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도 여행의 추억-
며칠 전 나무를 사러 제주도 남원읍 위미리에 가는 길에, 나의 20대 시절 가장 소중했던 경험 중의 하나인 인도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봤다. 내가 모는 차 앞에 화물차인 ‘현대 포터 2’가 달리고 있었는데, 그 차 화물칸 안에 흑염소 두 마리가 타고 있었다.
그런데 화물차의 뒤쪽에 달린 개폐문 때문에 염소가 앉아 있을 때는 보이지 않고, 차가 멈추거나 다시 달리기 시장하면 염소가 일어나서 고개를 뒤로 하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염소 눈망울이 귀여워서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멈추면, 나도 녀석과 한참 동안 눈싸움을 했는데 내가 매번 졌다. 나도 눈싸움하면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는 실력인데, 흑염소는 ‘눈싸움 세계 챔피언’이었다.
더 재미있는 건, 신호등에 설 때마다, 녀석이 나와 눈싸움을 하고 ‘또! 승리’를 하고 나면, '대한민국에서 한창 지가(紙價)를 올리고 있는 피터팬 대작가님’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면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나는 승부욕에 불타올라 녀석을 더 매섭게 노려보겠다 작심하고 쳐다보면, 이내 차는 주행모드로 바뀌고 그럴 때면 녀석이 화물칸의 개폐문 아래로 고개를 숙여버려서 보이지가 않았다.
‘나쁜 녀석, 따고 배짱이냐?’
아무튼 4~5판의 눈싸움은 녀석의 100% 완승으로 끝났는데, 위미리로 가는 갈림길에서 녀석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자, 나의 20대 끝자락에 떠났던 ‘인도 여행‘의 힘들지만 소중했던 추억들이 스멀스멀 생각나기 시작했다.
<인도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 죽은 왕비를 위해서 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다 >
인도에는 1998년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있었다. 수도인 델리를 제외하면 북인도의 히말라야와 불교 성지 그리고 산골 오지를 주로 다녔기 때문에, ’ 연식이 50년은 넘을 듯한 인도의 악명 높은 버스‘를 탈 기회가 많았다.
인도의 시골을 달리는 버스는 타보면 마치, ’ 사람들은 짐짝‘이고 ’ 자기는 승객‘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위풍당당한 모습의 ’ 염소와 닭‘이 함께 타는 경우가 참 많다. 방송국에서 라디오 PD로 일할 때 친하게 지내던, 뮤지션 정지찬 씨(남성 2인조 원 모어 찬스의 리더/MBC 예능 ’ 나는 가수다 ‘ 음악감독/ 이승환의 ’ 물어본다 ‘등 다수 작곡)가, 인도 여행의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낸 노래 ’ 럭셔리 버스‘의 가사에도 나오지만 그야말로,
“사람 염소 닭이 / 같이 타는 / 낡아빠진 시골버스” (럭셔리 버스/원 모어 찬스)이다.
한 번은 선량하게 생기신 인도 할아버지가, 염소 다섯 마리와 함께 타셨는데, 유달리 하얗고 눈망울이 예쁘게 생겼던, 아기 염소를 마치 ’ 사람 아기‘처럼 품에 꼭 안고 계셨다. 굽이굽이 산마을을 돌아, 깎아지른 듯한 위태위태한 낭떠러지도 아랑곳 않고, 카레이서처럼 과속으로 모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어떻게 아기 염소를 가슴에 품고, 그것도 서서 계셨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당시는 겨울이라지만 남인도의 겨울은, 영상 40도를 넘을 정도로 더운 날도 많은데, 겨울의 손난로처럼 따뜻한 아기 염소가 혹시라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힘들기라도 할까 봐, 할아버지는 품속의 아기 염소를, 어미새처럼 마음으로 품고 계셨다.
’ 생명을 키우는 일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아기 염소는 커가면서 우유를 내어줄 것이고,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오랜 세월 그 우유로 인도 사람들의 ’ 국민 차(茶)‘인 ’ 짜이‘를 만들었을 것이며, 또 우유를 발효시켜 인도식 요구르트인 ’라씨‘와 버터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아기 염소는 손녀딸의 결혼식에 제물로 바쳐질 터인데, 아기 염소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이미 다 알고 ‘ 있는 할아버지는, 아기 염소에게 미안했던 건지, 할아버지 본인의 몸보다도 더 소중하게 가슴으로 꼭 계셨다. 할아버지 주변의 남은 4마리의 ’ 사춘기 염소‘들도, 엄마의 손을 잡고 장터에 나온 다섯 살 배기 꼬맹이들처럼, 할아버지한테만 의지하고 있었다.
<인도의 가난한 산골마을 사람들에게는 생계의 중요한 수단인 염소 >
이런 비슷한 경험은 중국 실크로드 여행 중에 만났던, 소설가 김영철 선생에게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선생은 인도 여행 중에 탔던 버스가 만원이라서, 버스 지붕 위에 탔타고 한다. (인도에서는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맥을 오르는 위태로운 버스의 지붕 위에도 사람을 태운다. 그래서 마치 2층 침대의 난간처럼, 버스 지붕 위에 높이 20CM 정도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버스 지붕으로 뚫린 환풍용 구멍 사이로, 한 번은 염소가 얼굴을 내밀고 또 한 번은 염소 주인인 할아버지가 머리를 내밀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는 염소에게도 창밖 시원한 공기를 쐬고 주고, 본인도 시원한 산골 마을의 공기를, ’ 버스 지붕에 뚫린 네모난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어 마시곤 했단다.
그런데 특이했던 건, 염소가 고개를 내밀면 신기하게도 큰 눈망울로 인도 히말라야의 산악 지형 경치를 두리번거리면서 감상하는 게, 마치 사람이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내밀 때 할아버지의 눈을 보니, 염소랑 같이 오래 사셔서 그러신지도 몰라도, 염소의 눈망울과 많이 닮아 있었고, 콧수염을 기른 선한 할아버지의 얼굴도, 염소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계셔서, 염소들이 엄마 아빠처럼 잘 따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단다.
이미 20년이 더 지난 일들이니, 지금도 인도의 시골에서는 염소들이 사람과 같이 버스를 타고 사람처럼 창밖 풍경도 감상하는지 또는 ‘사람 아기’처럼 주인 할아버지들의 품에 안겨서 여행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제주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마을‘에 살고 있지지만, 이십대의 마지막에 돌아 다녔던, 인도의 그 많던 시골마을들은 여전히 그립다.
지난달에 ’ 중국기행‘을 썼던 것처럼, 다음 주부터는 ’ 잊혀가는 기억‘을 더듬어 인도 기행문에 도전해 봐야겠다. 히말라야의 푸른 계곡물과 눈이 시리던 파란 하늘, 붉은 노을에 물들어 가던 눈 덮인 산봉우리들과, 시골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데칸고원 위에 끝없이 펼쳐진 풀밭들과, 한가롭게 거닐던 소떼들이, 다시 내 마음과 기억 속에서 살아나길 바라본다.
< 더 나이들기 전에, 언제라도 비행기를 타고 다시 가고 싶은, 아 ! 인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