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역술가, 옛사랑

음악이 흐르는 풍경 –이문세 옛사랑-

by 이안

... 때아닌 필자와 동네 아주머님들과의 점집 논란...


요즘, 필자가 살고 있는 평창동 인근의 아주머니들과, 필자 간에 '점집 논란'이 한창이다. 나는 평창동 월세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세간살이를 장만하느라, '우리 동네 중고 거래 앱' [당근 마켓]에서,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작은 접시부터, 화분, TV 선반, 서랍장에 이어, 책상과 식탁까지, 그 외에도 숟가락, 국자, 냄비 등 거의 모든 살림살이를 [당근 마켓] 앱으로 구입했다.


필자의 주변에 사시는 이웃과,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거니까, 더 믿음이 가기도 했고, 또 소일거리 삼아, 하루에 한 번씩 동네 마실 나갔다가 오는 기분으로, 물건을 한 두 개씩 얻어오는(구매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도 했다.


필자는 제주도에서 홀아비로 8개월을 사는 동안, 500여 그루의 나무를 돌보고 키웠었다. 뚜렷한 직장도 없이 백수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식물을 돌보는 것만큼,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댕댕이나 냥이 등, 반려동물도 훌륭한 동료가 될 수 있지만, 필자는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만큼 책임감이 강하거나, 가슴속 사랑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평창동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3주 정도의 짧은 기간에 20곳 이상의 이웃집을 방문하면서, 40여 그루의 나무를 분양받았다. (물론 당근 앱에 적힌 가격대로 사는 건대, 시중 화원에서 사는 것보다, 50%~70% 정도의 싼 가격에 구매하기 때문에, 필자처럼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당근 마켓]이 아주 요긴하고 신통방통한 신문물이다.)


화분이나 기타 세간살이를, 이웃 아주머님 혹은, 나보다 연배가 훨씬 많으신 동네 할머님들과 거래를 할 때, 필자가 꼭 물어보는 게 하나 있었다. 그런 바로 점집(철학원, 무당, 도사님 등 불리는 이름이 다양하다!)에 대해서 묻는 거였다.


이 PD : 저... 그런데, [당근 사랑]님(앱에서 쓰는 ID)~, 여기 근처에 용한 점집 없나요?

당근사랑님 : 점집은 뭐하게? 젊은 사람이 그런데 가면 못써!

이 PD : 아니,, 제가 동안에다가, 송중기 뺨치는 훈남이란 건 저도 아는데요, 제가 마스크를 써서 주름이 안보이니까 그렇게 고마운 말씀해주시는 거고요, 제 나이가 벌써, 하늘의 뜻을 알아들을 만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어요.

당근사랑님 : 참나~, 하늘의 뜻을 안다면서 점을 왜 본다는 거야?

이 PD : 그러니까요.. 제가 왜 그럴까요...


점성촌.png

<사진 1. 미아리 점성촌 > 서울 돈암동 큰길에서 미아리고개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다. 한국전쟁 전 종로 3가에 집단 거주하던 점술가들이 전쟁과 함께 남산 근처로 생활터를 옮겼고, 남산 주변 정비로 흩어졌다가, 1960년대 말부터 다시 이곳에 정착했다. 역술인 이도병 씨가 1966년부터 거주한 것이 시초이고, 호황기였던 1980년대에는 약 100여 곳의 점집이 있었다. 이곳의 점술가는 모두 시각장애인인데, 역학에 근거한 점을 본다는 특징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성북구가 이곳을 전통의 거리로 개발하려 하였으나, 기독교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 가면 돈만 뜯긴다. 그러다가 굿판까지 하게 된다~...


서울 돈암동 큰길에서 미아리고개로 넘어가는 길가에 있다. 한국전쟁 전 종로 3가에 집단 거주하던 점술가들이 전쟁과 함께 남산 근처로 생활터를 옮겼고, 남산 주변 정비로 흩어졌다가, 1960년대 말부터 다시 이곳에 정착했다. 역술인 이도병 씨가 1966년부터 거주한 것이 시초이고, 호황기였던 1980년대에는 약 100여 곳의 점집이 있었다. 이곳의 점술가는 모두 시각장애인인데, 역학에 근거한 점을 본다는 특징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성북구가 이곳을 전통의 거리로 개발하려 하였으나, 기독교계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필자는 올 한 해 동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야무지게 폭망 한' 한 해를 살았다. 올봄까지만 해도, 나름 잘 나가는 MBC 라디오 PD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는 일에 깊은 회의가 들었고, 그래서 잠시 휴직을 했다가, 그게 명퇴로 이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명퇴를 결심하고는 아내와도 불화가 깊어지면서, 결혼생활 20년 만에 이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과도 멀어지게 되어, 통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니, 쓸쓸하고 외롭고, 처량한 홀아비로 살면서, 마치 '마스아티에라 섬'에 남겨진, 고독한 로빈슨 크로소의 신세가 된 거 같았다.


