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젤리클 고양이는...?

-힘겨운 2020년을 보낸 우리 모두에게-

by 이안

고양이 중에 ‘젤리클 고양이’라는 게 있다.

이 고양이는 인간에게 사육된 고양이가 아닌, 역경에 굴하지 않고 강인한 행동력을 가진 고양이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에 동네의 모든 고양이들이 모인 무도회에서, 젤리클 고양이로 선발되면 행복만이 가득한 새 삶을 얻게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젤리클 고양이는 물론 실존하는 고양이의 품종은 아니다. 전 세계 4대 뮤지컬 중의 하나인 <캣츠(Cats)>의 내용에 나오는 가상의 고양이다. 다른 4대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이,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구성을 갖고 있는 반면, <캣츠(Cats)>의 서사적인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

캣츠의 원작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고양이들 저마다의 이야기로 묶인 T.S 엘리엇의 우화시(寓話詩)를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캣츠의 프리뷰 기간까지도, 공연 관계자들은 <캣츠>를 최악의 뮤지컬이 될 거라고 예측했었다.


“재앙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본 최악의 공연일 것이다.”, 게다가 “<Cats> is dog”라는 조소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한 번도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을 올리지 못했던, [뉴런던 시어터] 극장에서 초연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연을 이어갈수록 관객들은 환호했고, 이후 웨스트엔드에서 22년간 8,950회 공연을 하면서 뮤지컬 역사에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된다. <캣츠>의 내용처럼, 뮤지컬 <캣츠>는 뮤지컬 계의 ‘젤리클 고양이’가 되어, 초연 40 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전세게 역대 뮤지컬 흥행 4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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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캣츠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가을부터 잠실 샤롯데를 시작으로, 지금은 대구 공연까지 오리지널 배우들의 [40주년 특별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캣츠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최초의 뮤지컬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뉴스>의 특별기획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뮤지컬 캣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 뮤지컬 속에 흐르는, 뮤지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Memory>에 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다.


화려한 무대와, 인간이 고양이 연기를 하는 건지, 진짜 고양이들이 인간 흉내를 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양의 동작을 면밀히 연구해서 만든 안무와, 오랜 세월 피나는 연습을 한 배우들이 꾸미는 뮤지컬 Cats에는, ‘그리자벨라’라는 고양이가 나온다. 과거에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고양이였지만, 이젠 노쇠하고 병들어 왕따 고양이가 된 늙은 고양이이다.

그리자벨라는 뮤지컬 캣츠의 1막 마지막 무대에서, 바로 그 유명한 <Memory>라는 노래를 부른다. ‘비록 자신의 삶이 지금은 초라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Memory)처럼,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야’라는 가사의 노래이다.


Memory,

All alone in the moonlight,

I can dream of the old days.

Life was beautiful then.

I remember the time

I knew what happiness was.

Let the memory live again.


쓸쓸한 달빛에 젖어

더욱 외로워지지만,

나는 지나간 추억을 꿈꾸지.

그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어.

행복했던 그 시절이

추억 속에 아른거리네.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리워.

Daylight,

I must wait for the sunrise,

I must think of a new life

and I musn’t give in.

When the dawn comes,

tonight will be a memory too

and a new day will begin.


아침이 오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거야.

난 포기할 수 없어.

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지나간 밤은 추억으로 남겨지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겠지.


필자의 어린 시절엔, 국내에서 ‘귀한 뮤지컬’ 공연 같은 걸 쉽게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캣츠의 주제가 [Memory] 같은 노래는 라디오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 인기가 높았던 [김세원의 영화음악]이나, 오전 9시에 FM 라디오에서 고급스러운 음악을 틀어주던 [음악살롱] 같은 프로그램에서 [Memory]를 틀어 줬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뮤지컬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멋있을까?’라고, 상상만 하던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다소 비싼 뮤지컬 티켓 비용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캣츠> 같은 세계의 초고의 뮤지컬 공연도 손쉽게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어림도 없었다. 라디오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 걸 제외하면, 뮤지컬은 물론이고 해외 가수들이 공연도, 심지어 영화도 국내 상영 불가가 많다 보니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즐기기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얼마 전 대학 친구가 필자에게, ‘연말이니까 음악 칼럼을 기고하는 네게 좋은 선물을 보낸다’면서 [Memory]의 음원을 보내줬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뮤지컬 <캣츠> 속 고양이 그리자벨라처럼, 필자도 지난 시절 특히 2020년 올 해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올 3월에 서울 MBC 라디오 PD직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혼자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개월 동안 내내, 내 운명과 주위 사람들을 원망했고 또 신세한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했었다. 나의 잘 나갔던 방송국 PD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올해부터 갑자기 이렇게 혼자 살게 된 건, 다 주위의 사악한 ‘범죄의 나폴레옹, 숨겨진 발톱, 맥캐버티 Macavity(캣츠 속에서 젤리클 무도회에 갑자기 난입하는 악당 고양이) 때문이야’ 라면서 주위 사람들을 미워했었다.

