셋집으로 옮겨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로다~’


쾌재를 부르며 흥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문단도 쓰지 않아서 다시, 200년 된 더덕주 생각이 모락모락, 한 겨울 막 구워낸 군고구마의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안에 요즘 유행하는, ‘안주야’ 따위의 밤참으로 먹기 좋은 양념곱창도 있었다.


몸에 좋은 더덕주라니까, 몇 잔 더 마시면 머리도 맑아지면서, 더욱 좋은 글이 써지겠지! 아예 주전자 가득, 친구의 고마운 정성과 더덕주를 따라서 마셨다. 역시 친구의 애정과, 200년 된 더덕의 효능으로 버무린 담근 주를, 추운 겨울밤에 마시는 기분이란,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감을 주는구나!

감탄을 하며, 또 한잔, 또 한잔, 마시다 보니,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는대도, 헤밍웨이 같은 대문호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겨우 술 주전자를 반 밖에 비우지 않았는데, 벌써 헤밍웨이가 되었으니, 주전자를 마저 다 비우면 헤밍웨이에 이어, 대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되었다가, 술김에 흥얼대는 노랫가락에 천재 시인 이백, 그리고 젊은 천재 이상, 백석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백.png

<사진 1.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불리는 이백의 초상>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으로 시선(詩仙)으로도 불리는 이백은, 술의 시인이기도 했다. 시성(詩聖) 두보가 여러 번 고치고 지우며 시를 쓰는, 퇴고(推敲) 시인이었던 것과 달리, 이백은 즉흥적으로 입에서 뱉어내면 시가 되었다. 술과 달을 사랑한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술과 함께 뛰어넘으려고 했다.

... 술의 기원은 와인? 맥주?-


행복한 상상이다. 술이 줄 수 있는 큰 기쁨이자, 게으른 자의 망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류는 이미 그리스 시대에도, 일상이 고되고 힘들 때에, 혹은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더욱 흥을 내기 위해서 포도주를 마셨다.


인류가 언제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는지에 관한, 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포도주가 먼저다, 맥주가 더 앞선다 등의 논쟁이 있지만, 고대 기록과 발굴된 유적으로 보면, 맥주가 좀 더 앞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포도라는 과실 자체가, 당과 효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자연발효를 통해서도 와인이 되기 때문에, 언제 누가 처음 만들어 먹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나 코끼리가, 물이 괸 웅덩이나 나무 구멍 등에 나무 열매가 떨어져, 자연 발효되어 생긴 과실주를 마시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지구 상에 인류가 처음 나타난 것이 약 200만 년 전이고, 포도는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전인 약 700만 년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자연 발효주(인간이 인위적으로 담근 게 아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앞선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 [한국 뉴스]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다루고자 하는 음악은, 술과 관련된 노래이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니까, 술과 관련된 가요가 많을 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1997년 서태지의 [시대유감]에 의해서, 공윤(공연윤리위원회)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해도, 가사에 노골적으로 술을 마신다거나, 술에 대해서 언급하면, 지체 높으신 위원님들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윤 체제가 무너지고 나서, 음반 심의는 방송국 자체심의로 넘어왔지만, 히트곡들을 많이 트는 밤 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은, 청소년 보호 시간대이기 때문에, 라디오 PD들이 술 노래를 트는 데 주저했던 것도 한 몫했을 거다.

... 가장 애청하는 술 노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오랜 기간 애청자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끊임없이 불려 온 술 노래들이 있었으니, 바로 바이브의 [술이야], 임창정의 [소주 한잔], 지아의 [술 한잔 해요], 드렁큰 타이거의 [주정], 에픽하이의 [술이 달다] 등의 노래들이다.


위에 언급된 술과 관련된 노래들은 라디오도에서 많이 나오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곡이지만, 필자가 MBC 라디오에서 25년 동안 음악 PD로 일하면서, 빠지지 않고 틀었던 술 노래는 따로 있었다.

제2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곡 이기도 했던, ‘한 잔 또 한잔을 마셔도 /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로 시작하는, <사랑의 하모니>의 [별이여 사랑이여]다. 필자도 1969년 생으로, 이미 쉰이 넘은 나이이다 보니, [별이여 사랑이여]처럼, 구슬픈 70년~80년대 정서가 흐르는 곡을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특히 이 노래와 관련해서는 추억이 하나 있는데, 대학에 입학했던 1988년 봄, 신입생 환영회에서 인상이 가장 험악하게 생겼던 동기 녀석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로 근사하게 이 노래들 불렀었다. 그런데 녀석은 원곡의 가사인, ‘ 한잔 또 한잔을 마셔도...’라고 부르지 않고, ‘ 한말 또 한 말을 마셔도...’ 라며, 본인이 주당임을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술에는 장사 없다고,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 동기 모임을 하면, 녀석이 술에 가장 약한 사람이 되어, 일찍 귀가를 하거나 먼저 쓰러져 잠이 드는 걸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혈기왕성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제2회강변가요제.png

<사진 2. 제2회 MBC-FM 강변가요제 앨범>


1981년에 열였던 제2회 강변가요제 앨범에는, 대상인 [별이여 사랑이여] 외에도, 주현미가 대학시절 락보컬로 참여했던 진생 라딕스(인삼 뿌리)의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도 실려있다.

... 2020년 연말, 코로나 시대의 송년회 보내기...


술 얘기를 길게 했지만,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진탕만탕 마셔 대는 연말이라든지, 송년회라든지 하는 말은 쏙 들어갔고, 삼삼오오 모이는 소모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방역을 위해서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연말에 송년회 모임을 대목으로 한해를 버틸 장사를 했던, 자영업자들의 그 많던 술집과 식당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코로나를 무사히 이겨낼 때까지는, 집에서 담근 술에 조용히 방에 앉아, 사랑의 하모니의 [별이여 사랑이여] 같은 술에 관한 명곡을 감상하면서 연말을 조용히 보내는 수밖에!

* 알아두면 잘난 척할 수 있는 인문 지식 몇 가지 : 기원전 7,000년 무렵의 조지아 – 아르메니아 - 터키 동북부 지방에서 출토된 포도씨앗과 타르타르산(Tartaric Acid: 포도주에 함유된 산(酸))를 보고, 최초로 포도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한다. 약 4,000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 뚜껑이 조지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기원전 약 3,5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 용기 안에, 와인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중국에서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포도주의 제조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난성에 위치한 유적지에서, 초기 신석기시대인 약 9천 년 전, 최초로 포도를 사용해서 술을 빚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한편, 유럽은 지반에 석회가 포함된 지역이 많아서, 물에 석회가 섞여 뿌옇게 되니까, 물 대신 맥주를 만들어서 많이 마시게 됐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라는 게,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물이 가장 중요한 원료이기 때문에, 석회가 섞인 물로는 맥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세 사람들이 맥주를 식사와 함께 항상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물 대신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맛을 위해서나, 식사의 일부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 사족 : 필자의 대학 동기가 준 더덕주는, 당연히 200년 산 더덕으로 담그지 않았다. 술 애호가들의 ‘뻥’은, 보통 10배~100배를 넘기는 게 보통이니까, 200년의 1/10인 20년 산? 아니면... 2년 산? 아무려면 어떠랴, 2년 산이던 20년 산이던, 맛은 끝내주게 좋으니까!

더덕주.jpg

<사진 3. 더덕주와 행남사의 1970년대 술주전자 >


필자의 동기가 직접 담가준 200년? 20년? 혹은 2년 된 더덕주. 아무튼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더욱 맛이 있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학생 자취집에 흐르던, “그날이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