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모습을 놓쳐버리기 전에
-너의 이름은 -
”... 중국 현대 미술 작가 중의 한 명인, <예 용칭(Ye Yongqing)>의 작품이야. 작년에 이곳 윈난 성 다리(Dali, 大理)에서 작품전을 가졌는데 사회주의 국가에도 이런 추상 미술을 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도 의외이지만 , 마치 팝 아트 같은 스타일에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무질서 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중국 회화하면 모두 사회주의 조국의 발전을 위한 뚜렷한 주제 의식과, 인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내가 생각하던 사회주의 국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의 중국에 자주 놀라는 요즘이다... “
"... Marly Cafe. 어제에 이어 오늘도 중국 윈난 성의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정말 오랜만에 인도의 다람살라나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전 세계 배낭여행객을 위한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맛보고 있어. 영혼의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만, 어딘가에 숨겨진 고독한 불안을 늘 간직하고 다니는 배낭 여행객들에게 큰 위안이 되던 카페들. 이런 분위기를 중국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역시 낯선 느낌이 든다.... “
지난주에 오랜만에 부모님 집을 찾았다가, 1999년 4월에 필자가 중국 윈난 성에서 썼던 엽서를 발견했다. 수신 주소는 [MBC 문화방송 라디오국]으로 되어 있었는데, 받는 사람 이름이 없어서 누구에게 보내려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0여 년도 더 지난 과거에 내가 이런 엽서를 썼다는 것도, 중국 현대 추상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이런 감상을 느꼈다는 것도 잊고 살았다.
<우연히 책장 속에서 발견한 10년 전 중국에서 샀던, [티베트 풍속] 엽서와 중국 현대 회화 엽서들>
3개월의 긴 여행을 통해 바라본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와 전통 중국 문화의 향기, 그리고 상해 등 우선적으로 개방을 한 연안지방으로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물결이 혼합되어, 모든 게 혼동스럽게 보였다. 단지 분명한 것은 내가 기대한 사회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거다. 대학시절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부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이상적인 국가도 아니었다.
다만 3,000년이 넘은 (중국 상고시대의 주(周) 나라는 서주(기원전 1046~770년. 지금은 서안 근처)에 첫 번째 수도를 세웠다) 중국 한족(漢族)의 유구한 전통은 어딜 가나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국은 이제 겨우 50여 년의(중국 인민 공화국은 마오쩌둥을 첫 번째 국가주석으로 1949년에 성립되었고, 필자가 중국에 머물 때는 1999년 봄이었다) 역사를 가진 사회주의 국가 라기보다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한족의 전통문화가 지배하는 국가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는 대치동 본가에 가면 항상 오래전 학창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내 방에 혼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이 동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이 방에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첫 번째 직장인 [한국무역협회]에 취업을 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퇴사를 하고 언론 고시 준비를 위해서 1994년의 무더운 여름을 보낸 곳도 이 방이었다.
이 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다. 아직도 [화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E.H 카의 [볼셰비키 혁명사]가 보이고 [레닌 저작선], [중국의 붉은 별] 등의 오래된 책들이 꽂혀있는 방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도 버리지 않았는데 특히 내가 좋아했던 물리, 역사, 국어, 영어 교과서는 여전히 그 시절 그 자리에 있다.
몇 해전 인가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해서, ‘네 방을 정리하느라 방의 책들을 다 묶어서 고물상 아저씨라도 가져가라고 밖에 내다 놓았다’고 했다. 나는 펄쩍 뛰면서 ‘절대로 안된다!’고 발끈했는데, 아들의 성화에 어머니가 부리나케 밖에 나가보니 다행히 아직 그대로 있어서 다시 내방으로 들여놓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소중한 거면, 결혼해서 사는 너네 집으로 가져가라’ 했지만, 이 방에 있는 학창 시절의 책들은 이 방에 있어야지 그 향기가 온전히 느껴질 것만 같았다.
‘어차피 비어 있는 방인데 왜 그러세요?’
‘왜긴~ 뭐가 왜냐? 정신 사나워서 그래. 뭔 책을 그리 많이 쌓아두냐?”
과거의 책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잊힌 과거를 소환시켜주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집을 떠나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살다 보면, 학창 시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버린다. 과거의 나를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과거의 나에게는 지금의 내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과거에 읽었던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칠 수 있다. 그런 게 뭐가 그렇게 소중하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제대로 가져봤는지 모를 정도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의 책을 읽으면서 사회 정의와, 이상 사회에 대해서 토론을 했던 나의 모습은 아마도 나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염세주의자로 3년을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가톨릭 성경>이 나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방 안에서 [수학의 정석]과 [성문 종합 영어] 그리고 이런저런 문학 책들을 읽으면서, 교과서 안의 세계가 어쩌면 ’이 세상 전부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며 작은 내 방안 세계에 안주했던 소심한 내가 있기도 했다.
이번처럼 책들 틈에서 과거 여행 중에 썼던 엽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내가 이혼을 하고 제주에서 1년을 로빈슨 크로소처럼 보냈던 2020년 2월 이후와, 그 전의 나는 너무도 달라졌다. 나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 평소에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사고방식 등등...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게 이렇게 급속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시는 과거 내 방의 책들을 뒤적여 보면서, 본래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 시공간을 뛰어넘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이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어, 370만의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줬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도 1,500만 명이 넘는 관객들 동원하면서 빅히트를 기록했는데,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줄거리를 묘사하는 듯한 삽입곡들이 특히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덕분에 주제가를 불렀던 일본의 록그룹 [Radwimps]가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sparkle] 등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도 있지만, ost속 주제가는 경쾌한 리듬의 前前前世(전전전세 : 전전전 세상)였다.
君の前前前世から僕は君を探し始めたよ
そのぶきっちょな笑い方を目がけてやってきたんだよ
君が全然全部無くなって散り散りになったって
もう迷わないまた1 から探しはじめるさ
너의 전전전 세상부터 나는 너를 찾기 시작한 거야
그 서투른 웃는 모습을 목표로 해서 찾아온 거야
네가 전부 없어져서 뿔뿔이 흩어져도
더는 망설이지 않아 다시 '1'부터 찾기 시작할 거야
- [너의 이름은]의 주제가, 前前前世(전전전세)의 가사 중에서-
지난 시간 속의 소중한 나 자신,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애니메이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속에서 주인공 마츠하가, 기억과 이름이 잊히지 않게 볼에 이름을 적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