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과 노학자의 지혜-
P 선배에게,
누님 잘 계세요?
형님과 조카들도 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제주도에서 순천을 거쳐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제주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보겠다는 저의 계획은 실패했어요. 저의 ‘찐 선배님 크루소’는 28년 동안이나 구조선이 오지 않아서, 흑인 노예 프라이데이와 그리 긴 세월을 무인도에서 살았지만, 저에게는 여수로 떠나는 ‘골드 스텔라’라는 6층짜리 호화 여객선이 너무 쉽게 와 주었어요. 그래서 10개월 만에 ‘탈 제주’를 해서 순천으로 갈 수 있었어요.
저의 외롭던 제주 살이에 구조선이 쉽게 와줬다고 말은 했지만, 제주도에서 혼자 보낸 홀아비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저의 찐형 크루소는 엄습해 오는 고독과 불안을 견뎌내기 위해서 낯엔 노동을 밤엔 성서를 읽었다고 했는데, 저는 낮엔 나무를 키웠고 밤엔 글을 썼어요.
낮에 나무를 돌보고 밤에 글을 쓰지 않으면, 지독하게도 따라붙어 다니면서 떨어지지 않던 외로움과 그리움을 버텨낼 수 없었어요. 누님과 형님이 제가 살고 있던 제주도 표선면에 한번 내려오셨을 때 보셨던 것처럼, 300그루가 넘는 어린 나무 묘목을 키웠어요. 제주도라는 섬의 기후와 바람은, 어린 나무들이 사람의 손을 그리 타지 않아도 쑥쑥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자라나게 해 주었어요. 덕분에 10개월이 지나 가을이 되니까 사람 키만큼 제법 큰 나무도 있었어요.
하지만 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 주었던 것처럼, 제 삶의 행복이 더불어 커지지는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제 인생에서 이혼이나,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두 아들을 볼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것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침에 표선항에서 해가 떠오를 때마다, 제주의 1년 살이 숙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들이 부는 바람에 함께 춤을 추며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그리고 한라산 뒤로 넘어가던 저녁 해가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마다 떠나온 집과 가족 생각이 났거든요.
<필자가 10개월을 머물렀던 제주도 표선면의 일몰 >
제주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서귀포시 성산에서의 한 달 살이에 이어 종달리에서도 한 달을 살 때, 로빈슨 크루소처럼 저도 성경을 한 권 사서 읽었어요. 하지만 크루소와 달리 저는 성경에서 큰 위안을 얻지는 못했어요. 아직은 제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나 봐요.
오히려 크루소가 일상의 노동을 통해서 건강과 안정을 얻었던 것처럼, 저는 50년 삶을 되짚어 보면서 썼던 매일매일의 글쓰기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어요. 글쓰기는 마치 마음의 노동과 같아서, 저의 정신이 제 몸을 떠나서 어딘가로 멀리 떠나지 않게 붙잡아 주었어요. 얼마 전 제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신 MBC 라디오의 퇴직 선배님은, 존경하는 수도사 분에게 들은 얘기 라면서,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쳇바퀴 돌 듯한 규칙에 매인 삶이란 게 답답할 것도 같지만, 반복되는 루틴한 생활이 오히려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그런 안정감에 기대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래서 사찰의 스님들도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도(修道)의 한 방법으로 새벽 기상, 불공, 명상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 일과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제주도에서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거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난 결단을 내렸을지도 모르겠어요. 매일 한 편의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족을 잃은 상실감도, 혼자 살고 있다는 고독감도, 미래가 불투명하는 불안함도 잊을 수 있었어요.
오늘 대학 동기가 올해 102세가 된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내주었는데, 김형석 교수도 일을 하고 독서를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형석 교수의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에서-
P선배,
선배는 강의와 연구로 이어지는 규칙적인 일상을 살고 계시겠죠?
항상 푸른 소나무처럼 늘 변치 않은 꾸준함으로 형님과 함께 연구자의 길을 걷고 계신 선배와 선배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해요. 그리고 노철학자의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지혜에서, 저와 제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건강한 삶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되길 바랍니다.
<필자가 머물던 제주도 표선면의 밤바다와 노을, 하늘과 바람은 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