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와 골목길, 그리고 서태지

음악이 흐르는 풍경 – 소격동 (2)-

by 이안

전봇대에 대한 기억이 있다. 1970대 중반, 필자가 어릴 적에 살던 쌍문동 동네 골목에(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되었던 곳) 처음으로 전봇대라는 게 세워졌는데, 그때는 모든 전봇대가 나무 전봇대였다. 당시에 서울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평창동 같은 동네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방에서 없이 살다 올라온 주민들이 많았던 우리 동네 골목에는, 그때가 돼서야 전화선이 들어왔다. 나무 전봇대는 전화선의 전신주 역할을 했던 거다.


몇 명의 아저씨들이 며칠에 걸쳐, 기다랗고 곧게 뻗은 나무를 땅에 박고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는데, 다 세워진 나무 전봇대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때는 그 냄새가 무엇인지 몰랐고 어린 나이에 그저 신문물의 냄새이거니 했는데, 커서야 그게 콜타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콜타르는 석탄에서 뽑아내는데, 나무의 부식 작용을 막는다. 비바람과 눈을 맞으면서도, 사계절 온종일 가로등과 함께 서있어야 하는 나무 전봇대가, 쉽게 썩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발랐던 거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나무 전봇대가 생기자 술래잡기를 할 때면, 술래가 눈을 가리고 하나부터 스물까지 세는 장소로 꼭 나무 전봇대를 정했다. 가위 바위 보로 술래가 된 아이들은 나무 전봇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그럴 때면 진한 콜타르 냄새가 콧속은 물론이고 입안으로도 밀려 들어왔다. 술래잡기가 끝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서도,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온 그 콜타르 냄새는, 머릿속에까지 들어가는 건지 떠나지 않고 빙빙 맴돌았다.


나도 여러 번 술래잡기의 술래가 되어 전봇대에 코를 처박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뭔가 세련된 부자 동네의 냄새 같기도 했고, 신식 문물의 냄새니까, 뭔가 멋진 거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다.


내가 어린 시절 열차 부대(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며 군수품이나 환자를 수송하는 육군 열차)에서 일하셨던 아버지 덕에, 기차를 타거나 기찻길을 걷곤 했던 기억이 많은데, 기찻길에서도, 나무 전봇대에서 맡았던 바로 그 콜타르 냄새가 났다. 기찻길에 가로로 놓여있는 버팀목이나 철로에도 콜타르를 바른 것이다. 콜타르는 나무는 물론 철재의 부식방지에도 쓰임이 있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기차역에서 콜타르를 냄새를 맡게 되면, 어린 시절의 쌍문동 골목과, 유년기의 친구들 그리고 그 시절에 소중하게 품고 다니던 꿈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머리와 마음에 한번 새겨진 기억은 이토록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나무전봇대2.png

<사진 1. 나무 전봇대>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는 아래의 지역에서 괄호 속 연도에 나무 전봇대를 목격했다고 한다.

▲나주시 영산포(2008) ▲부산시 대연동(2011) ▲사천시 구 삼천포(2008) ▲삼척시 도계읍(2009) ▲서울시 노량진동(2008) 녹번동(2009) 본동(2010) 삼선동(2010) 석관동(2008) 성북동(2010) 숭인동(2007) 옥인동(2009) 월계동(2008) 이문동(2008) 이화동(2008) 익선동(2008) 인현동(2009) 전농동(2009) 정릉동(2009) 충신동(2008) 평창동(2008) 필동(2007) 한강로동(2009) 홍은동(2009) 홍제동(2009) 효창동(2008) 흑석동(2010) ▲수원시 수원화성 내(2010) ▲제주도 제주시(2008) ▲창녕군 창녕읍(2012) ▲창원시 구마산(2008) ▲밀양시 삼랑진(2012) ▲충청남도 공주시(2009) ▲파주시 문산읍(2010)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소격동에 들렀다. 필자에게 쌍문동에서의 추억이, 어른이 되어서도 내 개성과 감수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서태지에게는,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문화 대통령’ 서태지를 만든 감성의 원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2014년 가을에 서태지가 5년 만에 컴백하면서, 아이유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소격동]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격동’이라는 동네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소격동은 북쪽으로 삼청동과 가회동, 서쪽으로 경복궁, 동쪽으로 화동과 재동, 그리고 남쪽으로 안국동을 면하고 있는 작은 동네다. 지금은 주소체계 개편으로 삼청로 2길과, 북촌로 5길 등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그래도 이곳 토박이 주민분들은 소격동이라는 이름을 더 사랑한다.


소격동은 작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라리오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그리고 바라캇 서울(예루살렘에 많은 땅을 보유하고 있었던, 바라캇 가문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울에 문을 연 고대 유물 전문 미술관. 150년의 역사 동안, 4만여 점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비잔틴, 이집트, 이슬람, 아프리카 등의 유물을 수집했다.)등, 다수의 미술관이 들어서 있어서, 서울의 여느 동네보다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동네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9집 앨범에서 [소격동]을 발표하면서, 자신은 어린 시절 소격동에서 자랐다고 밝혔었다.