'평생을 이렇게 혼자 살아야 하는 건까?'
'더구나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태어나서 크리스마스를 가족이 없이, 혼자 맞는 건 처음인데, 앞으로도 평생을 이렇게, 혼자만의 크리스마스, 혼자만의 새해, 혼자만의 휴가, 혼자만의 낮과 밤을 보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자, 외로움이 극에 달해서, 10월 초 어느 날 아침, 가을이 '훅' 들어와서, 가슴을 스산하게 했던 것처럼, 바삭거리는 낙엽 같은 마음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미아리 근처 어딘가에 흑진주 철학원’이란 게 있다던데, 점을 봐주시는 도사분이 흑진주처럼 미인이실까? 아니면 흑진주를 굴려서 점괘를 볼까?'
'또 그 옆집에는 용한 족집게 도사님의 점집도 있다던데, 정말 나의 꼬일 대로 꼬인 모진 운명의 장난에 대한, 해결 열쇠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근 한 달째 떠나지 않고 있다.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점집을 가본 적이 없는 필자이지만, '한번 가서 운명을 미리 훔쳐볼까~~' 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런데 [당근 마켓] 거래를 통해서 만나게 된,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님은 물론이고, 대학 친구들까지 모두 30여 명에게 물어봤지만, 80% 정도가 극구 만류를 하는 거였다. 이유는 대체로 비슷했다.


가면 돈만 뜯긴다. 너 그러다가 굿판까지 벌이게 돼! 그게 얼만지 알아? 기백만원이 든다고.

나도 사업 힘들 때, 점집을 매일 다녔어. 굿까지 하고. 하지만 다 쓸데없더라고, 결국엔 그 도사들도 해답을 줄 수 없고, 또 대부분이 잘 모르더라고~

형제님,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다 해결됩니다. 점집 가면 지옥 가요~ 절대 가면 안됩니다.. 아셨죠?

반면, 나머지 20% 정도는 이런 얘길 해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점집이, 한이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우리의 어머님, 할머님들의 심리 치료사 같은 역할을 해온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분들에게는 점집 외에는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마음이 답답하면 한번 가봐.

점집에 가면 다 똑같은 얘길 해, 처음에 가면 “음 꽉 막혔네. 지금까지 운명이 꽉 막혀 살았어!’, ‘이 부적해봐 내년부터 좋아져~~’, 다시 말해서, 지금 너의 힘든 상황에 대해 공감을 해주면서 위로를 해주고, 내년에는 좋아진다는 희망을 주는 거지. 5만 원 복채 쓰고, 희망을 갖게 되면, 수지맞는 장사 아니야?


무릎팍도사.png

<사진 2. 무르팍 도사 > MBC 예능 〈황금어장 무르팍 도사〉. 2007년 1월 31일부터 2011년 10월 12일까지 방송했고, 강호동이 복귀한 2012년 11월 29일에 다시 시작해서, 2013년 8월 22일 김자옥 편을 마지막으로 종영. 보조 MC로 깐죽이 유세윤, 올라이즈밴드 유승민 등이 함께 했다. 초대된 스타들의 어두운 면을, 거칠게 물어보는 소위 <거친 예능>의 시초였다.


... 사랑의 운명을 시적을 승화시킨 명곡, 이문세의 [옛사랑]...


서두가 너무 길어졌는데, 오늘 한국 뉴스의 특집기획, <음악이 흐르는 풍경>의 주제는 ‘운명’이다. 철학원에 계시는 분들이, MBC 예능의 무르팍 도사도 아니고, 무릎이 닿기도 전에 어떻게 손님의 운명을 알 수 있겠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맞는 말이다. MBC에서 PD로 있을 때, 오랜 세월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선배는, ‘같은 사람의 사주로, 용하다는 점집 열 곳을 다녀봤지만, 딱 두 집 빼고는, 결과가 다 달랐다’면서, 점집은 사기라고도 말했다.


정말 그럴까? 그래도 우리 한국사람들은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심심풀이로라도 토정비결을 보면서, 한해의 운을 점쳐본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주역을 통해서, 하늘이 정해놓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미리 알고 이에 대비하려는 관습은, 3,000년의 세월을 넘어 이어져내려오고 있기도 하다.


주역이란 책이, 기원전 1000년 전에 실재했던, 중국 주나라에서 시작되었으니, 주역은 성경 보다도 오래된 책이기도 하다. 주역이 터무니없다면 3,00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의 풍화를 이겨낼 수 없지 않았을까?


물론, 원래 신만이 알고 있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인간의 운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노래로 장엄하고 진중하면서, 심각한 클래식을 떠 올리는 분들도 있을 거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같은. 하지만 필자에게 운명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오직 이문세의 [옛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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