하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대학 친구가 보내준 [Memory]를 듣다 보니, 학창 시절 라디오를 들으면서 방송국 PD가 되겠다는 꿈을 꾸던 소중한 시절도 떠올랐고 올 한 해도 슬프고 괴로운 일보다는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대호 PD가 제주살이를 시작한다니까, 술 먹은 다음날에도 꼭 밥을 챙겨 먹으라면서 재첩국을 10만 원어치나 보내준 용식이가 고마웠고, 무덥던 제주의 삼복더위에 아내와 함께 나를 찾아와 삼계탕을 끓여진 종석이가 고마웠고, 제주에서 글을 쓰면서 살았던 나의 브런치 구독자를 하룻만에 30명이나 늘려준 승덕이도 고마웠다.

혼자 사는 내가 외롭지 않도록 늘 내의 안부를 물어주고, 멀리 제주와 순천까지 나를 찾아와 준 창우가 고마웠고, 순천에서 내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현이, 용기를 내라면서 늘 형 같은 미소로 나를 격려해줬던 진성이,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지만 늘 성실히 살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종광이, 그리고 턱관절이 아파 음식물을 씹지 못하는 내게 급히 현미 누룽지를 보내주었던 세한 용규, 그리고 늘 필자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초등학교 시절 성당 친구들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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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제주도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생각해보면 감사해야 할 대상이 더 있다. 제주의 바람과 바다 하늘빛 나무, 그리고 순천의 조계산과 선암사... 올 한 해를 필자와 함께 보내줬던 눈부시도록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에게도 감사하다.


회사를 명퇴를 했지만, 나를 잊지 않고 여러 번 제주까지 내려오셔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셨던 회사 선배님들과, 동료 그리고 후배들도 있었다. 제주도 표선면에 살 때는 늘 필자의 건강을 염려해주셨던, ‘표선면의 송혜교, 미녀 약사님’이 계셨고, 필자와 늘 유쾌한 농담을 나눠주셨던 국수마당 이모님, 5일장의 화원 이모님, 양파 이모님, 그리고 국수 앤의 사장님과 종업원 분들께도 많은 신세를 졌다.

제주도에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워 로워 할 때, 나와 같이 자주 놀아주었던 소중한 친구, 표선면 초등학교 6학년 초원이와, 초원이의 6살 동생 바다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초원이네는 4남매인데 큰형부터 이름이 하늘, 초원, 바다, 노을이다). 마지막으로 안녕이란 인사를 미처 하지 못하고 떠나온 순천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필자에게 큰 깨우침을 주신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돌아보면 회사에서 명퇴를 하고 돌싱이 되어 혼자살이를 시작한 첫 해에, 내가 더 무너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용기를 내라며 나를 이끌어준 감사한 분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첫 고양이 [키키]까지. 감사한 일과 고마운 분들이 많았기에 2020년을 버텨내고 건너올 수 있었다. 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뮤지컬 캣츠의 주제가 [메모리]가, 늘 신세 한탄만 하던 필자의 2020년을, 감사하고 고맙고 뜻깊은 한 해로 만들어 준 것이다.


새해에는 <한국뉴스>를 애독하는 구독자, 필자의 SNS 친구분들과, 브런치 구독자 분들, 그리고 나의 고마운 이웃들 모두, 젤리클 고양이처럼 행복만 가득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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