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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1988년은 모든 게 정신없던 한 해였다.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모든 것이 혼동스러웠고 또 모든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또한 모든 것이 아픈 상처로 남아있기도 하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해서 첫 번째로 큰 충격을 받았던 건,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2층 휴게실 공간에 붙어있던 대자보를 볼 때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독재정권의 만행, 그리고 미국의 위선에 대해서 다소 거칠고 감정적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카톡이나 SNS 등으로 쉽게 대학 학생회의 의견을 전달할 수단이 없었으므로, 학생들이 다수 모이는 공간에 큰 전지 모조지에 쓴 대자보가 학생회의 주장을 알리는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사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글을 필자가 처음으로 본 것은, 1988년 1월 즈음에 고려대학교 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예비 소집일에 학교를 찾았다가 정문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통해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순진하고 세상사에 둔감함 범생이였던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날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면서 대자보를 마주 찢어 발기는 군인 아저씨의 폭력성이었다.
그 군인 아저씨는 계급이 하사관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대자보를 보자 분노가 치밀어서 욕지기를 하면서 대자보를 마주 찢어버리고 발로 밟아버렸다. 주위에 고려대학교 선배들도 몇몇 눈에 띄었지만, 그 군인 아저씨의 무시무시한 위세에 눌려 별 제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학교 주위를 온통 군인들이 진압봉을 들고 촘촘히 둘러싸고 있었으니, 붙들려서 어디라도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그 폭력성에 대해서 대거리를 할 수 있었을까?
예비소집일부터 '대학생활이 순탄하지 만은 않겠구나'라는 직감이 왔는데, 역시나 1988년 3월 신학기부터 시위와 최루탄으로 이어졌던 대학생활은, 군입대 기간을 포함해서 대학생활 7년 내내 그다지 변치 않았다. 대학시절에 겪은 짧지만 강렬했던 정권의 폭압성과, '대자보'에 관한 경험담으로 오늘 칼럼을 시작한 이유는 한국의 '민중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1980년 후반 대한민국의 미술계는 소위 민중미술의 시대였다. 한국에서 민중미술은 기존의 한국미술을 심미주의적 형식주의가 판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민주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서 미술인들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했고, 시민 판화 운동,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의 걸개그림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시켜 나갔다.
1980년대 민중미술은 한국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의식을 반영한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아 민중미술 [Minjung Art, 民衆美術]이라는 용어가 고유명사로 정착될 만큼 한국 현대 미술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만큼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그리고 어쩌면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열렸던 대한민국 시위 현장에는 시위의 주제를 표현하는 거대한 대형 걸개그림이 걸리곤 했었다. 필자 역시 시위대에 직접 참가해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거나, 시위 현장을 지나칠 때 큰 걸개를 그림을 보고, 직관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그래서 이곳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에 대표적인 작가로는 강요배·김호석·박불똥·손장섭·손상기·신학철·안창홍·오경환·오윤·임옥상·전수천·정복수·홍성담 등이 있었고 1980년대를 통과했던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그림을 한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1994년에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민중예술 특별전'을 하기도 했고, 필자가 오늘 들른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국립 현대미술관의 상설관에서도 민중예술은 한국 미술사에서 당당히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민중미술 작가 홍성담의 광주 민주화 운동 연작 중 일부. 홍성담의 광주 연작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매한 저서 [국립 현대미술관 소장품 300]에도 수록되어 소개되고 있다.
독재정권의 민주화에 대한 탄압과, 5.18 광주라는 특수한 상황이 촉발시킨 회화를 통한 저항운동이 한국에서는 민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멕시코에서는 이미 1920년대에 '벽화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었다. 당시에 멕시코에서는 미술이 화랑과 미술관을 벗어나서, 길고 큰 담벼락과 공공장소에서, 만인의 즐거움이 되고자 했고, 멕시코 벽화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에는 <디에고 리베라>라는 걸출한 세계적 스타가 있었다.
리베라는 멕시코 벽화 운동으로 단숨에 세계 회화 평단에서도 거장으로 평가받았었다. 1929년 11월, 막 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첫 번째 개인전으로 앙리 마티스, 두 번째로 1931~1932년에 디에고 리베라, 그다음 해에 파블로 피카소의 전시회를 열었었다. 그만큼 전 세계 미술계가 멕시코의 벽화운동과 이를 통한 저항정신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했던 것이다.
멕시코 벽화 운동(Muralismo)은 1920년대 멕시코 정부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일어난 독특한 미술 운동이기도 하다. 1910~1917년 멕시코 혁명 이후 수립된 혁명 정부는 외세를 배격하고, 멕시코의 전통을 찾고,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방법으로 사실주의 양식의 벽화를 지원했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문맹률이 높아, 혁명의 의미와 목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글보다는 그림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바스콘셀로스(Jose Vasconcelos)는 전국적으로 학교 건설을 추진하면서,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건물의 벽면을, ‘화가 및 조각가 조합’에 맡겨 벽화를 그리도록 하였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화가들은 당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 에스파냐 바로크의 영향과 아스테카 및 마야 문명의 영향까지도 벽화에 투영시켰다. 근대 미술사의 소외 지역이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은 멕시코 벽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멕시코의 벽화 운동은 1930년대 경제 공황 및, 노조 운동과의 이념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 화단에도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중심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좌) <농민 지도자 사파타>,1931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우)<꽃 축제: 산타 아니타의 축제> 1931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디에고는 이처럼 멕시코의 역사, 혁명, 노동자, 농민운동에 관한 작품도 많이 남겼으나, 아즈텍 문명을 중심으로 한 멕스코의 전통, 자연에 관한 그림도 다수 남겼다.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다. 이 노래는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가 1966년에 발표한 싱글 앨범에 수록되었고, 그해 미국과 영국 싱글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곡이기도 하다.
가사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화자가, 세상을 온통 까맣게 칠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젊은이들의 음울한 마음을 담은 곡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재킷],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등에 자주 삽입되었다.
I want to see it painted, painted black
Black as night, black as coal
I want to see the sun, blotted out from the sky
I want to see it painted, painted, painted, painted black, Yeah!
난 까맣게, 까맣게 칠해지는 걸 보고 싶어
밤처럼 어둡고, 석탄처럼 검게
하늘의 얼룩 같은 태양을 보고 싶어
난 까맣게, 까맣게, 까맣게, 까맣게 칠해지는 걸 보고 싶어,
-<롤링스톤스의 [PAINT TI BLACK] 가사 중에서>-
1966년 5월에 발매되어 롤링스톤스의 명곡 [PAINT IT BLACK]이 수록되어 있던 앨범의 쟈켓.
한국의 민중예술은 민주정권이 탄생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급속하게 쇠퇴해 버렸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다양한 사회문제가 없어질 수는 없고, 이런 이유로 저항 미술의 자리는 언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는 절망에 빠져서 세상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겠다며 절규했지만, 한때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주류의 위치에 있었던 한국의 민중예술 화가들은 더 다양한 색으로 세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엔 그들이 다시 세상을 향한 저항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꿈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 1966년에 발매된 롤링스톤의 싱글 [PAINT IT BLCACK]의 뮤직비디오 >