“소격동은 제가 자라온 정말 예쁜 한옥 마을로, 나의 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아름답게 그린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통해 여러분들의 마음도, 여러분들의 옛 마을에 잠시 머물다 올 수 있다면 좋겠네요”

쌍문동 동네의 골목길과 나무 전봇대 그리고 콜타르 냄새가 연상 작용처럼 필자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주는 것처럼, 창작의 고통으로 오랜 세월 미국에서 은둔 생활을 했고, 나이 마흔이 넘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서태지는, 재동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뛰어놀던 소격동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해서, [소격동]이라는 명곡을 발표했던 거다.


등 밑 처마 고드름과 /

참새 소리 예쁜 / 이 마을에 살 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

지금도 그대로 있죠 / - [소격동] 가사 중 -

필자가 소격동에 들른 날에도, 주차된 차량마다 눈이 녹아 생긴 고드름이 달려 있었고, 휘어지는 골목길 사이에 연이어 붙어있는 한옥의 기와지붕이 만드는 곡선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바로 옆 동네 종로구 계동에, ‘북촌 한옥마을’이 있기는 하지만, 소격동에도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나무 대문과 창호지로 만든 창, 그리고 낮은 담장의 한옥이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소격동.jpg

<사진 2. 2020년 12월의 소격동 > 눈부시게 파란 겨울 하늘 아래에 우뚝 고개를 쳐든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마치 철새의 날갯짓처럼 비상할 것만 같다.


서태지는 “이번 9집 앨범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 동화 같은 느낌의 음반입니다. ‘소격동’은 그중 한 편의 에피소드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다양한 사운드 실험으로, 곡의 퀄리티에 어느 때 보다도 더 공을 들인 명반 [서태지 9집]이, 서태지의 결혼 발표로 많은 팬들의 이탈이 있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서 필자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을 때도,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을 들을 때도, 김현철의 [동네]를 들을 때도, 그리고 서태지의 [소격동]을 들을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추억 속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무 전봇대 위 전선들이 모이는 곳, 골목길을 밝혀주는 백열등이 빛나던 밤하늘. 전봇대 바로 아래 백열등 불빛의 동그라미가 만들어지던 흙바닥, 환한 동그라미 주위를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의 어른 거리던 그림자.

여름에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 올 때도, 어지간해서는 꺼지지 않고 늘 켜져 있던 백열등의 갓 위로는, 여름밤의 빗방울들이 뛰어올랐고, 프라이팬 위의 기름처럼 널뛰던 빗방울들은, 조명을 받아 마치 눈(雪)이라도 내리는 듯 다시 땅으로 하얗게 반짝이며 떨어졌다. 비 오는 날과 달리, 눈이 내리는 겨울밤엔 나무 전봇대의 백열등도, 마치 천천히 내리는 눈처럼, 느릿느릿 잠에 취한 듯, 술에 취한 듯 천천히 불빛을 떨구고 있었다.


소격동2.jpg

<사진 3. 2020년 겨울, 아직도 소격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소격동의 전봇대> : 이명적 정권 시절 주소체계 개편으로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이름이 지워지고 있지만, 그 시절 동네에 관한 정겨운 노래를 듣게 되면, 골목의 아이들과, 가로등이 빛나던 듬직한 전봇대,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잊지 못해 골목에 기댄 채 울던,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 겨울, 전 세계인들이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다 보니, 창밖으로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바라보는 일도 많아졌다. 구독자분들이 사는 집 창밖에는 지금 무엇이 보일까? 서태지는 아마도 재동 초등학교를 다녔던, 소격동의 한옥집 골목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한 연배의 구독자들은 나무 전봇대 주위에서 놀던 골목의 아이들이었을 거다. 정겨운 추억 속 그 모든 친구들은, 코로나 19의 2020년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알아두면 자랑할 수 있는 지식 몇 가지 : 서태지는 결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대표적으로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이데아], 사전 심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시대유감],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 [발해를 꿈꾸며] 등이 그렇다.

서태지 9집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화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우회적이지만, [크리스 말로윈]을 통해서는,

밤새 고민한 새롭게 만든 정책 어때 /

겁도 주고 선물도 줄게 / 온정을 원한 세상에 /


라면서, 산타라는 이름의 사회 지배층과, 기득권층에 대한 우회적인 불신을 보인다. 또한,

난 불순한 스펙이래 / 리스트에서 제외

라며, 피지배층이 겪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한다.

또한 아름답고 서정정인 멜로디의 [소격동]에서도,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

그러던 어느 날 /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라면서, 제5공화국을 탄생시킨 신군부의 모반을 꼬집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자리에는, 과거 국군기무사가 있어서 대학생들의 사상을 전향시키겠다면서 소위 ‘녹화사업’이란 이름으로,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고, 이로 인해서 많은 대학생들이 고통을 겪다가, 자살을 하거나 이유를 모를 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서태지는 소격동의 뮤직비디오에서 교련복을 입은 학생과, 라디오에서 들리던 뉴스, 사이렌 소리, 시민을 진압하러 달려가던 공권력 등으로 당시의 폭압적인 사회를 묘사했다.


서태지9집.png

<사진 4> 서태지 9집 앨범 재킷 : 서태지가 9집을 발표하고,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서태지는 9집을 나중에 본인의 딸도 즐겨 들을 수 있는 음반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서태지 9집은, 마치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말로윈]을 비롯해서, [숲 속의 파이터], [Prison Break], [소격동] 등의 명곡들로 채워져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술과 송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